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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의 건축가 Dec 18. 2022

재즈와 같이 사라진 사람들

일 년 만에 술잔 앞에 모인 고등학교 동기 여섯 명.

그중 철환이는 모임이 있을 때마다 보따리장수처럼 한 짐을 내려놓는다.

의류 쪽 일을 하느라 이래저래 생긴 옷들을 챙겨 놓았다가 송년회 즈음에 잊지 않고 가져와 나눠준다.

다른 친구들은 너무 거대해서 보통은 내 몫이 된다.

이번에는 옷과 함께 얇은 책 한 권을 툭 던진다.

길위의인문학 이라는 모임에서 만든 책자에 글 두 편이 실린 모양이다.

놀랍지 않다.

고등학교 시절 문예부였고 엄청난 독서량을 가진 친구였고 무협지를 써보겠다는 욕망도 가지고 있었으니.



‘재즈와 같이 사라진 사람들’이라는 짧은 에세이에 나도 추억을 일부 공유하는 병철 형이 보인다.

혼자 합정역에 살았고 음악에 미쳐있는 듯한 인상의 병철형은 이제 죽고 없다.

고작 두세 번 정도 만난 사이였지만 재즈페스티발에서, 중국집에서, 라멘집에서 봤던 병철형의 인상은 아직도 강하게 남아 있다.

나는 마크 그리들리의 ‘재즈총론’을 통해 재즈를 배웠고 철환이는 병철이 형이라는 사람을 만나 재즈를 즐겼다.

철환이는

병철 형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재즈가 더 이상 재밌지 않은 장르가 됐는지 몇 해 전에 수십 장의 재즈 앨범과 병철형이 오랜 시간 모아 놓은 음악 하드디스크를 내게 주었다.


거리를 두고 귀로 듣던 내게 재즈는 bgm일 뿐이었고 철환이는 사람과 재즈가 한데 뭉쳐진 어떤 것이었으리라.

오늘 먼지가 켜켜이 쌓인 하드디스크를 꺼내 병철이 형을 잠시 만나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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