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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의 건축가 Oct 03. 2022

돌아오고 싶은 집

"다녀오겠습니다" " 갔다 올게요" "다녀오마"

갔다가 오는 것이 전제가 되는 인사다.

우린 그렇게 집을 나서면서 가족의 누군가에게 인사를 한다.

작별이 아닌 돌아옴을 기대하는 인사다.

잘 다녀오겠다는 말을 건네는 건, 내게 거는 주문 같은 거다.

무탈하게 '홈, 스위트 홈'으로 복귀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마음 같은 거다.


어느 순간, "저 가요" "나 간다"라고 얘기할 때가 있다.

무심코 하게 되는 말이라 의식하진 않아도 종종 그럴 때가 있지 않았나?

집은 돌아오고 싶은 곳이어야 하는데,

무의식 중에 드러난 탈출의 의지 일지도 모른다.

나이 먹고 내 식구를 건사하면서 종종 "다녀올게"가 아닌 "나 가~' 라 건성으로

얘기하고 내뺄 때가 있었다.

그러고는 복귀 시간을 가급적 늦추기 위해 일과 술을 핑계 삼았다.

물론 난 아내를 사랑했고 아내가 해준 밥이 맛있었고 아들의 얘기를 듣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 소중한 일상이 하나의 커다란 방 안에서 마구 뒤섞이다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의 무한반복이

싫었을 뿐이다.

그래서 주말이 되면, 집을 탈출했다.

공원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아내가 싸온 도시락을 먹었고 미술관을 걸으며 아내의 손을 잡았다.

커피숖에 앉아 눈꽃빙수를 먹으며 아들의 얘기를 들었고 어깨동무를 하며 산을 올랐다.

 

내가 살던 집은 105동 1304호였다.

1305호가 될 수도 있었고 1203호가 될 수도 있었지만 그때, 그날 우리와 연이 닿았을 뿐이다.

이런 기막힌 인연이 . . . 란 것은 없었다.

이 집이 꼭 마음에 들었어 . . . 도 아니었다.

어차피 다 똑같이 생겼으니.

숫자로 기억되는 내 집은 21평 작은 아파트였다.

두 개의 방과 주방과의 경계가 불분명한 거실, 화장실.

내겐 각각의 장소로 구별되지 않고 하나로 뭉쳐진 방 일뿐이었다.

현관을 들어서면 만나는 무색무취의 균질한 방.

그 안에서 밥도 먹고 똥도 싸고 사랑도 하다가 싸우기도 하고 기쁜 일로 즐겁다가 또 엉엉 울기도 했는데, 어느 때 어떤 상황이었는지 추억하기 어렵게 뭉쳐진 기억이 들러붙은 방이었다.


방은 거주를 위한 공간일 뿐이다. 미완의 장소이다. 

수종사의 종소리가 잠을 깨우는 침실, 마룬(우리집 댕댕이)이가 파수를 서는 창턱에 팔을 걸치고 함께 지나는 사람을 구경하던 거실, 클래식 FM이 흐르는 내 다락방처럼, 사건과 기억이 그 공간에 달라붙어 내게 의미 있는 장소가 되지 않는 한 그곳은 그저 방일뿐이다.

그래서 전에 살던 아파트는 그저 내게 방 같은 존재였다.

103동은 그런 방들이 수십 개가 모인 거대한 방이었고 그 거대한 방이 또 십여 개가 모인 단지는 킹왕짱 큰 방이었다. 

출퇴근 길에 몸을 싣고 달리는 버스와 지하철은 움직이는 방이었고 길 조차도 낯선 이가 흐르는 방일뿐이었다. 


방 탈출.

내가 아파트를 버리게 된 가장 큰 이유이다.

'홈, 스위트 홈'  즐거운 나의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이것이 지금의 양수리 집 '모조'를 짓게 된 가장 결정적 이유가 아닐까 싶다.


'모조'에서 가장 애정 하는 장소는 다락이다.

낮은 좌식 붙박이 책상 앞으로는 책상의 길이만큼 낮게 창이 나있어 그곳에 앉아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한다. 노란 불빛 아래에서 창 밖의 깊은 어둠과 마주할 때면, 언제까지나 안온할 것 같은 마음이 들어 스르르 잠이 들기도 한다.

아내는 거실 테이블에 앉아 지는 해 바라보는 것을 즐겨한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영수증을 정리하다가 멍하니 창 밖을 보고 있는 아내를 목격할 때가 종종 있다.

노을 감상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살금살금 다가가면 이내 나를 보고 웃어주는 아내의 얼굴에는 노을이 묻어 있어 아름답다.

마룬이와 함께 양수리를 산책하는 것은 이제 의식 같은 것이 되었다.

저녁밥을 먹고 하는 산책은 양수리를 탐색하는 시간이다. 마룬이와 함께 풀과 나무와 사람을 관찰하고 접촉한다. 

이른 아침의 산책은 양수리와 함께 호흡하는 시간이다. 

마룬이와 함께 달리며, 양수리의 땅을 온몸으로 느끼며, 마룬이와 양수리와 호흡을 맞춘다.


3년을 모조와 함께 하며, 이 집은 이제 우리 가족의 일부가 되었다.

가족의 사건이 벌어지는 무대가 되었고 그 무대는 사건의 객관적 사실에서 더 나아가 상황을 더 극적이게 해 주었다.

기억이 채색되어 추억이 되었다.

내 몸과 할부하는 집, 나의 행동과 감정이 신경망처럼 집과 연결된 듯한 경험을 하고 있다.

방이 아닌 집에서, 각각의 장소를 꼭꼭 씹어 음미하듯 사는 것이 즐겁다.


삼일의 연휴 동안 양양의 정암 해변을 두 번 갔다 왔다.

한 번은 아내와 또 한 번은 자기만 빼놓고 간 아들을 달래주러 세 식구 함께 갔다.

이른 아침을 달려 빛나는 바다 앞에 섰다. 

아내와 함께한 10월 첫날은 청명했다. 바다와 하늘이 서로의 푸름을 받아 근사했고 바람은 훈훈했다.

연휴의 마지막 날, 잠에 취한 아들을 차에 태우고 다시 정암해변을 찾았다.

째복으로 아침을 먹고 해변을 아들과 걸었다.

쩨쩨하고 보잘것없는 조개라 하여 째복이라 했단다.

고작 조개탕에 비 오는 바다를 보고 오는 쩨쩨하고 보잘것없는 휴일의 아침 나들이었지만 가슴에 묻어 둘 소중한 추억이 됐다.

내 몸과 집을 연결하고 있는 신경망이 이곳 먼 양양까지 이어진 기분이었다.


가는 것도 좋고 돌아오는 것도 좋다.

가는 길도 여행이고 돌아오는 길도 여행이다.

가면 빨리 오고 싶고 돌아오면 살짝 묻은 피로에 기분 좋은 나른함이 있다.

모조에, 양수리에 사는 덕이다.


난, 돌아오고 싶은 집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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