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사업을 할 거야"
저녁 밥상머리에서 아버지께서 모처럼 힘이 들어간 음성으로 말씀하신다.
'음..이제 뭔가 새로운 일을 하실 건가 보다.
눈은 동그랗게 뜨고 놀란 눈으로 바라보던 소년의 큰누나가 묻는다
"무슨 사업이오?"
짐짓 비장한 표정으로 아버지께서 대답하신다.
"서점을 할 거야"
에이~, 또 책이야?
소년은 실망했지만 한편으론 안도했다
'어쨌든 이제 더 이상 다리는 안 밟아도 되겠군~'
얼마 후 정말로 소년은 열댓 평 정도 되는 동네 책방 집 막내아들이 되었다.
집 거실에 있는 책들보다 적은 양을 보고 놀라긴 했지만 그래도 종류가 다양해서 좋았다.
한쪽 벽면에는 중고생들을 위한 교재들-콘사이스 영한사전,한자옥편,성문종합영어등이 있고
반대편에는 인문, 교양, 소설 등이 자리 잡고 있는데 집에 있는 우중충하고 두꺼운 문학전집들과 달리 알록달록한 컬러들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홀 중앙 테이블에는 전과, 참고서들과,
여성중앙,주부생활 같은 엄마들 월간지, 그리고 아저씨들이 주로 찾는 선데이서울 같은 주간지 등이 진열되어 있었다.
소년의 관심을 가장 끌었던 건 역시 아이들을 위한 월간지 소년중앙,어깨동무,새소년등등이 있었는데
아버지를 도와서 꽃그림 포장지로 책표지 포장하는 일을 열심히 하면 한 권씩 포상이 주어진다.
어느 날 포상으로 받은 소년중앙을 밤새 보다가 늦잠을 자고 헐레벌떡 학교에 갔는데
분위기가 좀 이상함을 느낀다.
교실에 모두 선채로 조회를 하는데 스피커에서 교장선생님께서 침통한 목소리로 말씀하신다.
대통령 각하가 돌아가셨단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으나 급기야 울먹이시는 교장선생님 덕에 반 아이들까지
덩달아 울고 있다.
'음..나도 울어야 하는 건가..
그냥 일단 우는 척해보자..'
우는 연기가 잘 통했는지 선생님은 일찍 집으로 보내주셨다.
집에 와서 테레비(TV)을틀었는데 어느 채널을 돌려봐도
온통 땅바닥에 엎드려 통곡하는 할머니들 뉴스만 나온다
'음..대통령 각하는 친척이 많으신가 보다'
소년은 테레비 문을 닫고 책방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