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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say2

언어의 벽돌 쌓기

by lee nam

중학교 시절, 우리는 손수 학교 건물을 짓는데 한몫을 했다. 흙먼지와 땀으로 범벅이 되었던 학교 건설 현장의 생생한 기억은 단순한 과거의 한 장면이 아닌, 책상에서 얻은 어떤 지식보다도 깊고 단단하게 내 삶의 토양에 뿌리내린 강력한 경험이다. 교실 안의 이론과 공식들은 흐릿해졌지만, 뜨거운 햇볕 아래 벽돌을 옮기던 육체의 고통, 냇가에서 퍼 올리던 축축한 모래의 질감, 그리고 함께 땀 흘리던 친구들의 숨결은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있다. 우리 손으로 함께 만들어가던 학교라는 공동의 공간 속에서, 나는 노력의 가치, 협력의 중요성, 그리고 작은 행위들이 모여 거대한 결과를 이룬다는 삶의 근본적인 진리를 몸으로 체득했다. 당시에는 그저 힘든 노동이라고만 생각했던 그 시간들이, 훗날 내가 삶이라는 집을 지어 올리는 데 필요한 가장 튼튼한 기초 공사가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손바닥을 스치는 거친 벽돌의 감촉, 발끝에 무심히 차이던 한 줌의 모래는, 훗날 삶의 다양한 무게와 질감을 이해하는 데 예상치 못한 깊은 통찰력을 안겨주었다.


돌이켜보면, 육체적인 노동만이 전부였던 것은 아니다. 학교를 건설하는 와중에도, 배움에 대한 열망은 마음 한편에서 꺼지지 않는 불꽃처럼 타올랐다. 호남의 작은 시골 마을을 떠나, 더 넓은 세상을 향한 꿈을 품고 올랐던 호남의 J 명문 여고는, 웅크리고 있던 나를 일으켜 세워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낯선 환경 속에서 마주했던 새로운 지식과 자극들은 잠자고 있던 나의 지적 호기심을 일깨우고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해야 한다는 갈망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서울에서의 대학 생활은, 이전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다채로운 학문적 탐구와 개성 넘치는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나의 세계관을 확장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캠퍼스의 낭만과 자유 속에서, 나는 끊임없이 질문하고 토론하며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길렀다.


졸업 후에는 결혼이라는 또 다른 형태의 ‘집’을 짓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가정을 이루고, 아이들을 낳아 기르는 시간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헌신과 책임감을 요구하는 여정이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재롱은 삶의 가장 큰 기쁨이었지만, 동시에 밤잠을 설치고 마음 졸이는 순간들의 연속이기도 했다. 그렇게 아이들이 자라나 각자의 삶을 시작하고, 막내가 대학에 입학한 후에야, 비로소 오롯이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다시 찾아왔다. 마치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나만의 방을 다시 발견한 듯한 기분이었다.


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마음 한편 깊숙한 곳에는 늘 배우고 싶다는, 특히 ‘나’라는 존재의 흔적을 언어로 기록하고 싶다는 간절한 열망이 꺼지지 않는 불씨처럼 남아 있었다. 삶의 파편들을 하나하나 주워 모아 문장으로 정교하게 엮어내고, 지나온 발자취를 되돌아보며 의미를 부여하는 일, 그것은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그러나 결코 포기할 수 없었던 나의 본질적인 욕망이었다. 마치 오랫동안 닫혀 있던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잊었던 꿈을 다시 마주하는 듯한 설렘과 두려움이 동시에 느껴졌다.


서툰 솜씨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는 마치 어린 시절 냇가에서 모래를 퍼 올리던 때처럼, 조심스럽게 단어들을 모으고 문장이라는 벽돌을 쌓아 올리기 시작했다. 때로는 문장 하나를 완성하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걸리고, 마음에 들지 않아 허물고 다시 쌓기를 반복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나는 희미했던 과거의 기억들이 되살아나 생생한 언어로 옷을 입고, 흩어져 있던 감정들이 비로소 제 자리를 찾아가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마치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낡은 집을 보수하듯, 기억의 먼지를 털어내고 의미를 부여하며 새로운 공간으로 재탄생시키는 기분이었다.


