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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 드릴까요?

독립 영화관 티켓부스 앞에서 항상 망설이는 이유

by 김쟈


브랜드 디자이너들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을 공유합니다.
디자인 토크쇼 쉑 댓 브디브디




안녕하세요? 디자인 토크쇼 '쉑 댓 브디브디'의 첫 호스트가 된 브랜드 디자이너 김쟈라고 합니다.

첫 번째 토크쇼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영화보기를 좋아하는 저는 각종 독립영화관도 자주 찾는데요.

미리 예매한 티켓을 교환할 때, 부스 앞에서 다음과 같은 대화를 주고 받곤 합니다.



상황 1

- 인터넷으로 예매했어요.

- (번호를 알려주고 티켓을 뽑아주신다) 포스터 받으시겠어요?

- 음 . . . 네 . .

- 포스터 드릴게요.

- 감사합니다. (포스터를 들고 돌아선다) (몇 발자국 갔다가 다시 돌아선다) 저 포스터 안 받아도 괜찮을 것 같아요. (돌려주지만 조금 아쉬워한다)


상황 2

- 인터넷으로 예매했어요.

- (번호를 알려주고 티켓을 뽑아주신다) 포스터 받으시겠어요?

- 음 . . .아니요. . ? (가지 않고 기웃거리며 미련을 보인다)

- (꺼내서 보여주신다)

- 받을게요 . . . 감사합니다. (포스터를 들고 돌아서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올 때 다시 반납할까 생각한다)



그러니까 포스터를 받을지 말지를 고민하는 일이 반복됩니다.

그냥 주신다는데, 좋아하는 영화니까 받고는 싶은데,

질문을 받는 순간 수많은 생각이 와리가리 쏟아져서 청기 올렸다 백기 올렸다 이랬다 저랬다 합니다.


이걸 들고 계속 다녀야 돼? 나 가방 작은데? 오늘 추운데? 장갑 없는데?
아냐 그래도 들고 다니는 건 안 힘들어. 문제는 집에 가면 이거 쓰레기가 되지 않을까?
근데 안 받으면 아쉬운데? 받고 싶긴 한데? 오늘을 추억할 수 있는데? 다시 못 받는데?


이런 고민, 혹시 저만 하는 것일지 궁금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에 대해 간단히 고찰해보고, 몇 가지 새로운 대안을 함께 상상해보고 싶어요.



망설임 끝에 받아온 포스터들. 집 안을 뒤져 찾아보았어요..





1. 망설임의 근본적인 이유


먼저 제가 왜 고민하게 되는 것일지, 근본적인 이유를 생각해보았어요.

'포스터가 크다' 는 점이 가장 부담스러운 것 같아요.

하지만 포스터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포스터니까 크긴 해야겠죠?

이해는 되지만, 여기서 포스터의 목적과 의미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은 다음과 같이 포스터를 정의합니다.




'광고나 선전을 위해 붙이기 위한 매개체' 라고 요약할 수 있겠네요.

하지만 우리(극장을 찾은 관객들)는 이미 광고와 선전을 SNS / 인터넷 등으로 접한 덕분에 극장에 왔습니다. 포스터의 자리는 이미 다른 매체가 대신해 둔 상태입니다. 십중팔구 받은 포스터는 거리 대신 아늑한 집에 붙여두게 될 거고요. 포스터의 기능이 축소된 시대, 굳이 증정할 필요가 있을까요?

하지만 수집의 행위 자체에 의의를 두는 거라면, 포스터의 기존 역할을 넘어 하나의 굿즈로써 바라본다면, 좀 더 다양한 방식을 제안해볼 수 있을 거에요.



2. 간단히 비교해볼게요


먼저 가지고 있는 영화 관련 지류들을 모아 사이즈와 재질감을 확인해보았어요.


① 30*42.5 (cm) 비포 선셋 포스터 (유사 A3)

비교적 두껍고 광택이 없는 종이에 단면 프린트 되어 있어요. 보통 많이 증정되는 포스터이고 제가 받을지 말지 고민하게 되는 바로 그러한 종류의 포스터랍니다.


② 21.5*30 (cm) 너와 나 전단 포스터 (유사 A4)

기존 영화관들에 꽂혀 있어 내킬 때 가져갈 수 있는 전단형 포스터에요. 양면으로 되어 있어 뒷면에는 영화의 시놉시스 등이 프린트 되어 있어요. 용도가 다르기에 이렇게 제작되었지만, 같이 두고 비교하니 확실히 사이즈도 작아지고, 재질감도 얇아져 보관하는 입장에서 ①번보다 아쉬워요.


