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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say2

불소통(不疏通), 영원한 숙제

by lee nam

우리는 늘 소통을 이야기한다. 원활한 대화가 좋은 관계를 만든다고 믿고, 서로를 이해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어쩔 수 없이 오해가 생기고, 때로는 그 오해가 깊어져 단절로 이어지기도 한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 서로의 진심이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평생 풀어야 할 숙제인지도 모른다.


안톤 체호프의 단편 소설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을 읽으며, 나는 불소통이 인간에게 얼마나 깊은 상처를 남기는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 구로프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남성이지만, 정작 삶의 중요한 부분에서는 철저히 단절된 인물이다. 그는 아내와의 관계에서도,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마음을 나누지 못한다. 그의 삶은 마치 얇은 유리막 안에 갇힌 듯,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그 안에서는 고립되어 있다.


그런 구로프가 어느 날 휴양지에서 개를 데리고 다니는 한 여인, 안나를 만난다.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된 관계였지만, 점차 서로에게 깊은 감정을 느끼게 된다. 안나는 외로운 결혼 생활을 견디며 살아가던 중 구로프를 만나고, 구로프 역시 그녀와의 만남을 통해 처음으로 자신의 진짜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사회적 규범에 어긋나는 것이었고, 결국 현실의 벽에 부딪힌다.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표현 중 하나가 바로 ‘철갑사어(鐵甲沙魚)’라는 단어다. 이는 딱딱한 갑옷을 두른 물고기를 의미하는데, 마치 인간이 자신의 감정을 보호하려고 단단한 껍질을 두르는 모습과도 같다. 구로프 역시 그동안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위선과 체면 속에서 살아왔다. 하지만 안나를 만나면서 그는 그 껍질을 깨고 싶어 한다. 문제는, 이미 너무 오랫동안 철갑을 두른 채 살아온 그가 과연 그것을 쉽게 벗어던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모두 철갑사어처럼 살아간다.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감정을 숨기고, 깊이 있는 대화를 피하며, 때로는 진심이 아닌 말들로 관계를 유지하려 한다. 그러나 그런 삶은 결국 고독을 불러온다.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외롭고 힘든 감정을 품고 있는 경우가 많다. 가정에서도, 친구 관계에서도, 직장에서도 우리는 종종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엇갈리고 만다.


체호프의 소설이 특별한 이유는, 불소통의 문제를 단순히 비극적인 결말로 끝내지 않기 때문이다. 구로프와 안나는 현실의 벽 앞에서 고민하지만, 끝내 서로를 향한 감정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들은 더 이상 과거처럼 자신을 속이며 살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하지만 이 결정이 쉬운 것은 아니다. 그들은 앞으로도 많은 어려움을 겪을 것이고, 불확실한 미래를 마주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그들이 더 이상 철갑을 두른 채 살아가지 않기로 했다는 점이다.


우리는 평생 불소통의 문제 속에서 살아간다. 완벽한 소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때로는 내 말이 상대에게 전혀 다르게 전달되기도 하고, 내가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소통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계속해서 다가가려는 노력, 상대를 이해하려는 마음, 그리고 철갑을 조금씩 벗어던지려는 용기다.


구로프와 안나처럼, 우리도 언젠가 자신의 진심을 마주할 순간이 올 것이다. 그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계속해서 철갑을 두른 채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용기를 내어 마음을 열 것인가? 그 답을 찾는 과정이야말로, 우리가 평생 풀어가야 할 숙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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