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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운 Jul 11. 2024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_2.

의료분쟁의 기록

‘네 눈앞의 일들은 네가 치우고 살면 돼.’


좋아하는 작가 언니가 내게 해 준 이 말이 이제껏 위로가 되어 왔지만, 요즘은 그것이 너무 힘든 일처럼 느껴진다.

여태껏 나는 내 사방과 허다 못해 다른 식구 집 안마당까지 다 쓸고 살아서 힘든 일을 이겨내는 힘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은 것 같다. 이제 내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이다.


누군가 옆에 있어줬으면, 괜찮다고 어깨라도 한 번 두드려 줬으면.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집 앞에서 친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는다.

땅바닥에 부스스 떨어진 무수히 많은 벚꽃 잎들을 본다. 이걸 다 언제 치우지… 치워도 치워도 다시 쌓이는 잎들을 보니 꼭 내 인생과 같이 느껴진다.


그러나 이제 집에 들어가면 사랑하는 아들이 있다. 나는 지금 다시 눈물을 닦고 한껏 웃으며 들어가야 한다. 이제 우주에 나와 너뿐이야. 그래서 내 아들은 자식을 많이 낳았으면 좋겠다. 더도 덜도 말고 딱 내 아들 같은 자식… 부모에게 폐 끼치지 않고 부모를 자식처럼 돌봐주는 자식… 아들에게 미안해진다.

집 앞의 오래된 나무들을 보면 꼭 아들과 같다. 아무것도 주지 않았는데 스스로 저렇게나 컸다. 오래된 나무들은 큰 그늘을 드리우고서 자신의 외로움은 큰 나뭇잎으로 감춘다. 그리고는 겨울에 서슬이 퍼렇도록 쪼그라들고도 다음 봄이면 든든히 일어선다. 우리 아들도 저렇게 매년 커가는 것일까…? 아들에게 어쩌면 엄마가 가장 힘든 추위인 것일까? 고맙지만 갑자기 무섭고 두렵다. 나는 나 자신과 평생을 이렇게 싸워야만 하는 것일까? 무엇이든 잘해왔고 앞으로도 잘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계속 추켜세워주지만 자꾸만 우울하고 불안해진다. 결국에는 다시 약에 의존해야만 할까…?


-2024년 비 오는 어느 봄날 배운의 일기-



의료분쟁이 시작되고 나를 수술했던 병원 측에서는 조정위원회를 통해 내게 의견서를 전달하였다. 조정위원은 내가 그 내용을 읽고 다소 감정적이 될 수도 있으나 어디까지나 병원의 일방적인 주장이므로 감안하라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예상대로 그들은 내게 일어난 팔의 마비는 불가항력적인 후유증에 불과하며, 수술 방법은 적절했다는 취지로 기술하였다. 내가 분노했던 것은 당시 주치의가 수술이 미흡했던 부분을 인정했고 원무과에서도 석 달간의 재활 치료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하였으면서도 정작 분쟁조정이 시작되자 내게 제공했던 도수 치료 금액을 ‘미납’으로 처리한 것이었다. 병원에서는 내가 석 달의 치료 금액을 미납하였음에도 도의적인 책임 때문에 눈 감아 주었다는 취지로 진술하고 있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라는 것이 이런 것일까. 억울하고 분하지만 나는 이 사건에 대한 변론서를 직접 작성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제출한 의견서의 항목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10장에 달하는 변론서를 무리 없이 작성하였다. 20여 년 간 기획서를 작성해 왔던 경력을 이런 일에 써먹게 될 줄이야.

