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물머리에 능소화 꽃이 피었다.
능소화는 덩굴나무다. 제 몸으로는 서지 못하고 넘에게 기대어 꽃을 피운다.
두물머리에는 오래전 죽은 나무가 하나 있다. 그 나무를 제 몸 삼아 자라는 능소화를 난 이때쯤이면 애타게 기다린다.
오늘 기다리던 꽃을 봤다.
능소화
부엌에 붙어 있던 작은방
순이 누나는 휑하고 차가운 바닥에 앉아
봉숭아 물든 손으로 걸레질을 하고 있었다
책가방을 멘 나보고 늘 그랬듯
잘 다녀왔냐 물었다
말없던 순이 누나는 나만 보면
배고프니? 학교 다니는 건 재밌어?
배고프니? 친구는 많아?
배고프니? 내 친구는 저기 온양에 많다
말이 배고픈 누나는
그래서 밥을 많이 먹었다
봉숭아 물든 손으로 두 눈을 가리고
벽에 기대 앉아 울고 있을 때
손은 참 예쁘네 생각했었다
배고프냐 묻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우리집 가지가 아니어서
꽃이 예뻐도 넘의 뿌리라고
두물머리에서 순이 누나를 보았다
온양에 산다던 누나가
다 죽은 나무에 몸을 기대고
봉숭아 물든 손으로 내게 오라 손짓한다
아니, 배고프냐 묻는다
누이의 손은 여전히 이쁘오 두물이 답해주니
이젠 그만 물어도 좋으련만
#시쓰는건축가 #능소화 #두물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