언어라는 도구를 통해, 나는 과거의 나를 다시 만나고 현재의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어린 시절 건설 현장에서 느꼈던 육체적인 고통 속에서 발견했던 삶의 굳건한 토대, 낯선 환경 속에서 움츠러들었던 나를 일으켜 세웠던 배움의 열정, 그리고 가족이라는 또 다른 집을 지으며 느꼈던 희생과 사랑의 의미들을, 이제야 비로소 명확한 언어로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마치 오랜 항해 끝에 비로소 닻을 내린 배처럼, 불안했던 마음은 차분하게 가라앉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언어의 집을 짓는 여정은 때로는 고되고 외롭기도 하다. 써 내려간 글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 좌절하기도 하고, 표현하고 싶은 감정들을 적절한 단어로 옮기는 것의 어려움에 직면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어린 시절 땀 흘려 벽돌을 쌓아 올리던 기억을 떠올린다. 눈앞의 작은 벽돌 하나하나에 집중하며 묵묵히 나아갔던 그때처럼, 서툰 문장일지라도 꾸준히 써 내려가는 것만이 언어의 집을 완성하는 유일한 방법임을 다시 한번 되새긴다.


어쩌면 삶은 끊임없이 벽돌을 쌓아 올리는 과정의 연속 이른지도 모른다. 때로는 육체적인 노동으로, 때로는 정신적인 노력으로, 우리는 매 순간 삶이라는 집을 조금씩 지어 올린다. 그리고 그 집은 우리의 경험과 기억 그리고 언어라는 재료들로 이루어진 세상에 단 하나뿐인 소중한 공간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벽돌을 쌓아 올려야 할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오늘도 조심스럽게 언어의 벽돌 하나를 더 쌓아 올리며 나만의 이야기를 담은 튼튼한 집을 완성해 나갈 것이다. 그 집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내가 함께 머물며 삶의 온기를 나누는 따뜻한 공간이 될 것이다.



중학교 시절, 우리는 손수 학교 건물을 짓는데 한몫을 했다. 흙먼지와 땀으로 범벅이 되었던 학교 건설 현장의 생생한 기억은 단순한 과거의 한 장면이 아닌, 책상에서 얻은 어떤 지식보다도 깊고 단단하게 내 삶의 토양에 뿌리내린 강력한 경험이다. 교실 안의 이론과 공식들은 흐릿해졌지만, 뜨거운 햇볕 아래 벽돌을 옮기던 육체의 고통, 냇가에서 퍼 올리던 축축한 모래의 질감, 그리고 함께 땀 흘리던 친구들의 숨결은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있다. 우리 손으로 함께 만들어가던 학교라는 공동의 공간 속에서, 나는 노력의 가치, 협력의 중요성, 그리고 작은 행위들이 모여 거대한 결과를 이룬다는 삶의 근본적인 진리를 몸으로 체득했다. 당시에는 그저 힘든 노동이라고만 생각했던 그 시간들이, 훗날 내가 삶이라는 집을 지어 올리는 데 필요한 가장 튼튼한 기초 공사가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손바닥을 스치는 거친 벽돌의 감촉, 발끝에 무심히 차이던 한 줌의 모래는, 훗날 삶의 다양한 무게와 질감을 이해하는 데 예상치 못한 깊은 통찰력을 안겨주었다.


돌이켜보면, 육체적인 노동만이 전부였던 것은 아니다. 학교를 건설하는 와중에도, 배움에 대한 열망은 마음 한편에서 꺼지지 않는 불꽃처럼 타올랐다. 호남의 작은 시골 마을을 떠나, 더 넓은 세상을 향한 꿈을 품고 올랐던 호남의 J 명문 여고는, 웅크리고 있던 나를 일으켜 세워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낯선 환경 속에서 마주했던 새로운 지식과 자극들은 잠자고 있던 나의 지적 호기심을 일깨우고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해야 한다는 갈망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서울에서의 대학 생활은, 이전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다채로운 학문적 탐구와 개성 넘치는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나의 세계관을 확장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캠퍼스의 낭만과 자유 속에서, 나는 끊임없이 질문하고 토론하며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길렀다.