사건의 개요는 대략 이러했다. 1) 사고로 인하여 수술을 하였으나 잘못된 수술로 원치 않게 3번의 수술을 하게 된 점, 2) 간단한 수술로 후유증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는 주치의의 설명 이외 후유증에 대한 위험성 및 수술 방법을 고지하지 않은 설명 부주의, 3) 1차 수술 후 전신 마취가 깨지 않은 혼미한 상태에서 2차 수술을 시작하였고 그에 대한 동의가 불확실했던 점 (정신을 차리고 보니 2차 수술 동의서에 서명을 했는데 나는 서명을 한 기억이 전혀 나지 않았다.), 4) 해당 주치의의 수술 방법이 최근에는 거의 시행되지 않는 방법이라는 타 기관 의사 2명의 증언, 5) 3차례 수술로 인한 공황 발작 등 정신적 고통과 6개월이 지난 시점에도 계속되는 통증으로 이틀에 한 번 자는 상황, 환자의 통증 및 치료가 끝나지 않았음에도 사건의 종결을 서두르는 병원의 태도…


이 외에도 수술을 집도한 주치의 본인이 과실과 책임을 인정하였는데 병원 원무과에서 진실을 호도하고 사건을 왜곡하며 나를 돈이나 구걸하는 파렴치한으로 몰고 갔고 수치스러움을 느꼈던 부분, 사고로 인해 직장을 권고 사직하여 20여 년의 커리어가 끊겼고 책을 들 수도 없어 사서의 꿈을 접어야 하는 기로에 서게 된 나의 절망감 등을 빼곡하게 기재하였다.


변론 기일이 지정되고 마침내 조정위원회에 출석하게 되었다. 이혼한 전 남편은 고맙게도 조정위원회에 동반 출석을 해 주었고 조정위원들도 이를 허가해 주었다. (원래 직계 가족이 아니면 출석이 불가하다고 한다.)

잠자리에 들기 전 몇 번이나 오늘의 변론 내용을 곱씹어 보고 브리핑해 보았던가. 종이에 기재하여 읽어버릴까도 싶었으나 너무나 명백하고 객관적인 문제라고 생각하여 그저 담담히 내 주장을 말하기로 했다.


분쟁조정에는 6명의 조정위원이 참석하였다. 조정위원장과 2명의 조사관, 2명의 자문위원, 그리고 내 변론 처음부터 졸고 있었던 고문 격의 한 사람… 내 주장을 변론하라는 위원장의 말에 나는 변론을 시작하였다. 무려 7년 간 경영진 앞에서 사업 계획 보고를 해 왔지만 늘 공황장애 때문에 말을 더듬거나 속사포처럼 말을 빨리하고는 했는데 이번에는 차분하게 시작하였다.


“저는 이 사건에 대하여 너무나 명백하고 객관적인 증거가 있는데 제가 여기까지 와서 변론을 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상식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 환자를 아프게 하려고 잘못된 수술을 하는 의사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저에게 책임을 다 하겠다고 한 주치의의 진심을 믿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의무와 책임을 다합니다. 저 또한 환자로써 제가 해야 할 도리를 다 했습니다. 어떤 병원의 관계자들은 보상금을 많이 받으려면 재활을 하지 말고 후유 장애의 상태로 남아 변호사를 선임해야 한다는 조언도 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오른팔 한쪽을 잃고 거액의 보상금을 받는 것이 무엇이 중요하겠습니까? 저는 저에게 주어진 시간에 재활에 전념하였습니다. 그것은 여기 계신 모든 분들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의사 또한 의사가 되기 전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합니다. 환자에게 책임을 다 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어째서 일개 원무과에서 의사가 환자에게 약속한 행위에 대해 문제가 없다고 판단을 합니까? 문제의 핵심은 이 수술이 환자의 상태를 고려한 최선의 수술 방법이었냐는 것입니다. 협착이 심한 환자에게 뒤로 절대 하는 유압술은 최근에는 널리 실행되지 않는 방법이라는 타 병원 의사들의 소견을 들었고 이를 기재하였습니다. 또한 그것이 만약 적절한 조치였다 한다면, 팔의 이상 유무와 관계없이 통증이라도 감소되었어야 하는데 통증 또한 극도로 심하여 잠을 잘 수가 없어 정신과 약을 복용하였고 지금도 오른 팔의 마비 상태는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병원 측에서는 로펌을 이용하여 성의가 없고 말도 안 되는 논리로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진실을 호도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으로 거액의 보상금을 받아 팔자를 고쳐보거나 호의호식을 하려는 의도가 없습니다. 단지 상식적인 판단 하에서 제가 받은 피해에 대하여 의사가 처음부터 약속했던 수술비와 재활비의 지원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요구하고 있는 것뿐인데, 병원 측에서는 제가 모든 인생을 책임져 달라는 보상을 요구하는 파렴치한으로 몰아세우고 있어 수치스러움을 느낄 따름입니다. 마지막으로 개인의 서사를 보태어 말씀드리면 이번 사건으로 20여 년 간의 저의 커리어가 끊겼으며 도서관 사서가 되겠다는 꿈도 잠시 접어야 하는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객관적인 판단 하에 현명한 조정을 요청드리는 바입니다.”