③ 17.5*10.5 (cm) 슬픔의 삼각형 엽서형 굿즈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증정 받았어요. 낱장 여러 개로 구성되어 있는데 앞면에는 영화 장면들이, 뒷면에는 일러스트로 표현된 영화의 장면이 대사와 함께 프린트 되어 있어요. 도톰한 무광택 종이에 프린트 되어 있어 좋은 종이의 느낌이 느껴졌으며 작은 크기로 부담이 없었어요.


④ 9.5*6 (cm) 미망 무주 영화제 굿즈(?)

무주 영화제에서 관람했던 영화 '미망'의 한 장면이 프린트 된 지류에요. 귀도리가 라운드 처리된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입니다. 뒷면에는 감독님의 성함과 영화제에 출품된 섹션명이 프린트 되어 있습니다. 명함 정도의 사이즈로 매우 작네요.




3. 이렇게는 어떨까?


살펴본 것들을 레퍼런스 삼아 + 간단한 상상력을 더해 제안해보겠습니다.


☆ Lv. 1 작아지기..

그냥 간편하게 수집할래요. 저는 가방에 쏙 들어가는 작은 포스터면 아.묻.따 무조건 받겠어요.

가장 심플하고, 효과적인 방법이며 인쇄 비용 측면에서도 굿!

다만 크기는 작아지더라도 큰 포스터와 동일하게 도톰한 종이에 단면 인쇄를 해서 소장 가치가 좀 더 있다면 좋겠습니다. 위에서 살펴본 ② 21.5*30 (cm) '너와 나', ③ 17.5*10.5 (cm) '슬픔의 삼각형' 둘 사이 정도의 크기면 좋을 것 같다는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A5나 B5 정도의 사이즈가 될 것 같아요.


☆☆ Lv. 2 엽서가 되..

큰 포스터를 작게 만드는 것에 더해 양면을 활용해 엽서 굿즈로 탈바꿈해봅니다.

'③ 슬픔의 삼각형' 엽서형 굿즈 경험이 재밌었거든요. 영화 전에는 궁금증을 자아냈고, 영화가 끝난 뒤엔 착착 넘겨보며 줄거리를 돌이키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엽서의 뒷면을 비워둔다면 같은 영화를 좋아하는 친구에게 훌륭한 편지지 역할도 되어주겠어요.


☆☆☆ Lv 3. 책갈피가 되..

영화가 좋다? 그럼 원작도 읽는다. 그럼 영화를 좋아한다? 책도 좋아할 확률이 매우 크다. (제 생각입니다.)

책갈피는 독서가들에게 언제나 유용하고, 작은 선물로도 주기 좋아요.

쉽게는 기존 포스터의 판형만 리사이징해도 좋을 것 같고요.

타이틀 레터링만 담은 앞면, 이미지만 담은 뒷면 등 앞 뒷면을 분리해서 디자인해보아도 좋겠어요.

그 외에도 조금만 아이디에이션 해보면 무궁무진한 방식이 있겠죠.

영화의 상징적인 오브제를 책갈피로 만든다거나 하는 식으로요!


☆☆☆☆ Lv 4. 스탬프북이 되..

영화를 볼 때마다 스탬프를 모을 수 있는 영화관이 몇 군데 있습니다. 포스터를 아주 작게 만들어서, 스탬프 대신 활용할 수 있게 하면 어떨까요? 여권처럼 스탬프 북을 만드는 거죠.

무엇보다, 영화관 자체에 대한 특별한 애정이 새로 추가될 거에요. 관객이 영화를 볼 때, 혹은 보고 나서 바로 몇 마디 감상을 적어볼 수도 있는 노트가 되기도 할 거고요. 이 날, 이 곳에서, 이 영화를 보았구나를 따로 기록해두지 않으면 자주 잊게 되는데요. 이 스탬프북이 있다면 차곡 차곡 수집하는 역할을 해줄거에요. 관객과 공급자에게 모두 특별한 브랜드 경험을 담은 굿즈가 되리라 장담합니다!




4. 목적이 있는 경험, 그리고 굿즈


당연히 기존에 배포하는 사이즈의 포스터를 수집하는 분들도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도 막상 눈 앞에 두고 비교해보니 큰 크기가 주는 포스터의 맛이 있더라고요. 그러니 이 정도는 되어야 수집하고 싶은 마음을 느끼는 분들도 계시겠죠?

