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근달이 솟아오른다.
저 먼 하늘 끝에
은빛 물결을 흘러내리며
떠오른 달은
마치 손 닿을 듯 가까운데
손을 뻗으면 멀어져만 간다.
달빛이 물에 닿으면
강이 흔들리고,
돌담에 부딪히면
그림자가 부서진다.
길가에 서 있던 나무들도
어느새 몸을 기울여
달을 따라가려 하지만,
달은 한 곳에 머무르지 않는다.
금세 환하게 웃었다가
슬며시 구름 속으로 몸을 숨긴다.
조각난 구름들이
달을 가렸다 풀어주기를
되풀이할 뿐
달빛은 보였다가 사라지고,
사라졌다가 다시 빛난다.
나는 다시 하늘을 올려다본다.
달은 어디로 가는가
저 구름 속은 어떤 세계인가
구름에 가려졌다고
달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 텐데
나는 왜 텅 빈 하늘을 바라보며
그리움에 젖는가.
달이 떠난 자리에 남은 것은
길어진 밤의 그림자
멀리서 희미하게 울려 퍼지는
누군가의 속삭임뿐이지만
내 가슴속에서는
그 보름달이 여전히
점점 더 높이 떠오른다.
<시작 노트>
한국에 있는 친구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보름달이 떴다고, 지금 하늘을 보고 있다고. 나는 그 순간 창밖을 내다보았다. 하지만 보름달은 보이지 않았다. 구름이 짙게 깔린 밤하늘, 달은 분명 저 너머에 있을 터인데, 내 눈엔 보이지 않았다.
달이 구름 속으로 숨는 것처럼, 어떤 존재들은 우리 곁에서 사라지는 듯하다. 하지만 정말 사라지는 것일까? 가려진다고 해서 존재가 없어지는 것은 아닐진대, 우리는 왜 부재 앞에서 슬퍼하는가. 달이 다시 모습을 드러낼 것을 알면서도, 그 순간의 상실을 어쩌지 못하는 것일까.
이 시는 보름달을 통해 다가왔다가 사라지는 것들, 그러나 여전히 마음속에서 빛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구름이 가린다고 해도 달은 사라지지 않는다. 마치 우리의 기억 속에서, 마음속에서 떠오르는 그리움처럼. 〈<구름 속의 보름달〉 기법 분석>>
1. 낯설게 하기
• “구름에 가려졌다고 / 달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 텐데”
우리가 익숙하게 생각하는 ‘보이지 않으면 없는 것’이라는 개념을 낯설게 만든다. 달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구름이 가린 것뿐이지만, 시적 화자는 이를 마치 존재 자체의 유무처럼 받아들이며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 “길가에 서 있던 나무들도 / 어느새 몸을 기울여 / 달을 따라가려 하지만,”
나무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달빛을 따라가려는 듯한 모습을 묘사함으로써 익숙한 풍경을 새로운 감각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2. 형상화
• “은빛 물결을 흘러내리며 떠오른 달”
달빛이 마치 물결처럼 흐른다는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달의 부드러운 광휘를 형상화하고 있다.
• “달빛이 물에 닿으면 강이 흔들리고, 돌담에 부딪히면 그림자가 부서진다.”
달빛이 단순히 비치는 것이 아니라, 물을 흔들고 그림자를 부수는 듯한 생동감을 부여함으로써 달빛의 움직임을 감각적으로 형상화한다.
• “금세 환하게 웃었다가 / 슬며시 구름 속으로 몸을 숨긴다.”
달을 의인화하여 감정이 있는 존재처럼 표현함으로써 친숙하게 형상화했다.
3. 최초의 기억
• 시의 시작 노트에서 시인이 한국에 있는 친구와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하늘을 올려다본 경험에서 출발한다. 이처럼 시적 감수성이 특정한 경험(보름달을 본 기억)에서 비롯되었으며, 그 기억이 보름달의 부재와 그리움이라는 감정으로 확장된다.
• 달을 바라보며 ‘부재의 순간’을 경험하고, 그것이 단순한 달빛이 아니라 삶에서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기억과 연결된다.
4. 비유
• “구름에 가려졌다고 / 달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 텐데”
달은 ‘사라진 존재’에 대한 은유이다. 우리가 눈으로 보지 못하는 것들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며, 그리움과 기억의 지속성을 보여준다.
• “내 가슴속에서는 / 그 보름달이 여전히 / 점점 더 높이 떠오른다.”
가슴속의 달은 단순한 물리적 존재가 아니라, 마음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기억과 그리움의 상징이다. 현실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내면에서는 더욱 선명해지는 달의 모습이 감정의 깊이를 더한다.
5. 역설법
• “손을 뻗으면 멀어져만 간다.”
가까운 것처럼 보이는 달이 실제로는 다가갈 수 없는 존재임을 역설적으로 표현했다. 이는 우리가 소중한 존재를 붙잡으려 하지만 결국 닿을 수 없다는 인생의 아이러니를 반영한다.
• “사라졌다가 다시 빛난다.”
달은 구름에 가려졌다가 다시 나타나며, 이는 인생의 소중한 것들이 순간적으로 보이지 않더라도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부재와 존재가 공존하는 역설적인 상황을 형상화했다.
• “달이 떠난 자리에 남은 것은 / 길어진 밤의 그림자 / 멀리서 희미하게 울려 퍼지는 / 누군가의 속삭임뿐이지만”
달이 떠났지만, 그림자와 속삭임이 남아있다. 즉, 물리적으로 사라진 것 같지만, 그 흔적은 여전히 존재한다는 역설을 담고 있다.
총평
이 시는 보름달이라는 자연적 요소를 통해 존재와 부재, 그리움과 기억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낯설게 하기를 통해 달의 움직임을 새롭게 인식하게 하며, 비유와 형상화를 통해 달빛이 가진 감성적 깊이를 강조한다. 역설적 표현을 통해 우리가 보고 느끼는 것들이 단순한 사실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음을 암시하며, 최초의 기억에서 출발한 개인적 경험을 보편적인 감정으로 확장시킨다.
결국, 달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더욱 빛나는 존재로 남으며, 이는 사랑하는 존재와의 이별,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되는 기억의 힘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