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후 살아내기
지금으로부터 십 년도 더 된 이야기이다.
당시의 내 남편이었던 그는 우리 집에 화분을 여러 개 놓고 각각의 주기에 맞춰 물을 주어가며 바지런히 길렀다.
그중 율마를 가장 애지중지했는데 그 예민한 녀석은 참 곱게도 자라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무 문제없던 화분의 흙에 벌레가 생기고 시름시름 앓던 율마는 수 일내 잎이 새까맣게 변해서 죽어버리고 말았다
그는 속상하거나 화가 나면 미간에 내천(川) 자가 생기고 한 동안 입을 닫아 버리는데, 율마가 죽은 그날에도 입을 앙 다문채로 화분을 내다 버리려고 현관 앞에 꺼내두었다.
그러다 그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벌떡 일어나 갑자기 물을 펄펄 끓이기 시작했다.
무얼 하나 싶었는데 그는 주전자를 들고 밖으로 나가 화분의 흙에 뜨거운 물을 냅다 부어버렸다. 그가 아꼈던 율마를 죽인 흙 속의 그 해충들을 모조리 죽이고 싶었던 것이다.
그때는 그도 삼십 대 초반으로 아기 아빠치고는 꽤나 젊은 편이었다. 지금 그날을 생각하면 씩씩 거리는 모습이 퍽 귀여운 구석이 있다 싶어 웃음도 나는데 당시에는 그러한 모습이 내 눈에는 너무 폭력적으로 보였고 무섭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그 이후로 그의 험담을 할 때마다 그의 폭력성의 예시를 들어 일명 ‘율마 사건’을 자주 언급하고는 했는데, 그런 장면들에 대한 민감한 나의 판단, 예를 들면 두려움과 멸시 등은 과거 내가 겪었던 폭력의 트라우마에서 기인한 방어적인 습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 나이 또래의 일부는 아마도 나와 비슷한 경험이 더러 있을 수도 있다. 하기사 나보다 더 윗연배인 50,60세의 언니들에게서 나는 그보다 더한 경험에 관해 많이 들어왔다. 으레 가부장적인 남성들에게 억압이나 폭력을 당했다는 그런 경험들 말이다. 뒤틀린 유교 문화에서 비롯된 잘못된 가부장제는 여성뿐 아니라 일부 남성들에게도 고스란히 피해를 주었다고 생각하는데, 나 또한 폭력적 성향에 대한 특유의 민감함으로 인해 그와의 아주 소소한 싸움마저도 모두 피해 의식으로 뭉쳐 맞서려 했고 방어적인 태도를 취했었다.
율마가 죽었던 그날, 그렇게 속상해하는 그의 등을 다독여주며 달래주었으면 좋았을 것을 나는 되려 그를 씨근덕대는 모습이 좋지 않다며 비난했던 것이 이제와 조금 후회가 된다.
인생에 나를 견인하는 것은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사랑은 내게 행복과 만족감을 주고 자존감을 회복시키고 잃어버린 꿈을 찾게 도와주며 나로 바로 설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했기에 그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삶이 괴로웠다.
그와 계속 사는 삶은 이러할 것이라고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멋대로 상상했다.
‘70대는 잊고 살고, 60대는 덮고 살고, 50대는 복수하고, 40대는 슬퍼하고, 30대는 참고 살고, 20대는… 그래도 사랑했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이혼하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까’
내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바로 자유였다.
자유란 누구에게도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 나 자신의 생을 꾸려가는 것이었다. 내 영혼을 내가 건강하게 돌보는 것.
그와 함께 할 때 평생 행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조각조각 행복의 파편을 모아 이전의 불행보다 그 파이를 키운다고 해도, 나는 계속 우울할 것만 같았다. 매일 밀려드는 극도의 불안 장애 및 공황 발작과 싸워야 했다. 숨을 제대로 쉴 수 있는 시간에는 삶에 너무나 감사했다.
