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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소라게 Sep 11. 2021

원리원칙대로 2

예상치 못한 사고

저의 환자들은 대부분이 복합적인 전신질환이 있으십니다. 건강이 불안정안 환자들을 치료할 때에는 제가 모든 절차를 완벽하게 따르고 계획을 실행에 옮겼을 때에도, 예기치 못한 사고가 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어려운 상황 앞에서도 당황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원리원칙대로 규칙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하루는 50대 중반의 아저씨가 저를 보러 오셨습니다. 왼쪽 아래 사랑니가 아프신데, 심장질환이 있으셔서 동네 치과에서는 치료를 거부당하셨다고 합니다. 입안을 들여다보고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사랑니가 심하게 썩으셨습니다. 엑스레이통해 치아 뿌리의 모양을 보니 발치는 어렵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아저씨께서는 이가 너무 아프니깐 가능하면 지금 당장 뽑아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근거 없는 얘기지만, 아저씨의 외모는 우락부락한 오토바이 폭주족 같이 생기셔서 왠지 심장도 강할 것 같으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혈압을 재봤는데 나쁘지 않았습니다. 환자분도 원하시고, 발치도 쉬워 보이고, 혈압도 괜찮아서, 마음 같아서는 그 자리에서 바로 사랑니를 뽑아드리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원칙대로 심장 전문의를 통해서 환자가 정확히 어떤 심장 질환이 있는지, 상태는 안정적인지, 그리고 발치 수술을 해도 안전한지 확인을 해야 했습니다. 저는 아저씨께 심장 전문의한테 아저씨의 건강정보를 확인하고 이를 뽑아드리겠다고 말씀드렸고, 아저씨는 며칠을 또 기다려야 한다는 소식에 정말 아쉬워하셨습니다.


저는 바로 심장 전문의한테 편지를 보냈고, 며칠 후에, 발치 수술을 해도 된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저는 제 비서를 통해 환자의 사랑니 수술을 예약하려고 하는 순간, 갑자기 이 환자를 구강외과 전문의한테 보내라는 충동이 들었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제가 그냥 발치를 했을 텐데, 이번에는 왠지 모르게 이 환자를 자꾸 전문의한테 보내야 한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저는 제 비서한테, "You know what? Let's book this patient with an oral surgeon" (있잖아 그냥 환자를 구강외과 전문의 선생님이랑 예약해줘)라고 말했습니다.


그다음 주 수요일, 환자가 구강외과 전문의 선생님을 보시는 날이었습니다. 저는 구강외과 전문의 바로 옆방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갑자기 병원 전체에 Code Blue - Cardiac Arrest (코드블루 - 심장마비)가 울려 퍼졌습니다.  제 진료실 문 밖으로 사람들이 웅성웅성거리기 시작했고 곧이어 코드블루팀이 저희 과로 들이닥쳤습니다. 알고 보니 제가 만났던 아저씨가 사랑니를 뽑으신 후에 가슴에 통증을 호소하기 시작했고 심장마비의 조짐이 보였던 것입니다. 다행히도 아저씨는 저희 병원 내의 CCU (Coronary Care Unit - 심장동맥질환 집중치료실)으로 바로 이송되셨습니다.


그다음 날 아침, 저는 궁금해서 CCU로 가서 아저씨가 잘 계시는지 확인을 하러 갔습니다. 입원한 환자 리스트에 아저씨의 이름이 있었고 아저씨가 무사히 고비를 잘 넘기신 것 같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저는 아저씨가 입원되어있는 방으로 들어갔고 아저씨는 저를 환하게 반겨주셨습니다. 우리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고, 아저씨는 저에게 그날 이를 바로 뽑지 않고 전문의에게 보내줘서 고맙다고 하셨습니다.


심장마비는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심장 전문의와 확인을 하고 허락을 받아도, 순식간에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원리원칙대로 모든 절차를 따르면, 사고가 나더라도 환자를 최선의 방법으로 도울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저는 아저씨를 처음 만난 날, 제 느낌과 아저씨의 부탁대로 사랑니 발치를 하지 않은 것에 십년감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 제가 아저씨를 갑자기 구강외과로 보내드리기로 생각을 바꿨는지는 아직도 의문점입니다. 주위 사람들은 저를 신이 저를 보호해 주셨다고 말해줍니다.


이 계기를 통해서 아무리 귀찮고 번거로워도, 치과치료를 하기 전에 환자의 건강을 조금 더 꼼꼼히 살피게 되었습니다. 환자들은 절대로 사고가 나면 안 되겠지만, 만약을 대비해서 제가 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사진 출처: https://www.ems1.com/cardiac-care/articles/why-a-12-lead-ekg-history-are-needed-to-diagnose-patients-compl aint-XyE5IjaloMZQ7gB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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