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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의 건축가 Nov 06. 2022

지어져야 한다.

집이 지어지려면 꼭 지켜야 할 선이 있다. 

그 선은 건축주가 집을 짓기 위해 가지고 있거나 혹은 빌려서 투입할 수 있는 돈, 예산이다.

내가 바라는 집을 짓기 위해서 무한정의 돈을 투입하는 건축주는 없다.

특히 은행의 돈을 빌려 건축비를 조달하거나 수익을 기대하며 짓는 집은 예산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예산을 꼭 지켜야 할 마지노선으로,  간절한 마음으로 설계에 임하지만 요즘 같은 시절엔 예측이 빗나가는 경우가 많다.

코로나와 전쟁, 환율과 금리 상승 등의 악재가  예상을 상회하는 자재비 상승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예측했던 비용은 설계가 끝날 때 즈음엔 저 멀리 도망가버리는 상황이니 허탈한 지경이다.

건축주에게 면목이 없는 것은 둘째치고 자칫하면 도면으로 끝나버리는 결과를 맞을까 두려움마저 든다.


건축 설계를 하는 나의 경우, 집에게 기대하는 것은 '현실에 부디 존재하라'이다.

나에게 있어 설계의 최종 목표는 완벽한 디테일과 빠짐없는 도면이 아니라 지어지는 데에 있다.

어떻게든 돈에 맞춰 지어지기만 하면 되는 것인가? 건축가로서 너무 무책임한 것이 아닌가?라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이렇게 되묻고 싶다.


'돈에 맞춰지지 않으면 지어질 수 있는가? 

 건축가의 욕망이 건축주의 목숨 같은 돈보다 더 존중되어야 하는가?'

라고.


물론 모든 경우의 건축 설계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문화적 성취와 예술적 가치를 드러내는 건축물의 경우, 예산보다 그 가치의 실현이 중요할 때도 있을 것이기에. 


이 즈음에서 우리(투닷)가 설계의 과정에서 건축주의 예산을 어떻게 관리하고 적정하게 쓰일지를 고민하는지 몇 가지의 경우를 들어 얘기해보려 한다.


 1. 규모의 관리

설계에 들어가기에 앞서 건축주의 요청 사항을 듣다 보면 '바라는 집'의 규모는 상상 속에서 점점 더 커지고 확장됨을 알 수 있다. 당연한 것이다. 

마음먹고 내 집을 짓겠다고 결정했는데, 하고 싶은 것, 담고 싶은 것이 얼마나 많겠는가.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거의 항상 규모와 예산 간의 괴리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우린 무 자르듯 요청을 댕강 잘라내지 않는다. 일단은 바라는 바를 모두 얘기하게 하고 미련이 남지 않도록 더 많이 얘기하도록 이끈다.

그리고 계획의 단계에서 바람의 교집합을 찾는다. 

여러 바람이 하나의 장소에서 실현될 뿐만 아니라 그것에 더해 의외의 의미가 더해질 수 있는 공간 구성의 해법을 찾아 나간다.

상상 속에서 확장된 집의 규모를 현실의 계획 단계에서 줄여나가는 방법인 것이다.

하지만 건축주의 모든 바람을 담아낼 수는 없다.

예산 안에서 절대 실현 불가한 바람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소원을 들어주는 지니가 아니기에 보통은 건축주에게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게 할  수밖에 없다.

하나는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바람이라면 그것을 구현할 예산을 추가로 마련하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그 바람을 포기하던지 아니면 우선순위가 낮은 바람을 포기하고 예산을 마련해서 구현하는 것이다.


2. 미완으로 남겨두기

처음 지어질 때의 모습으로 늘 한결같이 청춘인 집은 없다.

집은 가족과 함께 자라고 나이를 먹는다.

가족과 함께 변화하고 나이를 먹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단독주택에서 살며 느끼는 행복감 중의 하나다.