졸업 후에는 결혼이라는 또 다른 형태의 ‘집’을 짓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가정을 이루고, 아이들을 낳아 기르는 시간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헌신과 책임감을 요구하는 여정이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재롱은 삶의 가장 큰 기쁨이었지만, 동시에 밤잠을 설치고 마음 졸이는 순간들의 연속이기도 했다. 그렇게 아이들이 자라나 각자의 삶을 시작하고, 막내가 대학에 입학한 후에야, 비로소 오롯이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다시 찾아왔다. 마치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나만의 방을 다시 발견한 듯한 기분이었다.


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마음 한편 깊숙한 곳에는 늘 배우고 싶다는, 특히 ‘나’라는 존재의 흔적을 언어로 기록하고 싶다는 간절한 열망이 꺼지지 않는 불씨처럼 남아 있었다. 삶의 파편들을 하나하나 주워 모아 문장으로 정교하게 엮어내고, 지나온 발자취를 되돌아보며 의미를 부여하는 일, 그것은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그러나 결코 포기할 수 없었던 나의 본질적인 욕망이었다. 마치 오랫동안 닫혀 있던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잊었던 꿈을 다시 마주하는 듯한 설렘과 두려움이 동시에 느껴졌다.


서툰 솜씨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는 마치 어린 시절 냇가에서 모래를 퍼 올리던 때처럼, 조심스럽게 단어들을 모으고 문장이라는 벽돌을 쌓아 올리기 시작했다. 때로는 문장 하나를 완성하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걸리고, 마음에 들지 않아 허물고 다시 쌓기를 반복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나는 희미했던 과거의 기억들이 되살아나 생생한 언어로 옷을 입고, 흩어져 있던 감정들이 비로소 제 자리를 찾아가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마치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낡은 집을 보수하듯, 기억의 먼지를 털어내고 의미를 부여하며 새로운 공간으로 재탄생시키는 기분이었다.


언어라는 도구를 통해, 나는 과거의 나를 다시 만나고 현재의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어린 시절 건설 현장에서 느꼈던 육체적인 고통 속에서 발견했던 삶의 굳건한 토대, 낯선 환경 속에서 움츠러들었던 나를 일으켜 세웠던 배움의 열정, 그리고 가족이라는 또 다른 집을 지으며 느꼈던 희생과 사랑의 의미들을, 이제야 비로소 명확한 언어로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마치 오랜 항해 끝에 비로소 닻을 내린 배처럼, 불안했던 마음은 차분하게 가라앉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언어의 집을 짓는 여정은 때로는 고되고 외롭기도 하다. 써 내려간 글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 좌절하기도 하고, 표현하고 싶은 감정들을 적절한 단어로 옮기는 것의 어려움에 직면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어린 시절 땀 흘려 벽돌을 쌓아 올리던 기억을 떠올린다. 눈앞의 작은 벽돌 하나하나에 집중하며 묵묵히 나아갔던 그때처럼, 서툰 문장일지라도 꾸준히 써 내려가는 것만이 언어의 집을 완성하는 유일한 방법임을 다시 한번 되새긴다.


어쩌면 삶은 끊임없이 벽돌을 쌓아 올리는 과정의 연속 이른지도 모른다. 때로는 육체적인 노동으로, 때로는 정신적인 노력으로, 우리는 매 순간 삶이라는 집을 조금씩 지어 올린다. 그리고 그 집은 우리의 경험과 기억 그리고 언어라는 재료들로 이루어진 세상에 단 하나뿐인 소중한 공간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벽돌을 쌓아 올려야 할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오늘도 조심스럽게 언어의 벽돌 하나를 더 쌓아 올리며 나만의 이야기를 담은 튼튼한 집을 완성해 나갈 것이다. 그 집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내가 함께 머물며 삶의 온기를 나누는 따뜻한 공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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