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제주 출장 길이 별로 즐겁지 않다.
도청이랑 싸우는 것도 지겹고 스튜디오의 조경도 걱정스럽고 해서.
아침에 일찍 제주에 내려와 무작정 남원가는 버스를 잡아 탔다.
흔들거리는 버스에서 창 밖의 초록한 풍경을 멍하니 보고 있으니 잠시 여행가는 기분이다.
그래, 여행이다 생각하자.
만나는 주무관은 여행하다 만난 이상한 토박이 아저씨고.
생각보다 빨리 수망리에 도착했다.
내려보니 좀 황망하다.
너무 빨리 도착해서 조경팀과 약속한 시간까지 서너시간이 남아버렸다.
이왕 이렇게 된거 동네를 어슬렁거리며 싸돌아 다녔다.
배가 고파오는데 밥집이 없다.
그러다 허름한 칼국수 집을 발견했고 칼국수와 한라산 한병을 시켰다.
급할게 없으니 한올 한올 천천히 면발을 넘기고 소주도 한잔하며 있으니 다시금 기분이 괜찮아진다.
알콜 덕분일까
다 먹고 나오는데, 칼국수 집 앞에 낀깡 나무가 있다.
후식 삼아 두알을 따 입에 넣었더니 입안에 향이 그득하다.
날도 좋고 향도 좋으니 현장까지 슬슬 걸어가기로 했다.
같은 수망리이니 멀어봐야 얼마나 멀겠나.
가는 길이 예뻐서 산책하 듯 걸었다.
아무도 없는 제라스튜디오 에 도착해서 조경과 변속차로 고민을 이어간다.
인적도 없는 곳에 인도를 왜 만들라고 하는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지만 한달 넘게 싸워도 해결이 안되니 좁은 보행통로라도 조경 쪽으로 내줘야할 듯 싶다.
원래부터 계획에 있었던 듯 그렇게 자연스럽게 길을 내주고 그 길을 걷는 이 들의 장면을 떠 올려 본다.(물론 그 길을 걷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새들도 걱정이다. 벽의 필름을 벗기면 쨍한 거울이 될텐데, 들이박고 싸우는 건 아닐지…
아~ 죄다 걱정이다.
다시금 마음에 그늘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