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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say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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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 nam Dec 03. 2024

펜으로 석탄을 캐는 광부

      내 고향은 석탄의 고장, 화순이었다. 나는 대대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던 함양박 씨 집성촌에서 자랐다. 고향을 둘러싼 산들은 한때 나무가 울창했던 평범한 산들로 보였다. 그러나 그 평범함 속엔 아무도 예상치 못한 것이 숨겨져 있었다. 땅속 깊은 곳에, 고생대의 흔적이 빚어낸 어마어마한 석탄이 매장돼 있었던 것이다.


      화순의 광산은 마을의 풍경을 바꾸어 놓았다.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몰려들었고, 우리 마을과 가까운 광산촌은 순식간에 낯선 이들로 붐비게 되었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도 농촌의 아이들뿐 아니라 타지에서 온 광부의 자녀들이 함께 어울렸다. 어린 시절의 나는 석탄을 캐는 광부들이 힘들게 땅속으로 들어가 검은 보물을 찾아내는 모습이 그저 신기하고 대단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정작 나는 광산에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고향을 떠나 광주와 서울에서 공부하며, 그리고 훗날 미국 시카고로 삶의 터전을 옮기며 점점 고향은 기억 속에서 흐릿해졌다. 그러나 그 땅속 깊은 곳에 묻혀 있던 석탄처럼, 나 역시 내 안에 무언가를 묻어둔 채 살아왔다는 생각이 가끔씩 스쳐가곤 했다. 어쩌면 내 안에도 수많은 시간과 경험의 무게를 품은 석탄이 매장돼 있지 않을까? 그 석탄은 나의 이야기들, 기억들, 그리고 세월이 쌓아 올린 삶의 흔적들일 것이다.


     네 아이들이 이제는 각자의 가정을 꾸리고 타지로 떠나갔다. 떠난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며 문득 깨달았다. 이제는 내가 나의 광부가 될 시간이라고. 펜을 곡괭이 삼아, 내 가슴 깊숙이 매장된 석탄을 캐낼 때가 온 것이다. 오랜 세월 동안 묻어둔 기억들, 이야기들, 때로는 아프고 쓰렸던 순간들까지 하나하나 끌어올려야 한다. 그것들이 내 삶의 보물이기 때문이다.


      석탄을 캐내는 작업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 줌의 석탄을 찾아내기 위해 광부들은 수많은 시간을 땅속에서 보내야 한다. 마찬가지로 글을 쓴다는 것은 내가 품어왔던 기억을 꺼내어 가다듬고, 정제하는 고된 과정이다. 하지만 그 고됨 속에서도 나는 희미한 빛을 본다. 내 안에 묻혀 있던 석탄들이 글이라는 형태로 세상 밖으로 나오면서, 그것은 더 이상 과거의 흔적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밝혀주는 등불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매일 펜을 든다. 글을 쓰는 동안 나는 광부처럼 나 자신과 마주하고, 세월이라는 땅속 깊은 곳에 묻어 두었던 나의 이야기를 발견한다. 그리고 깨닫는다. 내 삶의 무게만큼, 내가 살아온 세월만큼, 내 안에는 그 무게를 품은 어마어마한 석탄 매장량이 있었다는 것을. 이제 그 석탄은 글이 되어 세상에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화순의 석탄은 더 이상 채굴하지 않고 않지만, 내 안의 석탄은 이제야 비로소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나는 오늘도 펜을 들고 광부로서의 하루를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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