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눈이 소복이 내려앉은 길을 걷다가 발길이 멈췄다. 새하얀 설원 위에 선명한 붉은 점 하나가 나를 붙잡은 것이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것은 동백꽃이었다. 흰 눈 위에 붉게 핀 꽃잎은 마치 눈 속에 스며든 생명 그 자체처럼 보였다. 내 손끝이 저절로 그 꽃을 향했지만, 차마 닿지 못하고 그대로 멈춰 섰다. 그 고운 모습에 손을 대는 것이 왠지 모르게 경솔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동백꽃을 보고 있자니 마음 한구석에서 잊고 있던 감정이 피어오르는 듯했다. 요즘 나는 점점 더 많은 것을 잊어가는 것만 같았다. 매일의 일상 속에서 반복되는 일들, 지나치기 바빴던 풍경들. 그런데 눈 속의 동백을 보고 있자니, 그것이 내가 얼마나 많은 아름다움을 놓치고 살았는지를 깨닫게 해 주었다. 겨울 속에서도 이렇게 완벽하게 피어나는 동백이 있었는데, 왜 나는 추위와 고단함만 생각했던 걸까.
한참을 서서 꽃을 바라보았다. 눈 위에 떨어진 붉은 꽃잎들은 마치 생명의 흔적처럼 보였다. 바람에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살아 있는 동백은 단순히 예쁜 꽃 이상의 의미로 다가왔다. 차가운 겨울 속에서도 자기 자리를 지키며 피어난 모습은, 내가 지금 이 순간에도 놓지 말아야 할 용기를 말해주는 듯했다. 삶의 계절이 겨울일지라도 피어날 수 있는 꽃이 있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깨달음인지 모른다.
이 동백 앞에서 나는 문득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지금 나는 내 삶에서 무엇을 피우고 있는가? 혹은, 무엇을 피우지 못한 채 지나치고 있는가? 그렇게 가만히 서서 꽃과 눈을 번갈아 보다가 마음 한구석에 작은 결심이 자리 잡는 것을 느꼈다. 단지 눈 속에서 동백꽃을 발견한 오늘, 이 작은 순간조차 내게는 새로운 시작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발길을 돌리면서도 나는 계속 뒤를 돌아보았다. 그 동백은 내가 다시 보고 싶은 아름다움의 상징처럼 남아 있었다. 눈 속에서 스스로를 잃지 않고 피어난 꽃 한 송이. 언젠가 나도 그렇게 나만의 꽃을 피울 수 있을까. 그 대답을 찾기 위해 오늘부터라도 조금 더 용기를 내보아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으며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