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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의 건축가 Jul 27. 2022

건축사, 자격일 뿐이다.

건축사는 건축인이 거치는 과정일 뿐이지 목표나 출발점은 아니다. 

우린 날 때부터 건축사가 아니었다.

매일 전투 같은 실전(프로)의 나날을 보내며, 틈바구니 시간을 쪼개어 몇 년을 준비해 건축사 자격시험을 통과해 획득한 자격이다. 

나 같은 경우는 장장 십년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겨우 건축사가 되었다. 

건축사가 되는 과정에 본인의 노력이 가장 중요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아마도 가족이나 동료의 응원과 도움이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나 또한 아내의 응원, 직장의 배려 등이 없었으면 중도에 포기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획득한 건축사는 같이 밤을 새며 디테일을 고민했던 동료, 시험공부를 핑계로 의도치 않게 생긴 업무의 공백을 메워 준 선후배의 도움의 공이 크다.



나이 서른에 건축사자격증을 취득한 소팀장

우리를 도와 준 이는 우리의 선배 건축사가 아닌 동료였다.

그 동료 중엔 같이 건축사가 된 이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동료도 있다. 

같은 업무를 하고 때론 배움과 깨달음을 주던 동료가 건축사가 아니라 해서 달라질 것은 없지만 현실은 구별되어지고 차별이 생긴다.

건축사라는 자격으로 사회적인 신분 상승을 이뤘다고 생각하는 덜 떨어진 건축사는 없을 것이고 ‘건축사’와 ‘건축사가 아닌 건축인’을 구분하는 오래된 문화가 그런 차별과 배타를 만들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높은 건축사의 장벽을 넘는 순간, 이쪽과 저쪽이 구별된다.


돌이켜보면,

건축 설계에 발을 들이고 실무를 쌓아가며 건축사(건축사협회)란 존재는 애증의 대상이었다. 닿고 싶지만 닿기 어려운 대상, 같은 일의 영역에 있음에도 소속감을 가질 수 없고 보호받고 있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소외감이 컸다.

이 소외감은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가장 큰 이유가 됐다. 건축사가 되지 못했다면,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내 몸에 남아있을 흉터 같은 것이 되어 나를 괴롭게 했을 것이다.

건축설계 실무자가 건축사협회를 찾을 때는 경력관리나 건축사시험 접수할 때 정도가 다 일 것이다.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건축사협회의 건축사 시험 확대 반대와 건축사들의 이익 쫓기를 목도하며, 건축설계 실무자의 입장에선 나와 상관없는 단체, 아니 내 이익에 반하는 걸림돌 같은 존재가 건축사협회였을지도 모르겠다.

건축사 시험 확대를 반대하는 건축사협회의 입장을 모르는 바 아니나, 어떤 건축사의 ‘사무실 업무에 지장을 초래’ 한다는 주장은 후배 건축인을 조금이라도 생각하고 있다면 해서는 안 될 말이었다. 

이 말에 누군가는 이렇게 말 할 수도 있겠다. 

난 책상 밑 스티로폼을 침대 삼아 살았고 그렇게 주 7일을 잠자는 시간 빼고 건축에 몰입했다. 그런 상황에서 죽을힘을 다해 취득한 건축사다. 그런데 요즘의 업무 환경은 어떤가? 철야는 고사하고 야근도 하지 않는 업무환경에서 건축사 시험마저 2회로 늘어나면 도대체 일은 언제 하는가?


건축사사무소를 경영하는 입장에서 일견 이해되는 주장이다.

이해는 되지만 동의하지는 않는다.

건축사를 취득하는 과정이 업무의 단절을 가져온다는 주장의 기저에는 시험 준비 과정의 문제보다 건축사를 취득한 이후 상황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와 우리의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건축사라는 자격이 획득되는 순간 새로운 출발, 기존 업무와의 결별 수순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기시감.

건축사 시험 준비 과정이 업무를 방해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실은 직원이 건축사를 취득하는 것 자체를 바라지 않기 때문은 아닌가?


건축사와 건축사가 아닌 이를 오랫동안 구별해 온 문화가 있었고 건축사라는 자격이 건축설계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에게 거쳐 가야 할 과정이 아닌 목적지이자 출발점이 돼버렸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는 자기 부정의 모습으로 겨우겨우 버티고 있는 이유가 건축사가 되기 위함이라면 정말 슬프지 않은가.


‘남자 새끼가 그것도 못 하냐'는 말로 자신을 억압한 폭군이며, '부자 간의 끈끈한 정을 단 한 번도 느껴볼 수 없게 만든' 위압적인 존재로 아버지를 인식하는 아들이 많다고 한다.

우상이 될 수 없는 아버지, 동일시 할 수 없어 아버지 결핍에 시달리는 아들의 모습에서 건축 실무 수련자를 떠 올리는 것은 나뿐일까?

상처받은 아들이 다시 아버지가 돼서 아들에게 고스란히 되돌려주고 있는 상황을 목도한다. 

악순환이다  


건축사(협회)는 건축사가 아닌 건축인(학생, 교육자, 실무 수련자, 건축설계 전문가)까지 포용하고 아우르는 자세가 필요하다. 

‘한 아이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좋은 건축사를 탄생시키는 데는 각계의 도움과 노력 없이 불가능할 것이다. 이제는 온 마을(건축인)의 공을 한 아이(건축사)가 챙겨야할 때다.

건축 설계 분야의 가능성, 위상 등을 학생  때부터 실감할 수 있도록 기여하고 실무 수련자에겐 경력 관리 정도가 아닌 예비 건축사로서의 자존감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함이 마땅하다. 

학생, 교수와의 연계가 강화되어야 할 것이고 건축사가 아닌 건축설계 전문가, 실무 수련자 들이 참여할 수 있는 장이 더 넓혀져야 할 것이다.


이미 건축사인 우리는 아직 건축사가 아닌 이들을 품고 좋은 건축사가 될 수 있는 길을 잘 닦아주어야 한다. 

‘이미’와 ‘아직’은 과정 속에 있음이다. 

건축 설계에 몸담고 있는 모두가 아름다운 과정을 함께 하고 있음에 자부심을 가질 좋은 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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