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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말 Jan 02. 2022

너의 식기세척기

하기 싫으면 기계에게 맡깁시다. 

나는 정말 집안일을 싫어하고 게으른 사람이지만, 참을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싱크대에 씻겨지지 않은 그릇이 남아있는 것이다. 솔직히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면 될 일이다 마는 나는 그것을 도무지 참을 수 없다. 이 습관은 내가 고작 10살이 되기 전부터 들어있는 것이다. 우리 엄마는 요리를 하다가도 쌓이는 그릇이 있으면 곧바로 식기를 씻어내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런 집에서 자라온 큰 딸, 정확히는 외동딸인 나는 그것을 그대로 답습하였다. 나는 어지간한 더러움은 참아도 싱크대에 뭔가가 남아있는 꼬라지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나는 친구의 자취방과 어지간한 남의 집에 가면 일단 싱크대 물을 켜고 쌓여있는 그릇을 치웠다. 그래, 그 것은 일종의 습관인 것이다. 물론 친구들은 모두 내가 설거지하는 것을 말렸다. 그렇다. 손님이 내 집에 오자마자 설거지를 하는 그 모양이 얼마나 불편했겠는가! 하지만 나는 그 설거지 감을 놔두는 것이 더 불편했다. 집주인이 불편해 하는 것은 알지만 내 눈에 설거지 할 것이 보이면 나는 일단 해야 했다. 그리고 내가 누군가를 만나 그의 집을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씩은 들락거릴 때에도 그 습관은 지속되었다. 

"아, 제발 좀 놔두면 안 돼? 지금 당장 쓸 컵이랑 그릇이 없는 것도 아니잖아."

"아니, 지금 그릇이 필요해서 그런 게 아니라 여기 설거지가 쌓여 있는 게 문제잖아." 

이런 대화가 적어도 한 세네 번은 오갔을 무렵이었다. 그는 어느 날 집에 미니 식기 세척기를 들여놓았다.

"야, 회사에서 거의 삼시 세끼를 해결하는 사람이 식기 세척기는 왜 사냐? 개 낭비. 개 낭비다 진짜." 

나는 그를 나무랐다. 솔직히 아침, 점심, 저녁을 모두 주는 회사에 다니는 주제에, 혼자 자취하면서 밥을 해 먹는 경우는 극히 드문 그가 식기 세척기를 산다는 것은 내 기준 기만에 가까운 행위였다. 아니 설거지를 하면 얼마나 한다고. 하지만 그는 대꾸했다.

"그래도 이게 편해." 

"그래, 네 돈 주고 샀다는 데 내가 뭐라고 하겠냐." 

그의 집에서 미니 식기 세척기를 처음 본 날, 우리는 물론 설거지라고는 하나도 나오지 않을 배달 음식을 시켜먹었고, 늘 그렇듯 할 일을 했다. 그리고 한차례 할 일이 끝난 뒤, 나는 그에게 물었다. 

"솔직히 얘기해봐. 너 저거 나 때문에 산 거지?" 

"........, "

그는 한참 동안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니 왜 말이 없어, 돈 아깝게 저건 왜 산 건데? 솔직히 좀 말해봐."

"어, 불편해서 샀어."
"왜? 왜? 뭐가 불편한 건데?"
"아니 손님이 왜 자꾸 설거지를 하는데? 하지 말라고 아무리 얘기해도 말을 안 듣잖아."

"그게 신경 쓰이면 그냥 미리 설거지를 해두는 게 어떨까?"
"아니, 아니. 난 못해. 그래서 샀어. 설거지를 하고 싶지도 않고 손님에게 설거지를 하게 만들고 싶지도 않으니까. 그리고 하나도 안 아까워. 그러니까 그 얘기는 하지 말자."

우리는 다시 하던 일을 계속했다. 기분이 좋았다. 사실 많이 좋았다. 그가 나를 대접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여전히 돈이 아깝다고 생각했지만 어차피 내 돈도 아니고 누가 벌어서 누가 산다는데 내가 무슨 자격으로 그 소비를 탓한단 말인가. 나도 설거지하기 싫고 네가 설거지하는 모습 보기 싫으면 사야지. 그래. 그렇지.

-

그리고 훗날 그는 혼자 사는 오피스텔에 식기 세척기와 건조기, 스타일러를 모조리 들여놓은 살림꾼이자 매력적인 자로 다른 이에게 칭찬을 받게 된다. 아, 그래. 뭐 그렇지. 그렇다. 그냥 그랬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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