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동 전시 지ppp
긴 꿈을 꾸는 듯하다.
꿈인가 싶어도 여기저기 아프고 힘든 몸이 현실이라 일깨워주니 이 역시 기분나쁜 힘듬은 아니다.
내가 전시를 하고 있다니… 무려 11명의 작가와 함께.
9월 즈음엔가 비워져 리모델링을 기다리는 건물이 아까워 건축주에게 넌지시 전시를 제안했다. 건축하는 이들과 함께 전시를 할 터이니 장소를 빌려달라고.
건축주는 사진작가 조선희였다. 그녀는 자신도 함께 하겠다 했다. 기대 이상의 반응이었다.
오히려 더 다양한 분야의 작가들이 참여하는 전시를 기획하자고 했고 그렇게 12팀의 작가들이 모였다.
전시의 제목을 ‘지ppp’로 정했는데, 오래된 집에서 전시로 신명나게 즐겨보자는 의미였다. 즐기려면 볼거리와 더불어 먹거리도 필요했고 그래서 지인인 양평 기절호떡 사장님을 모셨다.
줄세워 파는 호떡집이 이 전시장에 오면 파리 날릴 것이 뻔함에도 사장님은 기꺼이 전시기간 동안 함께 해주기로 하셨다.
이렇게 9월에 시작된 기획은 5번의 작가 회의를 거치며 뼈대를 갖추게 됐다. 갤러리 없이 하는 상황이라 작가 모두가 기획자가 되었고 일꾼이 되었다.
각자의 주제를 정하고 전시 위치도 정했다.
설비, 조명, 청소, 철거 등의 스케쥴을 조율하고 각자의 역할도 분담했다. 정말로 모두가 함께 하는 전시가 기획된 셈이었다.
이렇게 계획은 구체화 되어 가는데 정작 나는 작품 구상이 막막한 상황이었다.
내가 하려는 주제는 명확했다. 언젠가부터 마음에 담고 있던 주제였으니까.
나의 주제는 이렇다.
시로 그리는 집
건축의 아이디어를 표현하는 스케치는 건축가에게 유용한 도구다. 불행하게도 나는 스케치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건축가이다. 인정을 하니 결핍은 열등한 것이기 보다는 좋은 건축을 하기 위한 강력한 동인이 되었다. 단점 보다는 내가 가진 장점에 주목했다.
내가 가진 여러 장점 중의 하나는 글을 쓰는 능력이다. 그래서 나는 건축을 구현하는 과정에서 글을 중요한 도구로 삼는다.
‘건축은 좋은 장소를 만드는 것이다’라는 철학을 가진 내게 글은 적합한 표현 도구이다. ‘장소’는 ‘공간’과 다르다. 공간은 사람의 존재 여부와 상관없이 있을 수 있지만 장소는 사람이 개입하고 사건을 벌이고 기억될 때 비로소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장소에 담긴 이야기, 기억을 포착하는 방법으로 글만한 것이 없다고 여긴다.
시는 글의 여러 장르 중 특별한 장면이나 감정을 크로키 하듯 빠르게 포착할 수 있다. 시로 그림을 그리고 건축으로 변환한다. 건축이 완성된 후 미처 발견하지 못한 장소를 글로 찾아내 기록하고 다음의 건축에 적용한다. 이것이 내가 찾은 건축의 방식이다.
인류에게 오래 된 문화인 건축과 언어의 협력은 새로운 미래를 맞을 때에도 유효하다 믿는다. 도래하는 ai 시대에 마음껏 상상하고 구현할 수 있는 여지는 글의 행간에서 드러난다고 보기에.
전시 회의를 끝내고 가진 술자리에서 선희가 한 장의 사진을 보여줬다. 그러면서 원고지로 도배를 해보면 어떻겠냐고. 역시 작가 다웠다.
이 한장의 사진 덕분에 내 전시는 방향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내 계획은 이랬다.
원고지에 직접 쓴 시를 벽에 빼곡히 붙이고 그 시가 있게한 자연과 건축물의 사진을 액자에 담아 전시하는 것이었다.
액자는 옛날 집에 걸려 있던 장면을 떠 올렸다.
하나의 액자 안에 옹기종기 자리잡고 있던 가족사진처럼 말이다.
전시를 한달 정도 남긴 시점에서 슬슬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일과를 마치고 집의 다락에 앉아 시를 썼고 일층 살롱에서는 사진을 액자 위에 이리저리 배치해봤다. 3주 정도 걸려 8개의 시를 400장 가깝게 필사했다.
그러면서 늘 불안했던 것은 이렇게 해서 과연 전시가 될 것인가였다.
전시를 3주 정도 앞두고 전시를 위한 실제적 준비에 들어갔다.
워낙 낡고 오래된 건물이라 계단실과 화장실 청소를 했고 전기 설비를 점검하고 보수했다.
전시를 홍보하기 위한 조선희 작가의 대형 사진을 건물 전체에 걸었고 리플렛과 포스터, 각종 스티커를 제작했다.
