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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소라게 Sep 25. 2021

과잉친절이 독이 될 때

적당한 거리두기

라틴어로 Primum non nocere (First, Do no harm)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을 해치지 말라는 뜻인데, 현대의학의 핵심가치 중 하나입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이 말을 지키기가 쉬울 것 같지만, 실제로 환자들을 돌보다 보면 어떤 것이 환자한테 이롭고 해로운지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대학병원 치과에서 스태프로 막 시작했을 때였습니다. 40대 중반의 여성 환자를 만나게 되었는데, 파킨슨병이 있으셨습니다. 파킨슨병은 뇌의 일부가 손상이 되어서, 흔한 증상으로는 손발이 떨리고, 몸이 뻣뻣하게 굳어지며, 움직이기가 힘들어지는 아주 고통스러운 난치병입니다.


이 환자분은 상당히 미인이셨고, 왠지 젊었을 때 배우 같은 직업이 있으셨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겉 외모와는 다르게, 입안의 상태는 엉망징창이였습니다. 파킨슨병 환자들은, 병 때문에 손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가 없어서, 간단한 양치질도 제대로 못하게 되고, 관리를 제대로 못 받아서 치아와 잇몸 상태가 안 좋은 경우가 많습니다. 이분도 마찬가지로 거의 모든 치아가 썩으셨고, 그동안 얼마나 고통스러우실까라는 생각에 빨리 도와드리고 싶었습니다. 저는 검사를 다 마친후에 이런저런 설명을 해드렸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환자분께서 끅끅거리시면서 울기 시작하셨습니다. 저는 '내가 뭘 잘못했나?' 당황하면서 상황 수습을 하기 위해 이유도 모른 체 죄송하다고 했습니다. 환자분은 한참을 우시다가 저에게 'why are you so nice to me?' (왜 나에게 이렇게 잘해주시나요?)라고 물어보셨습니다. 사실 저는 따로 잘해드린 것은 없었는데, 그동안 병과 힘겹게 싸우시면서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쳤을 때, 아주 조금의 친절에도 감동을 받으신 것 같으셨습니다. 나의 작은 관심이 한 사람의 어두운 삶을 밝힐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한 뒤, 그때부터 모든 환자들에게 친절을 더 베풀어야겠다고 다짐을 하였습니다.


시간이 흐른 뒤 다른 40대 중반의 여성 환자를 만났습니다. 이 분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병이 너무 많아서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몸이 더 아프신 만큼 저는 더 큰 관심을 드려야겠다고 생각을 했고, 저는 환자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신뢰를 (rapport) 쌓도록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환자분은 자신의 사생활을 말하는 것을 너무도 좋아하셨고, 특히 자신의 불행을 나누고 동정을 받는 것을 즐기셨습니다. 본인은 아이 7명을 키우는 미혼모인데, 아버지가 다 다르고, 심지어 마지막으로 사귄 남자 친구는 에이즈 (AIDS)가 있었고, 딸은 겁탈을 당해서 경찰한테 보호를 받는 중이라는 등, 진료에는 불필요하고 듣기에도 민망한 이야기들을 서슴지 않고 저한테 말해주셨습니다. 저는 무례하지 않기 위해서 불편함을 감추는데 애를 써야 했습니다.


이 환자분이 말이 많아서 항상 진료시간은 불필요하게 길어졌고, 입안에 병이 많아서 치료를 다 마치는데 여러 번의 치료를 해야 했습니다. 기나긴 치료들을 다 마치고 드디어 환자를 졸업시켜드렸습니다. 이제부터 6개월에 한 번씩만 정기검진 때만 보면 되겠구나 생각했는데, 며칠 후 환자는 다시 돌아왔습니다. 아무리 꼼꼼히 검사를 해도 문제는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환자는 정말 자주 불필요한 응급진료를 부탁하였고, 올 때마다 저한테 자신의 불행을 하소연하는데 시간을 낭비하였습니다. 저는 환자분한테 아무런 이상이 없으니, 앞으로는 정말 큰 문제가 아니면 안 오셔도 된다고 좋게 말씀드렸습니다.


몇 주 후에, 환자는 다시 응급진료를 부탁하며 돌아왔습니다. 이번에는 치아가 부러져서 오셨습니다. 저는 바로 고쳐드렸습니다. 그런데 그때부터 규칙적으로 2-3주에 한 번씩 새로운 치아들이 부러지기 시작했습니다. 치아들이 자꾸 부러져서 처음에는 제가 돌팔인 줄 알았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뭔가가 이상했습니다. 치아들이 항상 하나씩 돌아가면서 부러져나갔습니다. 치아가 부러져도 환자는 항상 즐거워하며 치과에서 떠나기 싫어했습니다. 심지어 반대쪽 치아가 없어서 평소에 음식을 씹을 때 사용되지 않기 때문에 절때 압력이 가해질 수가 없는 치아들도 부러졌습니다. 부러진 치아들은 충치가 없어서 부러질 이유가 없었고, 부러진 치아들은 이유 없이 흔들거렸는데, 엑스레이상 치주병이나 다른 병의 징후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도구를 사용해 치아를 밀어낸 것 같았습니다. 이 모든 정황들을 결합시켰을 때, 환자가 치과에 오기 위해서 스스로 치아를 상하게 하고 있다는 짐작이 들었습니다. 이 환자는 장애와 사회경제적인 상황 때문에 정부로부터 모든 치과비용과 병원으로 오는 비용을 지원받고 있었고, 치과 예약이 있는 날은 혼자서 도시로 놀러 오셨습니다. 치과는 이 환자에게 힘든 현실로부터 잠시 벗어날 수 있는 도피처였고, 자신의 말을 잘 들어주는 저와 대화를 하고 싶어서 자해를 하던 것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환자의 가정의에게 연락을 해서, 환자가 정신과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환자는 저에게 자신의 불행을 털어놓는 것보다 정신과 전문의와 상담을 통해 치료를 받는 게 더 유익할 것입니다.


저는 환자의 말들을 끝없이 들어주고 받아주면 무조건 그것이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줄 착각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과도한 친절이 오히려 환자에게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적당선에서 대화를 끊을 줄 알아야 하며, 진료에 집중을 하고,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해야지 환자와 저와 그리고 병원 모두에게 유익합니다. 그래서 저는 사회적 거리두기뿐만 아니라 전문적 거리두기도 실천을 하고 있습니다.


[사진출처: https://www.discovermagazine.com/health/poison-as-medic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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