영화관의 입장에서는 상영하는 모든 영화에 특별한 경험을 담기는 어렵고 그럴 필요도 없을 거에요. 이미 굿즈 패키지가 있는 영화에는 특별한 굿즈를 만들어 증정해오고 있기도 하고요.


에무시네마에서 받았던 ’괴물‘의 아티스트 특별 콜라보 포스터와 엽서들


다만 포스터 증정과 수집이라는 작은 경험이더라도, 다시 한번 목적을 고려한다면 좀 더 편하고 의미있어질 수 있지 않을까, 더 나아가 소장가치를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브랜드 디자이너의 입장에서 톺아보았어요. 스탬프북과 같은 하나의 브랜드 경험으로 확장해 영화관에서의 경험을 보다 독창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통로가 될 수도 있고요.


굿즈에 대해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굿즈는 한번 만들면 계속해서 사랑받고 쓰임받아야 아깝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엄연히 수행해야 하는 역할이 있는 막중한 녀석이에요. 일전에 어떤 전시를 보러갔을 때, 전시가 끝나고 자연스레 이어지는 기프트숍을 보고 깜짝 놀랐던 경험이 있습니다. 지나치게 많은 굿즈들을 판매하는 것이 과하게 느껴졌고, 전시의 마지막을 기념하는 곳이라기보다 다 본 전시까지 상업적으로 느껴지게 한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무작정 다양한 항목으로 베리에이션하기 전, 쓰임과 목적을 제대로 고려해야 의미 있고 환경적 측면에서도 덜 부담스러운 굿즈가 되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굿즈가 꼭 어떤 완성된 오브제나 상품이 될 필요는 없는 거라고 생각해요. 양산형 굿즈보다, 브랜드 경험을 제대로 전달하는 굿즈가 때로는 더 특별하지 않을까요?




추가로 영화 맛집, 마케팅 맛집, 요새 제일 핫한 그곳..
제작사 A24의 매력적인 굿즈 사이트를 잠시 소개합니다.

기본적인 포스터부터, 발칙 깜찍한 아이디어들을 영화와 접목시킨 굿즈까지 다양하답니다.


1. A24의 10주년을 기념하며 제작된 '10 Year Collector's Set'

아티스트의 핸드 드로잉으로 그간 출연한 아이코닉한 캐릭터들을 담은 카드세트.


2. 레이디 버드 네임패치

레이디 버드를 본 사람이라면 단번에 이해할 것입니다. 영화와 굿즈의 직관적인 연결이 명쾌하고 좋습니다.


3. 미니 퍼즐 시리즈

영화의 상징적인 오브제를 퍼즐로 만들고 있네요! 그것도 이렇게 아름다운 틴케이스에 담아 주다니..


제가 가장 특별하다고 느낀 점은, Sold Out된 굿즈들도 삭제하지 않고 아카이빙 탭에 모두 모아둔다는 거에요. 여기서 A24가 굿즈를 단순한 상품 이상의 것으로 대한다는 것, 심혈을 기울인 그들의 애정을 엿볼 수 있었답니다. 내가 만든 굿즈, 내가 제일 사랑한다! 의 느낌이랄까요


그 외에도 재밌는 아이템들이 너무 많으니 심심할 때 함 둘러보세요.

https://shop.a24films.com/collections/goods?srsltid=AfmBOoqvdl6OC-0npFROPoIPhzfgjNBiH3QL_jXjglqyPhfIzQwgcx6A






In a Shake

포스터에서 시작된 단상이 굿즈에 대한 생각으로까지 이어졌네요. 첫 번째 토크 즐겁게 들어주셨다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토크를 짧게 정리하며 호스트는 이만 떠나보겠습니다.


- 사소한 경험이더라도, 목적을 고려한다면 더 의미 있는 브랜드 경험으로 확장 가능하다.

- 굿즈에는 의미와 역할을 담아야 매력적이다.


아래의 질문들을 남겨둘테니 친구들과 토크해보아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 . ^


- 사소하지만 흥미로웠던 브랜드 경험이 있나요?
- 영화관에서 받은 것 중 기억에 남는 굿즈는?
- 내가 생각하는 좋은 굿즈란?
- A24의 굿즈 사이트에서 가지고 싶은 굿즈는?



다음 글도 기대해주시고, 앞으로도 자주 찾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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