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답답하고 생각이 얽혀 있을 때, 아무리 글을 쓰려고 해도 펜이 움직이지 않을 때가 있다.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단어들이 떠오르지만, 그것들이 하나의 문장으로 엮이지 않는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그런 순간은 고요한 침묵이 아니라 혼란의 웅성거림처럼 느껴진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지금 이렇게 막혀 있는 이유는, 어쩌면 누구와의 대화도 막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삶에서 가장 답답한 순간은 마음의 굴이 막혔을 때다. 그 굴은 종종 혼자 파고 들어가는 깊은 고독 속에서 만들어진다. 고민과 걱정이 쌓여 터널처럼 어두워지고, 그 안에서 길을 잃는다. 그럴 때 나는 소통이란 빛을 찾아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걸 배웠다. 아무리 혼자 머리를 굴려도 답이 나오지 않을 때, 누군가와의 대화가 이 문제를 풀어줄 수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내게는 마음이 막힐 때마다 찾아가는 몇몇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내가 말문을 열 수 있도록 기다려주고, 묵묵히 들어주며, 때로는 나의 엉킨 생각을 풀어주는 실마리를 건네준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내 안에서 한 줄기 바람이 통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단순히 말문이 트이는 것이 아니다. 내 마음의 문이 열리고,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렇게 열려버린 마음은 자연스럽게 글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어느 날 나는 한 친구와 대화를 나누던 중, 마음속 깊이 숨겨 두었던 슬픔 하나를 꺼낸 적이 있다. 당시 나는 그것이 글로도, 말로도 표현되지 않는 무언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친구와 이야기하다 보니, 그것은 하나의 이야기로 풀려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굳어 있던 실타래가 조금씩 풀려나가는 것처럼, 내 마음의 이야기가 단어로 흘러나왔다. 대화가 끝난 뒤 나는 자리로 돌아와 그 대화를 글로 옮겼다. 그리고 그 글은 내가 오랫동안 쓸 수 없던 글의 시작이 되었다.
말문이 열리면 글문도 열린다. 대화는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속 혼란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준다. 누군가와 나누는 진솔한 대화 속에서 나는 나의 마음을 다시 마주한다. 그리고 그렇게 다시 마주한 마음은 글로 옮겨질 준비를 한다.
때로는 마음이 답답해지면 혼자 해결하려 애쓰지 않는다. 나는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찾고, 내 마음속 깊은 이야기를 그들과 나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다시금 깨닫는다. 글이란 혼자 쓰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소통하며 쓰는 것임을. 오늘도 대화를 통해 내 마음의 문을 열고, 그 열린 문을 통해 글로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