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난 싸돌아 다니길 좋아했던 거 같다. 집에 온기가 없어서였을까... 놀 것이 없어서였던 것도 같고. 엄마가 없는 집은 온기가 없는 집 같다. 그 시절엔 먹을게 귀했다. 간식은 더구나 먹을 게 없었다. 집에 살림해 주던 할머니는 밥만 해 주셨었다. 생선도 아버지 드시고 남아야 겨우 한 점 먹을 수 있으려나. 길거리에는 그래도 먹을 걸 팔았는데 연탄불에 국자 놓고 달고나를 만들어 파는 아저씨가 있었다. 별 모양, 달 모양 그 모양대로 잘 만들면 또 하나의 달고나를 먹을 수 있었다. 그 달달한 맛과 냄새는 어린아이들을 사로잡아 그 앞엔 언제나 아이들이 코를 찔찔 흘리고 침을 꼴깍 삼키며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뽑기라고 해서 돈을 내고 종이를 뽑아 보면 커다란 모양의 사탕이 걸릴지 작은 사탕이 걸릴지 나온다. 나비, 동물, 자동차 등 각종 모양의 연하고 노르스름한 사탕이 참 신기했다. 어린 나이에 갈 곳 이라고는 동네 밖에 없고 그나마 학교가 제일 만만 했다. 그네, 미끄럼틀, 시소, 정글짐, 철봉 놀 수 있는 곳이 있었으니까.
국민학교 1 학년 때 학교 끝나고 집에 책가방 놓고서 또 학교에 가서 놀았었다.
옛날엔 학교 화장실이 푸세식이라 무서운 이야기들이 참 많았다. '빨간색 종이 줄까? 파란색 종이 줄까?' 귀신이 말한다며 겁나는 이야기가 수두룩 했다. 누가 지어 낸 거지 알지도 못 하는 얘기들을 서로 떠들어 댔다.
그 옛날엔 휴지도 귀해서 일력 (하루하루 날짜가 쓰여 있는 달력)을 여러 번 문질러 부드럽게 만들어 쓰곤 했다
화장실뿐만 아니라 학교에 달걀귀신, 소복 입은 여자 귀신 등등 무서운 귀신 이야기가 굉장히 많았었다. 하지만 무서워도 놀 곳은 거기뿐이라 해 떨어 지기 전 까진 학교가 놀이터였다.
남동생은 심심하니까 나를 따라다녔고 나 역시 친구가 없어서 따라오는 동생을 막진 않았다. 실컷 놀고 배가 고플 때쯤 학교 앞 분식집인지 핫도그를 팔았는데 그게 그렇게 먹고 싶어서 그 앞을 떠나지 못하고 계속 서 있었나 보다. 퇴근하시던 담임 선생님이 나를 보시고 핫도그를 사 주셨다, 동생것 까지.
그때 핫도그가 10원으로 기억하는데 그 맛은 아마도 영원히 잊을 수가 없을 거 같다.
한 번은 할머니가 머리를 감겨 주신다고 남동생을 먼저 감기고 잠깐 기다리라 했는데 그 사이를 못 참고 나가서 된통 혼난 적도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니 하러 네가 이해된다. 연탄불에 물 데워 씻겨야 하는데 고 새를 못 참고 나가 버렸으니 얼마나 화나셨을까... 실은 그 윗동네에 나이 어린 친구가 있었는데 어떻게 사귀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 집 어머니는 대폿집 같은 장사를 하셨던 거 같고 어린 딸이 있었는데 그 아일 봐줄 사람은 없었나 보다. 난 그 집에 가는 게 좋았다. 걔는 예쁜 인형이며 인형 옷이며 장난감이 많았고 같이 놀아 주면 그 아줌마는 맛난 순대를 주셨다. 그러니 내가 그 집에 놀러 갈 수밖에.
동생을 따돌리고 갈 절호의 찬스를 놓칠 순 없으니까....
그럴게 어릴 적엔 학교에서 놀다가 동네 한 바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그냥 어디를 목적지로 삼은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한 바퀴 돌고 오는 것이었다. 그 버릇이 남아선지 중학교 때는 찬구랑 인사동에 그림 보러 다녔고 고등학교 때는 기분이 꿀꿀할 때 동네 한 바퀴 돌다가 친구 집에 가서 수다도 떨고 밥도 얻어먹고 오곤 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 때는 어스름 해 질 녘이다. 그 시간에 어느 집에서는 부지런히 저녁을 준비하는 음식 냄새가 풍겨 나오기도 하고 도란도란 소리가 나기도 한다. 그 분위기가 참으로 좋다. 집으로 모여드는 시간과 그 냄새 , 하늘은 여름 녁 길게 노을이 지고 저녁때 느껴지는 공기의 냄새가 있다. 어떤 때는 옥상에 올라가 하늘과 먼 풍경을 바라보며 '멍 때리기'를 했다. 그때는 멍떄리기란 말 조차 없던 시절이었는데 난 그걸 하고 있었다. 공뷰가 하기 싫어서 그랬나...
눈이라도 내리면 똥 강아지처럼 뛰어 나가 눈을 밟고 다니고 눈을 맞고 다녔다.
그때는 레코드 점이 있어서 커다란 스피커를 밖에 내놓고 유행하는 음악을 크게 틀어 놓아 그 앞에서 음악이라도 듣고 오곤 했다. 용돈을 모아 카세트테이프를 사기도 하고 음악 잡지도 구경하고 , 음악이 흐르는 그곳은 참새가 방앗간을 지니 치지 못하듯 그 시절 래코드점은 동네 한 바퀴 코스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소였다.
또 한 곳은 도서 대여점 , 소설이나 만화책, 영화 비디오 테이프를 빌려 주던 곳이다. 소설이나 만화, 영화의 세계가 펼쳐지는 곳이니 이곳 또한 너무 좋아하는 장소였다. 무한 상상의 세계가 있는 공간이니 얼마나 멋진가....
내가 가 보지 못한 곳, 새로운 새계를 만난다면 그보다 멋진 일이 있으려나.
내 다른 꿈의 하나는 이런 책방 주인이 되는 거였다. 매일 책을 읽을 수 있을 테니까.
지금은 동네 한 바퀴를 혼자서 때론 남편과 돌고 있다. 집 근처에 걷기 좋은 탄천이 있는데 그곳은 사람들로 늘 북적인다. 마스크 시대라서 사람이 한적한 동네 한 바퀴가 내겐 딱이다. 산 밑이라 공기도 신선하고 예쁜 주택가가 있어 집 구경하기도 재밌다. 2층에 멋진 테라스를 꾸민 집을 보며 '저 집엔 누가 살려나...' ' 예쁜 테라스처럼 예쁜 사람이 살까' 별 희한한 생각을 하며 혼자만의 상상의 세계로 빠지기도 한다.
TV 프로그램에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라는 것이 있어 본 적 있다. 제목부터 친근했다.
닟 선 동네의 새로운 모습과 맛 집, 사는 얘기들을 담아서 참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었단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자기가 사는 곳, 악수 해져 있는 곳을 좋아한다. 그래서 자기 동네가 제일 좋은 곳일 수 있다. 아침에 새소리가 시끄럽게 나를 깨워도 난 이 동네가 참 좋다. 조용하고 깨끗한 동네, 시골 같은 청량한 공기가 참 좋다. 오늘도 저녁을 일지감치 먹고서 동네 한 바퀴 쓰~윽 돌아보려 집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