그런데 보통의 건축주가 집 짓기를 결심하면, 내 집은 풋풋한 청춘이자 동시에 화려하고 원숙미 넘치는 집이기를 기대하는 경우가 많다.

변화를 지켜보고 가꾸는 즐거움을 왜 남의 손을 빌리고 돈을 들여가며 굳이 먼저 할 필요가 있는가?

라는 질문은 부족한 예산을 합리화하는 꽤 좋은 명분이 된다.


싱싱한 청춘에 원숙미를 더하는 것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조경'이다.

비록 전세로 살던 농가주택이었지만, 난 주말에 정원 가꾸기를 즐겨하였다. 

구멍 난 곳에 잔디를 심고 잡초를 뽑고 허브를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카모마일 꽃밭을 가꾸었다.

산에서 할미꽃을 캐어와 마당 한편에 심어 놓았더니 몇 년 새 할미꽃 밭이 되어 보기 좋았다. 

항아리를 땅에 묻어 놓고 냇가에서 잡아온 송사리를 풀어놓아 작은 수중 세계를 감탄하며 바라보던 즐거움은 특별했다.

딸을 낳고 그 딸이 시집갈 때 장롱을 만들어주겠다는 요량으로 오동나무를 심는다는 얘기는 이제 호랑이 담배 필적 아득한 옛날이야기이겠지만 내 집 앞마당에 뭔가를 기념하거나 훗날 좋은 것을 보기 위해 가꾸는 행위는 그 자체가 즐거움이고 행복한 것이다. 

조경은 어떻게 할 것인가에 따라 적게는 수백에서 많게는 수천까지 비용이 든다.

가족과 함께 수고를 기꺼이 감내하고 즐길 마음이 있다면 미완으로 남겨두고 살면서 채워나가는 것도 방법이라 말씀드리고 싶다.


3. 구조 방식의 결정

다른 문제는 모두 건축가의 의견을 존중하고 따르겠지만 구조는 꼭 철근콘크리트였으면 좋겠다고 말씀하는 건축주를 간혹 대할 때가 있다.

왜 그런 고집을 부리시는지 당연히 이해가 간다.

흔히 2x4 공법이라고 불리던 경량 목구조가 처음 도입될 무렵에는 목재에 대한 이해나 기술력이 부족해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했던 것이 사실이다. 단열이 부족해서 냉, 난방비가 감당이 안될 정도로 부담이 된다거나 문이나 창이 틀어져 개폐에 문제가 있다거나 흰개미 등 해충의 문제가 있다거나...

ALC 공법도 마찬가지였다. 재료의 특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여기저기 하자 투성이인 이른바 싼 게 비지떡인 집들이 지어졌다.

믿을 것은 철근콘크리트 밖에 없다는 인식이 일반화된 것은 철근콘크리트 구조의 장점이 너무나 탁월해서였다기 보다는 이렇듯 문제가 너무나 많았던 다른 구조 방식을 기피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현재는 다른 구조 방식이 드러냈던 여러 문제들이 많이 개선되었다. 

철근콘크리트와 같은 선 상에 두고 필요에 따라 취사선택해도 될 정도의 수준이다. 

단점이 없는 구조 방식은 없기에 집이 구현되어야 하는 바에 합당한 구법을 사용하면 된다. 

집이 평지붕이거나 상층부를 베란다로 활용하려 한다면 다른 구조 방식보다 철근콘크리트 구조가 합당할 것이다. 그러나 높은 천정고를 가지고 박공지붕 등 경사지붕을 활용할 계획이라면 굳이 철근콘크리트 구조여야 할 이유가 없다. 

철근콘크리트 구조의 단점 중의 하나는 습식공사와 건식 공사가 혼재하고 공정이 복잡해서 공사기간이 늘어나고 그에 따른 인건비, 관리비의 증가로 공사비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철근콘크리트는 말 그대로 구조체이고 마감을 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마감을 위한 바탕면이 설치되어야 한다.

공정이 많아진다는 얘기다.

