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3학년, 시골 중학교에 다니던 어느 가을날이었다. 황금물결이 일렁이는 논둑길을 걷고 있던 내 앞에 초등학교 때 이웃반 담임이었던 문 선생님이 나타났다. 내 인사를 받자마자 선생님은 물었다.
“남아, 너도 고등학교에 갈 거니?”
그 질문을 듣는 순간, 내 안의 불안과 두려움이 그 자리에 그대로 드러나버렸다. 나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엉엉 울며 외쳤다.
“저는 J 여고에 갈 거예요!”
그 순간은 단순한 대답이 아니었다. 나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외침이었다. 시골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그것도 J 여고에 진학하는 것은 남들이 보기엔 터무니없는 꿈이었다. 문 선생님의 질문은 내가 직면한 현실의 장벽을 드러내 주었고, 동시에 그 장벽을 넘고자 하는 내 의지를 시험하는 순간이었다.
그날 밤, 나는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거대한 도전 앞에 서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시, 고등학교에 가기 위해서는 입학시험을 치러야 했고, 그 과정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시골 학교의 부실한 교육과정은 진학 준비를 제대로 도와주지 못했다. 농번기가 되면 수업 대신 논과 밭을 나가야 했고, 배울 수 있는 시간은 너무나도 적었다. 모든 것을 스스로 공부해야 했다.
눈 내리는 추운 겨울, 나는 호롱불 하나만을 켜놓고 책을 붙들었다. 그 희미한 불빛 아래에나는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내 안에서 타오르는 꿈이 나를 지탱해 주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J 여고에 꼭 갈 거야.
시험날,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때리고 손은 꽁꽁 얼어붙었지만, 나는 마음속에서 그날 밤의 다짐을 떠올리며 연필을 잡았다. 하지만 마지막 실과 시험에서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나는 농업을 선택했는데, 시험지에는 가정 과목이 적혀 있었다. 손을 번쩍 들어 감독 선생님께 상황을 설명했다. 선생님은 당황했지만, 교무실로 내려가 급히 나를 위한 농업 시험지를 가져왔다. 시험지를 받아 든 나는 두 달 동안 준비한 모든 지식을 쏟아부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J 여고에 당당히 합격했다. 그리고 그날의 경험은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그때 나는 배웠다.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나아가면, 결국 그 장벽은 넘어설 수 있다는 것을.
이제 성인이 된 나는 그때의 호롱불을 종종 떠올린다. 그 작고 희미한 불빛이 나에게 얼마나 큰 힘이었는지, 지금도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그 불빛이 내 마음을 밝혀준다. 마치 그날 밤의 다짐이 아직도 나의 길을 인도해 주는 것처럼, 나는 그때 배운 교훈을 마음에 새기고 살아간다. 과거의 작은 승리가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앞으로도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