자문 위원 중 의사로 보이는 분이 나의 상태를 다시 체크하고 후유증이 남아 있다는 증언도 보태주었다. 그러나 위원회에서 내린 결정은 의료 행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단지 후유증에 대한 고지 불충분만 인정한다는 내용이었다. 납득이 어려웠으나 조정 위원장의 다음의 이 한 마디로 이 모든 것이 종결되었다.


“대한민국에서는 의료인의 재량을 아주 폭넓게 인정합니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 있을까. 전문가인 의료인이 어떠한 의료 행위를 한다 하더라도, 그 행위의 적법성과 적절성에 대해서는 일개 환자가 감히 반문할 수 없다 하는데. 내 팔의 신경이 아예 끊어졌다면 모를까 지금 정도 움직이는 상황이면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는 것이다. 내 커리어가 끊겼든, 생계가 곤란해졌든 간에 그것은 이 사건의 본질과는 무관한 것이 아닌가.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말이 처음으로 와닿는 순간이었다. 또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강자와 약자의 약육강식이 그대로 적용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나이 마흔이 넘도록 나는 너무나 작고 안전한 세계에 살고 있었구나. 대한민국이 적용한 평균의 기준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고 살아왔던 대가가 바로 이런 것이었구나. 현실을 너무 몰랐다는 자책이 밀려들며 뼈 저리게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다.


더욱 기가 막혔던 것은 병원 측에서 보상 금액의 일부를 내게 무상으로 제공해 주었던 재활 비용을 [미납금]으로 처리하여 갈음한 사실 또한 조정위원회에서는 그냥 받아들이라 한 것이었다. 구두로 합의한 녹취록도 존재하였지만 문서에 의한 합의가 아니면 효력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것으로 나는 완전히 전의를 상실하였다. 변호사를 선임하여 소송을 하면 금액이 다소 올라갈 수는 있겠지만 이러한 사실로 더 마음고생을 하고 싶지 않았다. 현실을 모르고 바르게만 살아왔던 무지한 내가 현실 수업을 제대로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부분 승소를 한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우울은 과거에 지난 일들을 떠올리는 데서 비롯된다고 하였다. 후회 없이 살아왔기에 더 이상 과거를 돌이켜 보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


오랜만에 공원에 나가 조금씩 뛰는 연습을 해 보았다.

다시 뛰기 시작했을 때 마음속으로 진심을 다해 최선으로 빌었다. 다시 원래의 내 삶으로 돌려달라고, 그러면 정말 소박한 나의 일상에 감사하며 살겠다고.

그런데 달리기가 마무리되는 시점에서는 다시 돌아가게 해 달라고 바라는 것조차도 욕심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과거의 나는 매일같이 반복되는 지긋지긋한 일상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쳤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나는 다시 그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지 않은가? 시간은 흘렀고 그때의 나는 이제 없다. 과거로 돌아간다 한들 그것이 정말 제자리를 찾는 것일까? 무의미하다.


차라리 나는 다시 기도를 시작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내 쓰임에 맞게 적절한 자리에 있게 해 라고. 내가 어느 곳에서 무엇을 하든지 그 선택에 맞게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언제나 그랬듯 열심히 해 보겠다고. 그러니 그 일상을 지켜낼 수 있는 평범한 힘을 내게 달라고. 지금은 공황장애 때문에 숨을 제대로 쉬는 것도 힘들다. 이제 나는 숨만 잘 쉴 수 있게 해 달라고 바라고 있다.


어떤 모습이 진정한 나의 본질일까. 내게 어울리는 옷은 어떤 것일까.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은 알 수 없지만 아직은 더 쉬는 법을 배워야 하는 때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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