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의 한가운데, 나무들은 고요하게 서 있다. 나목이 되어 버린 그 모습은 이전의 푸르렀던 모습과는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아무리 바라보아도, 가지마다 움츠러든 기운만 보일 뿐이다. 잎들이 떠난 자리에 남은 건 차가운 공기와 비어 있는 공간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나무를 바라보면 내 마음은 차갑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 고요함 속에서 한결 마음이 정리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언제부턴가 나는 나목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과거에는 이 나무가 가엾고 쓸쓸하게 느껴졌다면, 이제는 그런 감정이 덜어졌다. 이제 나는 그 나무를 바라보며 홀가분함을 느낀다. 잎을 다 떨쳐낸 나무는 어느새 더 넓고 깊은 바람을 맞을 준비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한 여정을 마친 후, 새롭게 다시 시작할 준비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마 그만큼 세월이 나를 변화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나 또한 몇 번의 변화를 겪고 나서, 그 변화 속에서 얻은 고요함과 여유를 알게 되었다. 때로는 감추어 두었던 감정들을 모두 털어내고, 편안하게 존재할 수 있는 시간들이 필요하다. 나무가 잎을 다 떨쳐낸 것처럼, 나도 그렇게 내면의 불필요한 것들을 비워내며 새로운 계절을 맞이할 준비가 된 것이다.
나는 그 나목에서 새로운 시작을 본다. 잎을 떨쳐내는 것은 단지 겨울을 나기 위한 준비일 뿐, 나무는 언젠가 다시 푸른 잎을 틔울 것이다. 마치 어린아이들이 유치를 빼고 나서 영구치를 기다리는 것처럼, 나무는 새로운 성장의 시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 기다림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 오히려 그 시간이 지나면 더 풍성한 변화가 다가올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목을 바라보며, 나는 또 다른 변화를 준비한다. 언제나 변화는 두려운 것이지만, 그 변화가 지나고 나면 더 나은 자신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무가 보여준 것처럼, 나 역시 내 안의 잎을 떨쳐내고, 그 자리에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시작할 준비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