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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say2

흔들리며 피어나는 삶

by lee nam

한국에서 처음 미국 땅을 밟았을 때, 내 마음은 낯선 풍경만큼이나 흔들렸다. 영어는 너무 서툴렀고, 가게에서 간단한 물건 하나 사는 것조차 큰 용기를 필요로 했다. 내가 이 땅에서 과연 잘 살 수 있을까, 가족을 잘 책임질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을 짓눌렀다. 특히 자녀들이 학교에서 겪는 어려움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곤 했다. 그때마다 “지금 이 흔들림은 내가 뿌리내리는 과정”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곤 했다. 나무가 깊은 뿌리를 내리기 위해 바람에 흔들리듯, 나 역시 이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믿었다. 시간이 흘러, 가족 모두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가는 모습을 보며 흔들렸던 시간의 의미를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하지만 흔들림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해보지도 않은 사업을 시작하며 처음엔 잘 나가는 듯했지만, 몇 년 뒤 나는 모든 것을 잃는 실패를 경험했다. 가게 문을 닫고 집으로 돌아온 날, 나는 하루 종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남겨진 것이라고는 어린 네 자녀들과 우리 부부뿐.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는 나를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 아이들 앞에서는 괜찮은 척했지만, 밤마다 혼자 울던 날이 많았다. 그 흔들림 속에서 깨달은 것은 내가 의지하던 것이 결국 모래 위에 지은 집처럼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실패가 나를 완전히 주저앉힌 것은 아니었다. 욕심을 내려놓고 더 작은 일부터 차근차근 시작했다. 흔들림은 결국 나를 더 단단한 사람으로 만들었고, 새로운 길로 이끌었다.


그리고 또 한 번의 큰 흔들림은 건강의 문제였다. 몸이 점점 나빠지더니 결국 큰 병을 마주해야 했다. 침대에 누워 있는 시간이 늘어나고, 내 몸이 더는 나를 지탱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삶의 무게를 모두 내려놓고 싶었다. 하지만 그 시간은 내게 또 다른 깨달음을 가져다주었다. 내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그리고 당연하게 여겼던 건강이라는 축복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를 깊이 깨닫게 되었다. 흔들리는 건강 속에서도 붙들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그것은 사랑이었고, 나를 회복시키는 새로운 힘이었다.


이민의 어려움, 사업의 실패, 건강의 위기라는 흔들림 속에서 나는 삶의 본질을 배웠다. 흔들리지 않으려 애쓰던 과거의 나는 이제 스스로 바람 속에 서는 법을 배웠다. 흔들리는 시간 속에서도 내 안에 희망이 있다는 것을 믿게 되었고, 그것이 나를 여기까지 이끌었다.


흔들림은 삶의 약함이 아니라, 나를 더 깊이 뿌리내리게 하는 과정이다. 이민자의 불안, 실패자의 고통, 병약한 몸의 한계를 지나며 나는 흔들림 속에서도 삶이 여전히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배웠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바람은 불고 있지만, 나는 그 바람 속에서 더 단단해진 뿌리를 느끼며 새로운 꽃을 피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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