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통의 건축가 Jun 25. 2023

처마 있는 집

빨랫줄 같은 비가 땅을 치고

골목 자욱하게 먼지 오르면

신주머니 쓰고 210문 작은 발 내달았다

처마 밑 제비가 기꺼이

아랫목을 내어준다 부르지만

버티고선 담벼락은

비와 나를 밀어낼 뿐

담벼락 밖의 나는 닿지 못하는 처마보다

그래서 담벼락 네가 더 미웠다


260문 신발로 내달을 땐

미웠던 너는 없었다

제비도 처마도 보이지 않았다

너보다 몇십 배 큰 거인들이 버티고 서 있을 뿐

수백 개의 눈을 가진 거인은

밤낮으로 눈을 부릅뜨고

어떤 것도 가까이 오지 못하게 했다

장대비가 내 몸을 때려도

신주머니 하나 없는 나는

눈이 무서워 눈을 내리깔고 달릴 뿐이다

그래서 제비가 그리웠다


거인들만 사는 나라 강남에

제비는 가지 못했을 것이다

처마가 없어 집이 없어

갈 곳이 없으니 돌아오지 못하는 것이다

260문 신발의 깊이 만큼

나와 제비에게 내어준 처마가

그래서 그리운 까닭이다

작가의 이전글 인정(人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