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1년 무렵, 조선 땅에, 많은 여인은 자신의 이름 없이 단지 “큰 년이,” “작은년이,” “언년이,” “개똥이”로 불렸다. 그들에게 이름은 그저 가족이 붙여준 호칭에 불과했다. 자신만의 정체성 없이 살던 그 시대, 여인들은 자신이 한 사람으로서 존중받지 못했다. 그들의 고유한 이름이 부재했던 삶에는 지워지기 쉬운 흔적과 쉽게 잊힐 운명이 따라다녔다.
이러한 여인들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글을 가르친 사람들이 있었다. 간호 선교사로 조선에 온 엘리자베스 요한나 쉐핑은 그중 한 사람이다. 쉐핑은 단순히 병자를 돌보는 일에 그치지 않고, 여인들이 스스로를 바라볼 수 있는 힘을 주기 위해 이름을 짓고 글을 가르쳤다. 그녀는 여성들이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수 있도록, 이름이라는 귀중한 선물을 통해 그들을 새로운 길로 인도했다.
이름을 지니고 글을 배우게 된 여인들은 단지 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만의 이야기를 품게 되었다. 이름을 가진다는 것은 곧 세상에 자신을 알리고, 자신의 삶을 펼쳐나갈 수 있는 존재가 되는 일이었다. 글을 배우면서 여인들은 억눌렸던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비로소 표현할 수 있는 자유를 찾았다. 쉐핑의 가르침은 단순한 글자 이상의 것이었고, 그들에게 처음으로 ‘자신’이라는 존재를 돌아보게 하는 기회였다.
글을 배우고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은 여인들은 그 힘을 통해 더는 침묵하지 않았다. 이름 없이 불리던 과거를 넘어, 그들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쉐핑과 같은 사람들이 전해준 글의 힘은 단순히 여인들의 손끝에 글자를 남긴 것이 아니라, 그들 마음속 깊은 곳에 불씨를 지폈다. 이 불씨는 그들의 삶 속에서 꺼지지 않는 등불이 되어, 자아를 찾아가는 길을 비추었다.
이름과 글을 통해 새로워진 여인들의 이야기는 단순한 과거의 기억을 넘어 하나의 역사가 되었다. 쉐핑이 건넨 글과 이름이라는 선물은 그들에게 진정한 자신을 마주하고, 세상에 그 존재를 전할 수 있는 용기를 선사했다. 쉐핑이 부여한 이름과 가르침 속에서, 이름 없는 여인들은 비로소 잃어버린 자신을 찾고 진정한 삶의 주체로서 나아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