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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의 건축가 Jan 03. 2023

남의 집 구경

남의 집을 구경하는 tv 프로그램이 유행이다.

한 때 음식 관련 프로가 휩쓸었던 때처럼 이 집 저 집 잘 지어진 집을 구경하는 프로그램이 꽤 많다.

대표적인 것이 ebs의 '집탐구'이고 집의 임자를 찾는 '구해줘 홈즈'도 있다.

물론 제일 애정이 많이 가는 것은 목요일 오전 sbs에서 방영하는 '좋은 아침 하우스'이다.

왜? 내가 근 일 년간 진행하고 있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좋은아침하우스를 진행하기 전에는 jtbc의 '그 집이 알고 싶다'란 코너를 맡아 6개월 정도 남의 집 구경을 다녔다.

혼자서 집에 방문해 가족의 생활을 집이 어떻게 담아내고 있는지 관찰하고 건축가의 입장에서 알기 쉽게 풀어 전달하려 했던 '그 집이 알고 싶다'는 파일럿 프로그램이라 지속되지 못했다.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며 두 가지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있었다.

하나는 대학에 출강해서 건축설계 스튜디오를 진행해보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건축가로서 방송에 출연하는 것이었다.

나의 대학시절, 건축가로서의 전망을 스스로 부정하는 내부의 분위기(선배, 교수님)가 건축가가 되는 길의 첫 번째 걸림돌이었다. 

자신의 업역을 존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억지로 그 일을 하고 있는 듯한 모습에 난 과연 건축을 지속해야 할 것인가 고민했던 적이 있었다. 

'배운 것이 도둑질이라서 하는 일'이 아닌 '뿌린 대로 거두는' 실체적 성과가 드러나는 의미 있는 일이며, 도시라는 바다에 건축이라는 배를 띄우는 건축가는 중요한 사회적 역할자임을 건축학도들에게 얘기해주고 싶었다.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학생들의 건축적 감수성과 자존감을 높이는 것에 작은 역할을 하고자 했던 것이 출강의 목적이었다면, 방송은 일반인에게 건축사(건축설계자)의 역할에 대한 중요함을 얘기하고 싶어서였다. 

집을 구매하거나 빌려서 사용해왔던 대부분의 일반인 들은 집의 시공자와 브랜드(래미안, 힐스테이트 등)는 알아도 그 집을 설계한 설계자는 모른다. 아니, 애초에 설계 자체를 시공사에서 한 것으로 아는 사람들도 많다. 수 십 년간 집을 판매(분양)하고 짓는 과정에서 건축가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았으니 건축 설계자는 잊혀진 존재가 되어 왔다. 집이라는 용도에서는 특히.

일반인에게 건축가는 뭔가 기념비적이거나 예술적인 작품을 설계하는 사람이고 집을 짓는 것에는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상한 생각이 일반화되어 있었다.

양평이라는 지역에서 건축설계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런 인식은 특히 더 했다. 

마치 의료서비스라는 것을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아프리카 오지에 툭 떨어진 의사 같은 존재라면, 너무 과장된 비교일까.

너무도 당연하지만 잘 모르고 있는 '집 짓는 과정에서 시공보다 더 중요한 것이 집의 설계'라는 사실을 방송이라는 파급력 높은 매체를 통해 사람들에게 얘기하고 싶었다.  


출강은 비교적 빠른 때에 기회가 왔다. 

설계 강의는 작업의 결과가 축적되고 상도 좀 받고 가방끈이 어느 정도 받쳐주면 해볼 수 있는 기회는 주어진다. 

그런데, 방송은 그런 게 먹히는 영역이 아니었다.

결국 내 얼굴이 문제라는 결론을 내리고 건축이나 열심히 하자 마음 정리를 하고 있을 때쯤 jtbc에서 연락이 왔다. 허안나 씨가 메인 mc로 진행하고 있는 '그 집이 알고 싶다'라는 코너에 전문가 패널로 나와달라는 요청이었다.