반면 목구조는 목재 자체가 구조체이자 마감을 위한 바탕면이 된다. 공정이 심플하다.

공사기간이 짧아져 철근콘크리트 대비 비용절감의 효과가 있다.


철근콘크리트로 집 지을 때 가장 큰 문제는 제대로 시공할 건설사를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규모가 크지 않은(60평 이하) 경우 더 어렵다.

보통 시공사는 단종 면허를 가진 전문건설업과 종합건설업 면허를 가진 일반건설업으로 나뉘게 되는데, 건축공사를 할 수 있는 자격 요견이 강화되어 이제는 종합건설업이 아니면 대부분의 건축공사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돼 버렸다. 

일이 많고 실력과 기술력이 좋은 시공사는 이미 단종에서 종합건설업으로 업종 변경을 한 상황이고 종합건설업의 특성상 작은 주택의 일은 꺼리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어렵사리 시공사를 찾아도 단종(직영업체)의 시공사보다 견적비용이 높을 수밖에 없어 선뜻 시공을 함께 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반면 목구조 전문업체는 실력 있는 단종 업체들이 여럿 존재한다. 

가격 경쟁력도 있으며, 품질 또한 우수하다.


현실적으로 철근콘크리트로 집 짓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상황이다.

구조 방식을 미리 결정하기보다는 설계의 과정에서 디자인, 비용 등을 고려해 건축가와 협의해 결정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4. 설계는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그 목적 또한 완전한 건축이 아닌 좋은 집 짓기에 있음으로, 

우리는 조건이나 상황 변화가 있을 때에 설계 변경에 능동적이다.

신림동에 신축 중인 작은 다가구주택을 예로 들겠다.

최초 계획은 지하층을 복층으로 사용하는 1층 2가구와 2,3층 4가구, 총 6가구의 다가구주택이었다.

빠듯한 예산에 굳이 지하층을 파기로 결정한 이유는 6가구 모두가 투룸 정도의 면적 구성이 되어야 건축비용을 충당하고 이자비용을 감당할 수 있겠다는 계산 때문이었다.

지하층을 구성하지 않으면 주차로 할애되는 지상층의 한계로 2가구 모두 작은 원룸 정도만 가능한 상황이었기에 다소 무리한 선택을 한 셈이었다.

설계를 완료하고 기존에 있던 구옥을 철거하였다.

지질조사를 시행하는데 사달이 났다.

1.2m 깊이에 암(바위)이 전체 대지에 걸쳐 분포하고 있었다.

이대로 진행했다가는 건축비의 삼분의 일 정도가 땅을 파는데 투입되어야 할지도 몰랐다.

시공사로부터 견적을 받고 보니 예상대로였다. 

지하층 설치를 강력하게 요청했던 건축주는 정말 많이 난감해했다. 

철거까지 끝난 상황에서 되돌릴 수도 없고 더 나아갈 수도 없는, 진퇴양난이었다.

우리가 먼저 대안을 제시했다.

지하는 포기하고 대신 일층의 일부를 90cm 정도 낮춰 상부에 평 다락을 설치하자는 것이었다.

방의 기능으로는 만족스럽지 않겠지만 매트리스 정도만 두고 잠을 자는 침실의 용도로 다락은 쓸만할 것이었다.


건축주의 동의를 얻어 빠르게 설계변경을 진행하고 무사히 일정대로 착공을 할 수 있었다.

지하층이 부분적 반지하와 다락으로 변경되었으니 공사비가 절감된 것은 물론이다.


애초에 완전무결하고 완벽한 건축 설계란 없다.

그마저도 선택의 하나였을 뿐이다.

빠르게 변경할 것을 결정하지 않았다면, 내년 봄 나비가 탈피하듯 비계를 털고 하얀 몸을 드러낼 '동락재'는 

볼 수 없었을지 모른다.

 

집은 기필코 지어져야 한다.

이것이 건축 설계를 하는 내가 집에게 기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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