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디자인 하기도 전에 이미 예쁜 이름

어떤 알파벳 조합을 좋아하시나요?

by 융융김


브랜드 디자이너들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을 공유합니다.
디자인 토크쇼 쉑 댓 브디브디




안녕하세요!

오늘의 '쉑 댓 브디브디' 호스트를 맡은 융융입니다.

지난주 쟈님의 영화 포스터와 굿즈에 관한 주제 재밌게 보셨나요?


저는 오늘 로고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해요.

특히 타이핑 된 영문 로고들에 대해서요.


브랜딩 에이전시에서 일하다보면 참 많은 브랜드 로고를 만들게 됩니다.

로고 스터디를 하면서 종종 디자이너들끼리 하는 이야기가 있는데요.

"이 이름은 어떻게 해도 예쁘지가 않아."

"이 이름은 아무 서체로 써도 예쁘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이며, 어디서 오는 차이일까요?

이따금 있었던 상황들을 돌아보며 몇 가지 요인을 정리해 보았어요.

(대문자 위주의 얄팍한 분석입니다.)




1. 커닝을 조정하기 어려운 알파벳


우선 커닝에 대해 간단히 설명드리자면,


커닝이란 글자의 모양에 따라 적절하게 간격을 조정하여 시각적으로 균형을 맞추는 것을 뜻합니다.

글자의 모양과 상관없이 전체적인 배열을 조절하는 자간과는 엄연히 다른 개념이에요.


참.. 어제는 완벽하다 생각했는데 오늘 보면 또 이상한 게 커닝이거든요.

제가 특히 어렵다고 생각하는 알파벳들이 있습니다.



1티어) A, V, X, Y

사선으로 뻗은 획 때문에 활자 너비가 좁지는 않으면서 사방으로 여백은 또 많죠.

(W를 포함시키지 않은 이유는 위의 네 알파벳보다는 밀도가 높아 그나마 낫다고 생각합니다.. 구구절절.)


이 알파벳들은 연달아 쓰일 때 더 골치 아픈 녀석들인데요.




픽사 스튜디오의 워드마크입니다.

과거에는 자간을 훨씬 넓혀 썼기 때문에 크게 눈치채지 못했지만,

공식 홈페이지에서 최근 사용하는 로고를 보니 확실히 X와 A 사이가 벙벙한 느낌입니다.



X, A의 커닝값이 가장 좁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에요.



이번에는 X와 Y가 붙어있는 예시입니다.

옆의 O 때문에 X, Y 사이가 상대적으로 더 성글어 보이네요.



2티어) F, K, L, T

시원하게 열려있는 모양새죠? 앞서 말한 1티어와 비슷한 내용입니다.

다만 이 아이들을 2티어로 정리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F, K, L: 적어도 왼쪽은 막혀있다. 오른쪽만 잘 조정하면∙∙∙!

F, L, T: 여백이 많아? 그렇다면 가로획을 짧게 만들어버렷∙∙∙!


(E를 포함시키지 않은 이유는 F와 비슷한 골조이지만 상하대칭적이고, 좌우대칭의 T와 비교했을 때 E는 한쪽만 개방되어 있기 때문에... 2.5티어로 보겠습니다. 구구절절 again..ㅎㅎ)



루이비통 워드마크는 알파벳 별 장평(글자폭)이 크게 차이나는 것이 특징인데요.

T의 가로획이 매우 짧은 걸 볼 수 있어요. 연달아 위치한 T와 T의 간격도 굉장히 좁습니다.


DM Sans로 루이비통을 적어보았어요.

기존 루이비통 워드마크와 비교하니 T와 T의 사이의 공간이 확실히 넓게 느껴집니다.


(여기서 잠깐! 1티어도 가로폭을 줄이면 그만이지 않냐 생각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사선은 수직, 수평 획처럼 대충 줄였다가는 획의 기울기나 굵기 등이 바뀌면서 어색해 보일 수 있어요.)



위에 언급한 1, 2 티어의 알파벳들, 함께 있을 때 유독 사이가 소원해 보이거든요.

마이크로소프트의 ft, 스포티파이의 fy는 서로를 끌어안으며 관계에 문제가 없음을 증명했습니다.

타입 디자이너 친구에게 물어보니 이것을 리가춰(합자)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2. 직선으로만 이루어진 이름


직선만 있어 단조로워 보일 수 있는 요인이에요.

(물론 의도적으로 직선적인 이미지를 부각해 그것을 개성으로 디자인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오늘은 디자인 전의 글자만 놓고 보자는 것입니다!)


유명한 일화가 있죠. SM의 과거 수장이었던 이수만씨가 BOA 스펠링이 너무 뚱뚱해 보이지 않냐 하여 BoA가 되었다는 전설의 이야기...

