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2
대지, 죄와 벌, 좁은 문......
‘무슨 말일까?’
국민학생이 된 소년은 이제 책들의 제목을 살펴보는 일이 재미있게 느껴진다.
‘알퐁스 도데.. 사람 이름인가?’
꺼내서 대충 읽어본다
“글자”들은 판독되는데 “글”을 이해하기에는 역시 아직 무리인가 보다.
안방에서 아버지가 부르시는 소리에 책을 도로 꽂아 넣으며 생각한다.
‘또 다리를 밟아야 할 시간이군’
아버지는 얼마 전 근무하던 학교를 그만두신 후로 줄곧 방 안에서 누워만 계신다.
뭔가 분통한 표정으로 천장을 보고 계시다가 이따금 나를 불러서 다리를 밟아달라고 하신다. 누워있는 아버지의 종아리께 애 올라가서 한 이십분 정도 있다가 내려온다.
‘이렇게 하면 정말 시원할까?’
저녁식사 시간에 이삿짐을 싸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또 이사 가?’
책장의 책들이 꽂혀있는 위치와 모양새가 눈에 익을만하면 영락없이 집을 옮긴다.
언제부터인가 이사할 때 책들을 옮기는 일에 나도 일꾼 노릇을 하고 있다.
바닥에 약 20권 정도의 책을 쌓아놓은 후 진홍색 또는 노란색노끈으로
들기 좋게 묶는 일인데 책표지 위에 +자 형태로 묶여있는 끈에 손가락을 끼워 넣고
운반하는 일은 꽤나 편리한 운송 법이었지만 집 안을 가득 메우고 있는 그 많은 책들을
트럭에 옮기는 일은 할 때마다 짜증스럽고 곤욕이다.
이번에 이사한 집도 먼저 살던 곳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 비슷하게 생긴,
하지만 좀 더 작은집이었다.
저녁 무렵이면 책장들이 자리를 잡고 책들은 방 가운데에 산처럼 쌓여있다
어차피 밤새 정리해야 할 것들이고 이쯤 되면 소년은 한쪽 구석에 파김치처럼 앉아서
‘이제 올 때가 된 거 같은데...’
생각하며 그 목소리를 기다린다.
“짜장면 왔어요~”
낯익은 중국집 주인아저씨가 들어오시며 나를 보고 한마디 하신다.
“너네 집 또 이사했구나~‘
알듯 모를듯한 아저씨의 미소를 생각하며 짜장면 그릇을 비우고 책 정리를 시작한다.
글자를 모르던 시절부터 책장 정리는 소년의 몫이었다.
크기별 색깔별 요리조리 조각 맞추듯 하나의 형상을 빚듯 책 정리를 해오곤 했는데,
글자를 읽을 수 있게 된 후로는 1,2,3 숫자에 맞춰가며 전집을 배열하는 새로운
업무가 추가되어 훨씬 더 손이 많이 간다.
'이것 참 피곤한 물건들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