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중세의 농촌 풍경 속, 가난한 집안의 한 여성이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이자벨 로메. 그녀는 딸에게 화려한 교육이나 부를 물려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딸에게 전한 것은 그 어떤 금이나 보석보다 귀중했다. 그것은 성실함, 신앙, 그리고 무엇이 옳은 것인가를 스스로 묻는 용기였다. 이자벨의 딸은 우리가 잘 아는 이름, 잔다르크다. 프랑스의 구원자, 오를레앙의 성녀, 수많은 전설의 중심에 있는 인물. 그러나 그녀를 영웅으로 만든 것은 어쩌면 어머니 이자벨의 가르침이었다.
잔다르크는 농부의 딸이었다. 그녀의 어린 시절은 밭을 일구고 가축을 돌보는 단순한 삶으로 채워졌다. 그러나 그 일상 속에서 어머니가 보여준 모습은 단순하지 않았다. 이자벨은 단지 성실하게 일하는 법을 가르친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신앙을 중심에 둔 삶을 딸에게 전수했다. “신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는 믿음은 잔다르크에게 깊이 새겨졌다. 그리고 이 믿음은 그녀가 훗날 프랑스의 왕과 귀족들 앞에서도 당당히 설 수 있는 근본이 되었다.
그녀는 오를레앙을 해방하고, 샤를 7세를 왕위에 올리며 역사의 무대에 섰다. 그녀의 용기와 신념은 불꽃처럼 타올랐다. 하지만 그 불꽃은 너무도 빨리 꺼졌다. 배신과 모략, 정치적 음모 끝에 그녀는 19살의 나이로 화형대에 올랐다. 이자벨에게 딸의 죽음은 단순한 비극이 아니었다. 그것은 부당함이었고, 그녀가 딸에게 가르쳐온 정의와 진리에 대한 모독이었다. 많은 이들이 딸의 이름을 잊거나 그녀의 행적을 왜곡했을 때, 이자벨은 침묵하지 않았다.
그녀는 잔다르크의 명예를 되찾기 위해 싸웠다. 여성 농부가 당대의 권력과 교회에 맞서는 일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이자벨은 딸에게 가르쳐온 대로 살았다. 옳은 것을 위해서는 두려워하지 않는 것. 수년간의 노력 끝에 이자벨은 잔다르크의 재심을 이끌어냈다. 딸의 무죄가 인정되고, 그녀는 다시 프랑스의 영웅으로 기억되기 시작했다. 그 재판은 단지 한 사람의 명예를 복구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진실과 정의를 향한 이자벨의 신념이 승리한 순간이었다.
나는 이자벨의 이야기를 떠올릴 때마다 한 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된다. 만약 내가 그녀였다면, 딸의 억울함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그렇게까지 싸울 수 있었을까? 그 싸움은 단순히 사랑만으로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이자벨 자신이 딸에게 가르쳤던 신념과 정의감에 근거한 것이었으리라. 그녀는 잔다르크의 어머니였을 뿐만 아니라, 잔다르크에게 삶의 가장 중요한 무기를 쥐여준 스승이었다. 이자벨 로메의 삶은 어머니라는 역할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녀는 단지 딸을 낳고 키운 사람이 아니라, 딸의 정신과 가치관을 형성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딸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그녀의 삶을 이어받아 잔다르크가 남긴 메시지를 세상에 알린 사람이었다.
역사 속 영웅의 이야기 뒤에는 종종 이렇게 보이지 않는 인물이 있다. 그들은 어둠 속에서 빛을 준비하고, 영웅이 세상 앞에 설 수 있도록 길을 닦는다. 이자벨 로메는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잔다르크라는 위대한 이름 뒤에 가려질지 모르지만, 그녀 없이는 잔다르크 또한 존재할 수 없었다. 이자벨의 삶은 내게 말한다. 진정한 사랑은 단순히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함께 싸우는 것이라고. 그녀는 자신의 딸이 지닌 빛을 누구보다 먼저 알아본 사람이었고, 그 빛이 사라지지 않도록 스스로 등불이 되었다. 그녀의 삶은 어머니라는 이름이 가진 위대한 힘을 다시금 깨닫게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