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내려온다

여우를 피하면 호랑이를 만난다.

by 주혜

우연히 유튜브에서 이 날치의 '범 내려온다'의 노래와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의 신나는 춤 동작을 보고 너무 신선해서 주변의 아는 이들에게 전한 적이 있었다. TV 광고나 매체에 뜨기 전이었다. 판소리 수긍가인 범내려오는 대목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곡이다. 자라가 토끼인 줄 알고 호생원이라 존칭을 쓰니 신나서 내려오는 거라고 한다. 예전에는 산이 깊고 맹수들이 있어 호랑이와 연관된 속담이나 이야기들이 많았다. 곶감과 호랑이 이야기는 우는 아이를 달래려 호랑이 온다고 해도 안 그치고 곶감을 준다니 그치는 걸 본 호랑이가 곶감이 자기보다 더 무서운 동물인 줄 알고 도망갔다는 이야기인데 재미나다. 또 여우를 피하면 호랑이를 만난다라는 속담은 작은 일을 피해 가면 큰 일을 만난다는 뜻이다. 사는 게 그렇다. 한 고개 넘었나 싶으면 또 다른 고개가 다가온다.

피해 가면 될 거 같지만 안 되는 일들이 있나 보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 했던가. 딸이 어려서부터 아프다 보니 오빠인 아들도 돌봄을 받아야 하는 때인데 고모댁으로 큰 엄마 댁으로 혹은 아빠를 따라서 회사에 가기도 했다. 수시로 병원을 드나들며 입퇴원을 반복하니 딸보다 아들이 엄마와 떨어져 정서가 더 불안정했나 보다. 꼭 집어서 그 이유가 다라고 할 순 없지만 아들은 중고등 때 공부를 안 했고 본인 말로 원 없이 놀았다 하니 부모인 내 속은 숯 검댕이였다. 너 같은 자식 낳아 봐야 알지. 어찌 부모 마음을 헤아리겠나.....

그런 아들이 군대도 다녀오고 자기가 하고 싶은 걸 찾아 편입도 하고 취업도 했다.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것이 없다고 했을 때는 눈앞이 깜깜 하더니 자기 일을 찾고는 스스로 열심히 공부도 하고 행복 하단 말을 들으니

아이스크림이 녹듯 내 마음도 녹았다. 부모는 이런 걸까...

그동안의 힘들었던 기억들이 한 편의 광고처럼 스쳐 지나갔다.



요즘 우스갯 소리로 아들은 손님이라고 한다. 해외에 가 있으면 해외동포라고 한다. 울 아들은 거의 집에 있는 시간이 없었다. 자유로운 영혼이랄까... 잔소리도 얼굴 볼 시간이 많지 않아 할 수도 없었달까. 핸드폰이 그나마 있었으니 망정이지 없었으면 어쩔 뻔했으려나. 말로 하다 보면 감정이 격해 질 수도 있고 말이 두서없이 될지 몰라 난 편지 쓰기를 가끔 했다. 그래서 아들과는 카톡으로 자연스레 소통을 하게 됐다.

말보다 글이 편한 엄마다.


아들이 삼십이 넘으니 서른다섯을 넘기지 말고 결혼했으면 싶었다. 그저 마음속으로. 그런데 어느 날 결혼을 한다는 거다, 갑자기, 아무런 준비 없이. 하지만 준비라는 게 이것저것 다 하려 들다간 늙어 머리가 허옇게 되어서나 될지도 모를 일이다. 집 사기 힘들고 애 키우기 힘들고 배우자랑 함께 살려면 챙기는 거 많고 참아야 할 것도 많고 모든 게 어려우니 요즘 젊은이들은 혼자 살려고 하는 이들이 많은가 보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결혼한다고 하니 엄마 입장에서 걱정이 먼저 앞섰다. 하지만 대견하기도 하고 며느리를 보니 반갑고 좋기도 했다. 코로나 상황에서 결혼식을 한다는 것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라 아쉬운 부분들이 많았지만 무사히 잘 치른 것에 감사했다. 집 구하기도 엄청 힘든 때 아이들에게 좋은 곳으로 구할 수 있게 된 것도 모든 게 나로서는 하나님의 은혜 아니고는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넘쳐 났다.

새 생명까지 있었으니 난 눈물로 기도 할 수밖에...


장가보내면 다 될 줄 알았다. 그건 나만의 착각. 또 다른 시작이라고 그 누가 말했던가. 옵션으로 둘이 더 딸려 오니 일거리도 걱정거리도 세트로 딸려 온다는 걸 그제사 깨닫는다. 시어머니도 처음이고 아들도 며느리도 다들 처음!! 자기 앞의 생을 사느라 제정신이 아니다. 아들 부부는 전쟁 같은 삶을 치열하게 살고 있다.

내가 예전에 그랬듯이...

아들과 소통하다 보니 때론 내가 아들을 낳은 걸까, 딸을 낳은 걸까 헷갈릴 때가 있다. 힘든 아들을 위로하고 달래고 며느리를 토닥이고 손주 룰 가끔 봐주며 먹을 걸 해 나르고. 힘들어도 너희들만 잘 살아준다면 뭘 바라겠니. 산 지 얼마 안 된 미니 선풍기를 날름 가져가는 얄미운 도둑 같더러도 선뜻 내주게 되는걸^^



아들아~ 지금 힘들다고 피하면 '범 내려온다' 세상엔 공짜가 없어. 겪을 거 다 겪어야 지나간다. 고속도로

가다 보면 터널이 나오잖아 잠시 그 터널을 지난다 생각하렴. 긴 터널이 지나면 멋진 풍경이 나오잖니.

목적지에 도착하려면 여러 개의 터널이 나오듯 또 어려움이 오기도 하겠지.

날씨도 그렇잖니~ 매일 화창하고 좋은 날만 있을까. 비바람 부는 날도 있는 거고 구름이 잔뜩 가려

흐린 날도 있는 법. 피하기 어려우면 즐기란 말이 있단다.

수많은 사람들 중에 만난 인연은 귀한 거니 내 곁에 있는 사람을 소중히 여기렴.

세월이 흐른 후 피하지 않고 견딤을 잘했다 여길 수 있도록.


캘리그래피: 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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