제가 하고자 하는 말과 정확히 일치하진 않지만 강약중강약, 데꼬보꼬, 내 맘을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가 아무래도 재밌잖아요? 직선이 밀면 곡선이 당겨줘..!



좌 - 기아 과거 로고 / 중 - 워드마크만 분리 / 우 - 기아 현재 로고


KIA는 직선적인 알파벳으로만 이루어진 이름이죠.

철자도 세 개로 적은 편인데 그 글자들 모두 직선이니 워드마크만 보면 약간 심심한 인상입니다.

과거 로고에 원형 프레임을 씌우게 된 이유, 그리고 리뉴얼 되면서 기울임을 활용해 워드마크에 특색을 더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이진 않을까 상상의 나래를 펼쳐 봅니다∙∙∙



이외에도 디자인 하기 까다로운 여러 요인들이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알파벳은 죄가 없습니다. 그런 모양으로 만들어졌을 뿐이죠.

그냥 더 예쁘게 만들고 싶어 투덜대는 것입니다.



그리고 골라보았습니다.



정말 어려웠겠다!




정말... 너무하거든요.

위에서 언급한 커닝 조정이 어려운 알파벳이 무려 네 개나 있습니다.

저는 커닝을 볼 때 실눈을 뜨고 보는데요. (과학적 근거는 없습니다ㅎㅎ)

제 흐릿한 실눈 사이로.. L과 I의 간격이 약간 멀어 보이네요.




정말 재밌었겠다!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알파벳 조합입니다.

C와 O가 단어 양끝을 안정적으로 마감하고 곡선 알파벳과 직선 알파벳이 코카콜라로 들어가 있어요. (번갈아 가면서 있다는 뜻.)

단언컨대 아무 고딕 서체를 가져와 써도 예쁠 것 같습니다∙∙∙




'쉑 댓 브디브디'는 어떤데?


그렇다면 우리의 '쉑 댓 브디브디'는 어떨까요?

언젠가 로고도 만들 겸 대충 분석해 보았습니다.

먼저 쉑 댓 브디브디를 적어볼게요.


① shake that bdbd

② Shake That BDBD

③ SHAKE THAT BDBD


젠장. 이 녀석, 예쁜 조합이 아니잖아!



일단, ①번.

전부 소문자로 적어보니 어센더(위로 뻗어나온 획)가 많아 조금 부담스럽네요.

영문인 줄 모르고 열심히 한글 타자를 친 느낌도 살짝 있어요.

심지어 BD는 Brand Design의 준말이니 왠지 대문자로 적고 싶죠.

이 선택지는 소거해 버리겠습니다.


음.. 나머지 둘 중에는 뭐가 더 나은지 딱히 모르겠습니다.

럼 한 번 폰트를 입혀볼까요?



비교를 위해 한 폰트 패밀리의 세 가지 서체로 적어보았어요.

짧게 째려본 결과 아래 정도의 생각이 피어오릅니다.


어절이 세 개나 되는 이름이다보니 평체(Expanded)로 쓰기엔 로고가 너무 길어지는 느낌? 특히 모두 대문자로 쓸 때 참으로 길구나. 2단 표기를 하는 게 적절할 수도∙∙∙
전체 대문자 SHAKE THAT은 직선획만 있어 딱딱한 인상. 그에 반해 BDBD는 둥글둥글 하고∙∙∙
SHAKE THAT / BDBD이 주는 다른 인상을 대비되게 디자인해 볼 수도 있겠다.


하는 이 정도의 단상입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구조만 본 것이라.. 본격적으로 의도를 가지고 디자인을 하게 되면 완전 다른 그림이 나올 수도 있겠죠? 후에 정말 로고를 만들게 됐을 때 저 생각들이 실제로 반영될지 궁금하네요.




In a Shake!


벌써 두 번째 쉑 댓 브디브디를 마무리할 시간이에요.

브디(ㅋㅋ) 재미있게 읽으셨길 바랍니다.

앞으로 여러분들이 로고를 재밌게 들여다보는 기회가 되었길 바라며,

오늘의 호스트는 이만 마무리 인사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단순히 타이핑한 것처럼 보여도, 많이 고민했다구요.

- 세나알 (세상에 나쁜 알파벳은 없다. 어려운 알파벳만이 있을 뿐.)


마지막으로 귀여운 질문!

- 좋아하는 워드마크가 있나요? 어떤 알파벳 조합인가요?
- 지금 내 눈 앞에 보이는 로고는 어떤 알파벳으로 이루어져 있나요?
- 위에 언급된 슬픈 조건을 가지고도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로고가 있나요?


그럼, 다음주에 또 만나요~



+ 아래 링크는 직접 커닝값을 조정하고 점수를 볼 수 있는 게임인데요.

나의 시각보정 감각은 어느 정도일지 재미삼아 해보시길! ㅎㅎ


https://type.method.ac/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포스터 드릴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