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익명의 궤적

by 이반림

내일을 사랑하는 이들이 줄을 지어

희미해진 곳으로 걷는다

동공마다 마른 빛을 매달고


다행히

아는 얼굴들은 아직

기억 속에서 또렷하다


나는 멀리

그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

나무 뒤에 몸을 숨긴 채

그들을 본다


*


누군가 내게 사유를 묻는다면

그저 '여유 없음'이라

건조하게 답할 것이다


무리에 낙오자가 생기지 않을까

저 백발의 신사는 오늘도

외줄을 타듯 경계 위로 발을 옮긴다


누군가 걸음을 늦추면

그는 아무 말 없이 곁에 선다

그리고 다시,

침묵으로 줄의 끝을 바라본다


행렬은 멈추지 않고 앞으로 흘러

희미한 소실점 너머로

사람들이 하나씩 소거된다


나는 나무 뒤에 서서

그 풍경이

풍경이 아닐 때까지

지켜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에 누가 있었는지

더는 구분되지 않는 곳에서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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