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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의 건축가 Sep 25. 2022

우리가 집에게 기대하는 것들

주어진 것에 기대하는 마음은 부재한다.

부모로부터 독립하기 전까지, 대개의 경우 집은 주어진다.

자가인지 전세인지 월세인지는 가계의 형편에 따른 것일 뿐, 내 의지와 무관한 것이고

아파트, 빌라, 단독주택의 구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주어진 집에 나를 위한 방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그 주어짐이 선물인지 번거로움인지가 결판나는 

정도가 아니었을까.


고등학교 1학년 때 이사 간 아파트에 처음으로 내 방이 생겼다.

홍대 근처에서 광장동(그 때의 광장동은 허허벌판이었다)이라는 멀고 낯선 동네에 왔지만 

내 방이 생겼다는 사실 하나에 기뻤다.

처음으로 침대란 것이 내 방에 들어왔고 나만의 옷장도 생겼다.

그 방에서 결혼하기 전까지 10년을 넘게 살았다.

그동안 음악 하는 친구들, 배우 하는 친구들이 내 방 벽에 잠시 머물다 갔지만 침대도 그대로였고, 옷장과 

책상도 그대로였다.  

10년이 넘는 내 방과의 동거는 내게 특별한 기억을 남기지 않았다.

건조한 내 성격 탓이었을까.

내 방은 나의 장소가 되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선물 같은 내 방과의 첫 만남 이후 방과의 관계는 소원했다.

방(집)은 주어진 대로 사는 공간일 뿐 어떤 기대를 품거나 욕망할 수 있는 대상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까닭이었을까.


집이 가족의 삶을 안전하게 지속시키고 그 과정에서 추억, 동감, 유대라는 결과를 생산하는 재화로서가 아닌 재산으로 여기고 산 것이 백 년이다. 

면적과 방의 개수, 입지, 주거형태(단독, 아파트 등) 정도가 집에 기대하는 것의 다인 양 살아온 것에서 이제야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나(가족)의 욕망을 집에 투영하고 공간을 통해 기대를 실현하려는 작은 움직임이 나의 일(건축설계) 이곳저곳에서 목격되는 것이 그 증거다.

그런데, 나도 그들도(집을 짓고자 하는 이들) 아직은 서툴다.

기대가 부재한 집에서 기대를 기대하지 못하고 살아왔던 터라 어떤 기대를 걸 수 있을지가 막막하기도 했거니와 기대를 어떻게 드러내고(집을 짓고자 하는 이들) 그 기대를 어떻게 구현(나)해야 할 것인지도 어려운 문제였다.


집은 나(가족)에게 객체이지만 나는 그 안에서 삶을 지속한다.

내게 의미 있는 장소의 출발점이자 회귀의 장소가 되는 것이 집이다.

나와 가족을 연결시키고 나의 변화가 목격되고 나의 감정을 묻히는 곳이다.

단순한 물리적 환경 만은 아닌 것이다. 

그렇기에 집에 기대한다는 것은 나(가족)와 집 모두에게 향하는 바람이다.

집의 외관과 인상, 개별적 장소(방, 거실, 주방, 화장실, 마당 등)에 대한 바람은 그곳에서 내 삶이 조화롭고 자연스럽길 기대하는 것이다.

집에 대한 바람은 대개 추상적이고 이차원적이며, 구현은 구체적이며 삼차원적이라 바람을 넘어서는 의외성을 가진다.

내 취향의 반영을 넘어 집에 영향을 받고 내가 변화됨을 느끼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집에게 기대한다는 것은 단순히 바라는 공간을 구현한다는 것에서 더 나아가 행복한 삶으로 나아가기 위한 나와 가족의 변화에 대한 열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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