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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의 건축가 Sep 13. 2022

설계에서 허가는 끝이 아닌 과정일 뿐이다.

집의 설계 과정에서 인허가는 설계의 최종 단계가 아님을 이제는 많은 분들이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인허가를 끝내면 7부 능선을 넘었다 안도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인허가 도서는 말 그대로 인허가를 받기 위한 목적일 뿐 보통의 경우, 공사를 진행하기 위한 도면으로는 

많이 부족하다.

공사용 도면(실시 설계)이라 함은 인허가 도면에서 표현되지 못한 상세 내용을 담아 시공 과정에서 충실한 안내자의 역할을 하기 위한 도면이다.

거기에 더해 어떻게 보면 더 중요한 역할은 정확한 공사비 산정을 위한 준거틀이라는 것이다.

공사에 필요한 내용을 가급적 최대한 빠짐없이 도면에 담아내야 정확한 공사비 산정이 가능하다.

이렇게 산정된 견적으로 계약을 진행하면 추후 공사비 증액에 대한 우려에서 벗어날 수 있다.

혹여 공사 중 건축주의 요청으로 공사가 변경이 되더라도 변경된 부분의 내역을 따져 증감을 살피면, 꼭 증액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렇듯 설계 과정의 최종 목표는 실시설계(공사용 도면)이지 인허가가 아니다.


도시지역에서 주택의 인허가는 대부분 허가(100m2이상) 대상이고 비도시지역에서 인허가는 대부분 신고(200m2이하) 대상이다.

전원(비도시지역)에서 주택을 짓고자 할 때 200m2(60평) 이하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건축신고 대상이 되며, 허가보다는 인허가 과정이 간소화되어 그리 어렵지 않다. 

그렇기에 인허가가 끝났다고 호들갑을 떨 일도 아니다.

그런데 변수가 하나 있다.

건축설계와 같이 움직이는 개발행위(토목, 측량설계) 허가다.

대지가 아닌 임이나 전,답은 인허가 과정에서 개발행위허가가 수반되어야 한다.

측량을 하고 현황에 맞게 성토와 절토를 계획하고 빗물이나 오수 등의 처리를 계획하는 것이 주요 역할이다. 

이러한 토목 설계는 건축 설계가 전제되어야 진행할 수 있다. 

그렇기에 주택 설계에 있어서 건축과 토목설계는 함께 가는 것이고 건축 설계가 한 발 앞서서 토목 설계를 이끌어 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비도시지역에서는 주택을 지을 수 있는 택지개발이 선행되는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 설계 주체는 건축이 아닌 토목이 된다.

전체 단지 계획을 건축 계획이 부재한 상태에서 토목이 하다 보니 그 결과가 자연스럽지 않고 인위적이다.

그런 택지에는 아무리 근사하게 집을 지어 놓더라도 과도하게 높은 보강토 옹벽에 가려 잘 드러나지도 않게 된다.

집을 설계한다는 것은 달랑 건물 만을 설계하는 것이 아니다.

집의 범위는 땅의 경계 안의 모두다. 심지어 하늘까지.

집과 땅을 어떻게 결합시키고 어디에 앉히며, 어떤 높이에 위치시킬지는 집을 설계하는 건축가의 몫이다.

지금처럼 토목의 개발행위허가가 주도하는 현실에서는 먼저 만든 다리 위에 몸뚱이를 올려놓는 어색한 상황 만이 되풀이될 뿐이다.


그렇기에 건축 인허가와 함께 가는 개발행위허가는 건축 계획이 선행된 상태에서 후속되어야 하며, 건축가에 의해 적절히 통제되어야 한다. 


그간 집의 설계는 다분히 정량적 이어 왔다.

기능적이고 경제적인 것이 우선되는 때는 정량적인 방식이 가장 효율적이기도 했을 것이다.

건축 인허가는 정량적이다.

관에서 요구하는 서류와 도면과 계산서를 통해 건축행위를 해도 된다는 허락을 맡는 행위다.

혹자는 주무관과의 친분에 기대고 설득하는 것이 정성적인 영역 아닌가? 라고 얘기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보기엔 그건 스킬이지 정성이 아니다.


집을 설계한다는 것은 정량적인 것에서 더 나아가 정성적이어야 한다.

여기서 정성적이다 라는 것의 의미는 건축 설계자가 건축주의 입장에 서보는 것이다.

처음 집을 계획하는 계획설계 단계에서는 잠시 건축주 가족의 일원이 되어 집에게 기대하는 바의 최대치를 함께 상상하는 것이고, 인허가를 거쳐 실시설계 단계에서는 그 집에 거주하게 될 건축주가 되어 완성도를 높이고 하자요인을 제거하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다. 


정성과 정량이 충돌하면, 정성이 질 수밖에 없다.

정량은 당장에 보여줄 결과가 있고 정성은 지금 당장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성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왜? 그것이 결국은 양질의 건축과 건축비 절감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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