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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의 건축가 Dec 15. 2022

건축가의 욕망

며칠 전, 헤이리에서 작은 북카페와 출판을 겸하고 있는 쑬딴의 출판기념회에 갔었다.

헤이리에서 부동산중개업, 출판사, 베이커리, 농사 등으로 생업을 이어가는 14분의 이야기를 담은 책 '오늘 같은 날 헤이리'의 출간을 서로 축하하고 응원하는 자리였다.

준비한 음식과 술을 나누며 이런저런 사는 얘기들을 이어가는 중에 출판사 대표님이 진행 중인 집의 공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출판사 대표님은,

2년 전에 헤이리에 집을 짓겠다고 동종업에 계신 두 분과 설계 상담을 하러 오셨었다.

세 분이 각각 구매한 헤이리 토지에 출판사 사무실과 집을 함께 짓고 싶다는 것이었는데, 아무래도 헤이리에 설계 경험이 전무하던 우리가 못 미더웠던 모양이었다. 

우리와 설계를 진행하고 싶었던 출판사 대표님은 함께 온 두 분의 반대에 부딪혀,

결국 설계의 기회는 다른 건축사사무소에게 넘어갔다.

출판사 대표님에게 전해 듣기로는 헤이리 설계 경험이 많고 상도 받은 능력 있고 재기 발랄한 젊은 건축가들이라 했다.

우리보다 더 잘 해낼 수 있겠다 싶었고 그래서 다행이다 싶었다.


출판 기념회 자리에서 출판사 대표님이 들려주는 얘기는 술안주 삼아 듣고 있기에 많이 부담되었다.

자꾸 술잔으로 손이 가고 속이 탔다.

설계부터 시공까지 2년이 걸리고도 아직 끝이 나지 않은 집 짓기의 가장 큰 문제 원인은 시공사가 제공한 것이 자명했다. 

그런데 설계자 또한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아 보였다.

설계자는 우는 아이 뺨을 때리고 있었다.

2년 사이 급격히 상승한 공사비 문제는 비단 이 건축주만 겪었을 문제가 아니기에 차치하더라도 설계자는 시공사와 협의로 어려운 문제들을 풀어가기보다는 자신들의 설계를 털끝만큼도 건드리지 못하게 하는 것에 더 집중한 모양이다.

예산을 초과하고 감당하기 버거울 정도로 비용은 늘어났지만 이렇게 설계를 충실히 구현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내 집에 대한 만족도를 높이는 방법이라 생각해 감당해왔다고 했다.

어찌어찌 헤이리 특검까지 마치고 이제 사용승인 신청을 앞두고 있는데, 설계자가 전화해와서는 거친 마감에 대한 수정을 하지 않으면 사용승인을 접수하지 않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건축주에게는 협박같이 들렸나 보다.

나 같아도 협박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건축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죽기 일보 직전인 사람한테까지 자신의 욕망을 관철시켜야 하는 것인가.

 

출판사 대표님은 말의 끝에 '올해 그 설계자는 아주 큰 상을 받았나 봐요'라고 한숨처럼 뱉어 내셨다.

외롭고 힘들어 보였다.

출판사 대표님에게 건축가는 '남의 돈을 써 자신의 욕망을 실현시키는 사람'으로 각인되었을 것이다.


집은 어떤 이의 욕망을 실현해야 하는 것일까?

집을 짓고자 함이 개인의 욕망에서 시작될지언정 결과물은 사회 안에서, 그 사회의 물리적 환경인 도시 안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므로 돈을 대는 이의 욕망을 무조건 따를 수는 없다.

집을 짓고자 하는 개인(그 비용을 온전히 감당하는)은 이미 최소 단위 사회인 가족의 일원이며,  가족이 바라는 바를 구현하려는 것이 목표이므로 집을 짓는다는 것은 이미 사회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건축가는 이 작은 사회(가족)를 높은 곳에서 새처럼 관조하거나 전지전능한 신처럼 그들의 삶을 좌지우지하려 해서는 안된다.

적어도 난 그래서는 아니 된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설계가 시작되면, 집을 짓는 과정 동안 가족의 일원이 되려 한다.

외부에서 관조하고 조종하는 것이 아닌 그들의 일원으로, 사회 구성원의 하나로 다양한 요구를 조정하고 건축가로서의 욕망을 드러낸다.

돈(예산)은 남의 돈이 아닌, 가족의 돈으로서 존중하고 내가 건축가로서 드러내는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기보단 가족의 일원으로서의 바람으로 받아들여지기를 기대한다.


그래서일까?

난 건축가로서의 욕망을 끝까지 관철시킨 적이 거의 없다.

그래서일까?

난 아주 큰 상을 받은 적이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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