비용은 전시 참여 작가들이 후원을 받아 해결했다.
십시일반 모으니 꽤 큰 돈이 됐고 전시가 끝난 후 도록도 제작하기로 했다.
우리의 전시는 기존의 작품을 걸기 위해 장소를 활용하는 것이 아닌, 시간을 머금은 낡은 건물의 공간을 작가의 시선으로 재해석하고 장소화하는 데에 목적이 있었기에 많은 작가들이 현장에서 작품을 제작하고 설치했다.
강숙 작가는 낮에 콘티 작업(콘티작가의 시조새 격으로 웬만한 영화나 드라마는 이 분의 손을 거친다)을 하고 밤에는 전시장에 머무르며 초를 녹여 작품을 만들었다.
나 또한 작은 방 하나를 원고지로 도배하는데, 꽤 오랜 시간을 방과 함께 보냈다.
개략 1000장의 원고지를 붙였고 앉았다 일어섰다를 1000번 가까이 하니 어느 늦은 밤에는 마음이 맑아지고 정신이 깨끗해지는 경험을 했다.
아~ 이것이 삼천배의 효과인 것일까.
그렇게 원고지로 도배를 한 작은 방은 어느새 내 방이 되었다. 애정이 듬뿍 담긴.
조한재 소장의 경우, 본인 사무실의 선반을 전시장에 옮겨와 설치했다. ’건축가의 선반‘이란 주제를 구현하기 위한 시도였는데, 성수동이 팝업스토어로 점유되고 있는 상황을 중의적으로 표현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우리는 농담으로 조소장의 전시는 날로 먹는구나 놀리기도 했지만, 후에 전시가 시작되고 일반인에게 가장 사랑받는 장소가 되었다.
나의 파트너인 모소장은 리모델링을 앞둔 건물의 상황을 떠올릴 수 있는 가설재를 활용해 전시장을 구성했다. 모소장도 다른 작가와 마찬가지로 낮에 일하고 밤에 모형을 만들며, 가설재를 설치하고 천을 두르는 고된 작업을 이 장소에서 치뤄냈다.
모든 작가들이 수일의 밤을 이 건물과 함께 했다.
그렇게 우리 모두는 이 건물과 연결되었고 작가들 또한 서로 연결되었다. 아니, 연결을 넘어 연대하게 되었다. 이 전시의 가장 큰 성과가 아닐까 싶다.
다양한 분야의 작가들이 함께 할 때 어찌 갈등이 없을까. 하지만 그런 갈등은 넘어설 수 있는 가벼운 것이었고 오히려 우리가 보지 못했던 것을 일깨워 주는 자극이 되었다.
건축의 과정과 결과물을 보여주기에 급급했던 건축가 들은 특히 더 그랬다.
나 또한 자극 받아 방의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글과 건축의 관계에만 집중했다.
끝날거 같지 않았던 전시 준비는 그래도 끝이 나고 오프닝 날이 밝았다.
오프닝 행사를 위해 함께 머리를 맞대고 많은 고민을 나눴었다.
손님들께 대접할 음식은 초청한 양평 기절호떡에서 준비해주기로 하셨다. 어묵과 호떡으로.
오프닝 행사 당일 아침 작가들이 함께 모여 500개의 어묵꼬지를 만들었다.
오프닝 본 행사에는 소규모아카시아밴드 송은지님께서 노래를 불러주시고 작가들의 염원을 담은 종이를 태워 올리는 의식을 치뤘다.
600명 넘는 분들이 오프닝 날에 찾아 주셨다.
우리의 작업을 봐주고 이해해주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놀라왔다.
이날은 잠시 힙한 사람이 되었고 그 상황에 취해 즐거운 밤을 보냈다.
이날부터 2주 간 전시기간에 2명씩 짝을 지어 전시지킴이를 하고 있다.
이제 중반을 넘어 끝을 달려가고 있다.
많은 분들이 전시를 찾아 줬고 좋아해줬고 응원해줬다. 강숙 작가의 말대로 우리는 전시를 통해 세상을 바꿨다. 참여 작가 모두에게 이미 변화가 생겼고 관람객도 분명 그러할 것이라 믿는다.
스포츠경향 과의 인터뷰에서 난 이렇게 얘기했다.
“사람들은 전시장이라고 하면 완벽하고 깔끔하게 갖춰진 곳이라고 생각하잖아요. 소양을 배우고 격식을 갖춰야할 것 같은 공간. 하지만 이렇게 황폐화된 공간에서 전시를 한다면 이 예술은 누구라도 즐길 수 있는 게 돼요. 사실 예술은 결핍있는 사람들이 소구하는 문화 거든요. 그런 걸 느낄 수 있는 장소죠”
스포츠경향. 이다원 기자
우리의 전시는 11월 30일 까지이다.
더 많은 이들이 남은 기간에 우리의 전시를 보러 와주시기를 기대한다.
30일 마지막 날 오후 3시에는 참여 작가들과 함께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도 마련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