나는 세상에서 규정한 법에 어긋난다는 죄책감 때문에 이혼을 하지 않기보다, 온전히 나를 사랑하기 위해 과감히 남의 시선과 같은 소소한 것들을 내치고, 그 모든 쇠사슬을 끊어내고, 이혼을 선택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국 그 선택의 원천에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이 있었다. 그렇다고 지금 그 선택을 후회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고통과 슬픔은 모두의 인생사와 같이 유유히 흘러갔고 지금은 꽤나 안정을 찾았다.
그와 나의 물리적 거리는 멀어졌지만 심리적으로 가까운 친구를 둔 느낌이다.
(물론 장시간 같이 있는 것은 피해야 한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혼한 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내가 자각하지 못하는 운명이 정말 존재하는 것일까.
계획하는 삶에 지쳐 그저 흘러가는 대로 내 맡겨 버리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인생이 장난을 치는 것일까?
살아오면서 어쩌면 인생이 바뀌었을지도 모르는 삐끗한 순간들을 생각하게 된다.
평범한 삶에서 이탈하여 나락으로 떨어지는 폭은 이다지도 큰데, 사실상 그 큰 축을 움직이는 것은 아주 사소한 인생의 한 점에서 시작된다.
마치 도화지 위에 컴퍼스로 동그라미를 그릴 때, 중심축이 조금만 삐끗해도 전혀 다른 그림이 그려지는 것처럼 말이다.
국민학교 때 너무나 착한 친구를 괴롭히지 않았더라면, 부모님이 중학교 때 그렇게나 크게 싸우지 않았더라면. 아버지가 언니를 그렇게 때리지 않았더라면. 고3 때 남동생과 크게 다투지 않았더라면. 고3 때 독서실을 다니며 친구들과 어울려 놀지 않았더라면. 대학교 때 방황하며 시간을 흘려보내지 않았더라면. 부모님의 뜻대로 하지 않고 유학에 인생을 걸어봤더라면. 인생이 불안해서 결혼을 서둘러하지 않았더라면. 사람들이 하라는 대로 하지 않고 나 자신을 좀 더 돌보았더라면. 나를 학대하고 비난하지 않았더라면. 하루하루를 소중히 살아냈더라면.
이렇게 쓰고 나니 삐끗한 순간은 너무나 많아서. 결국엔 어느 날 그것이 큰 눈덩어리가 되어 나를 덮친 것 아닌가 싶다. 그러니까 차라리 억울한 마음이 사라진다. 결국 지금 내게 일어난 모든 일은 어차피 일어날 수도 있었던 일이다. 그러니까 나보다 더 막살아도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는 사람도 물론 있을 수 있겠지만,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해서 그게' 하필이면 나'인 것은 아니다.
정해진 틀에서 발을 살짝 내딛자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면서도 이 자유로움에 어지러움을 느낀다. 내 인생에 책임이라는 무게를 짊어지고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지. 아니면 너무 큰 일을 많이 겪었으니 이 정도의 삶과 타협해도 괜찮은 걸까? 늘 인생의 책임이 버거웠던 나는 적당히 즐기자는 생각으로 사는 것 또한 죄책감을 느낀다. 불완전한 사십 대는 이십 대보다 위험하다.
어떤 면에서 나는 이미 도태된 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른 다른 세계에서 또 다른 삶을 살 기회의 문 앞에 서 있는 것일지도. 이미 닫힌 문틈을 엿보며 다시 돌아갈 기회를 찾고 억울해하기보다는, 한 번 넘어졌으니까. 경기에 져서 아쉽지만 툭툭 털고 제2의 인생을 찾아가야지.
오늘만큼은 열심히 잘 살아내야지. 나는 오늘 당장의 하루만 보며 산다.
그렇게 하루가 쌓이면 좀 더 온전한 내가 될 것이다. 그러면 내게서 벗어나 세상 밖으로 시야를 확장시킬 수 있을 것이고,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다. 나를 버리고 밖으로 시선을 던지는 글을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