오~ 드디어 기회가 왔다.

녹화 전날 대본을 받아 살펴보는데 내 역할이라는 것이 아주 미미했다. 

몇 마디 양념 같은 정보를 얘기해주는 정도. 아쉬웠다.

분량 욕심에 서라기 보단 '그 집이 알고 싶다'라는 제목에서 처럼 그 집에서 사는 이들의 바람이 투영된 집을 살펴볼 때 건축가로서의 역할이 더 많아야 제대로 알게 되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대본의 내용은 허안나 씨의 유쾌함이나 스스로 건축가로서의 역할을 자임하는 집주인의 말에 기대는 것이 대부분이었고 나의 역할은 시공이나 자재에 대한 조언 정도로 제한적이었다.

그래서 대본대로 하지 않기로 했다. 

한 번으로 끝나게 될지도 모르고 방송 자체가 안될 수도 있겠지만 내 나름의 역할을 대본 사이사이에 끼워 넣고 준비했다.

결과는, 허안나 씨에게는 미안하지만 단독 mc로 '그 집이 알고 싶다' 코너를 진행하게 되었다.

6개월 정도 방송을 진행하며 내가 유념했던 것은, 허안나 씨만큼 재미있어야 한다는 것과 부담 없는 이미지였다. 이른바 어깨뽕이 잔뜩 들어가 있고 접근하기 어려운 '건축가'로서의 이미지를 깨뜨리고 싶었고 건축과 집에 대한 얘기가 어떤 얘기보다 재밌을 수 있다는 걸 시청률로 증명하고 싶었다.

'다채로운 아침'이라는 아침 방송의 한 코너인 '그 집이 알고 싶다'는 꽤 괜찮은 시청률을 기록했으나 결국 '다채로운 아침' 프로그램이 폐지되면서 '그 집이 알고 싶다' 코너도 함께 사라지게 되었다.

그렇게 내 짧은 방송인으로서의 경력이 사라지나 싶었는데,

장수 프로그램인 sbs '좋은아침하우스'에서 출연 요청이 왔다. 

 

'좋은아침하우스'는 오랜 시간 방송해 오며 그 성격이 조금씩 변해온 듯하다.

지금은 집의 공간에 대한 얘기보다는 사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에 집중한다. 집주인이 만든 음식을 함께 먹으며 가족의 사연을 듣기도 하고 집에서 살며 어떤 기쁨과 아픔이 있는지 함께 듣고 공감하는 방향은 좋다.

다만 아쉬운 지점은 공간의 얘기와 가족의 얘기가 따로 논다는 것이다.

공간이 가족의 이야기와 엮일 때 공간은 장소가 되고 가족에게 의미가 있게 된다.

그래야 집의 이야기가 생생해질 것이다.

'좋은아침하우스'를 류이라 아나운서와 함께 진행하며, 공간과 사람을 직조하는 역할을 내가 해야겠다는 각오를 했었다.

대본을 무시하고 이런 방향의 이야기들을 풀어냈지만 늘 편집에서 잘려나가기 일쑤였다.

그렇다고 그 역할을 포기하지 않았다.

지금도, 앞으로도 프로그램에서 잘려나갈 때까지 지속할 것이다. 유쾌하고 가벼운 모습으로.


어떤 것에 흥미나 관심을 가지고 보는 정도의 '구경'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는 이의 욕망이 어떻게 공간에 투영되어 장소가 되었는지를 밝히는 것이 '집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의 존재 이유 아닐까 싶다.

단순히 남의 집을 구경하는 정도가 아니라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내 집을 지을 때 힌트를 얻을 목적으로 방송을 본다고 하면,

예쁘고 감각적인 겉모습만 보여줄 것이 아니라 내가 진짜 집에게 욕망하는 속내를 보여주는 것이 맞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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