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는 오래전부터 하나의 우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표면은 말라붙어 있었으나,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침묵으로 반짝였다. 아무도 길어 올리지 않는 물, 아무도 고개를 기울이지 않는 자리. 오직 나만이, 세월 속에서 이 우물을 껴안고 살아왔다.
세상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채워 넣으라 종용한다. 지식과 성공, 사랑과 경험을. 그러나 나는 알게 되었다. 비어 있음만이 진정한 충만이라는 것을. 더 이상 고일 물조차 없는 우물에서 비로소 나는 나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잃은 자리가 아니라, 잉태하고 있는 자리임을 알았다.
어떤 날은 별빛이 조용히 내려와, 마른 우물 가장자리에 발끝을 적신다. 오래전에 스러진 웃음소리 하나, 이름 하나가 수면 위에 아지랑이처럼 떠오른다. 손을 뻗어 붙잡으려 하나, 허공만이 손바닥에 남는다. 그리움이란 본디, 붙잡을수록 멀어지는 법. 나는 점점 더 조심스럽게 그것을 바라보는 법을 배웠다. 바라보되 붙잡지 않고, 기억하되 소유하지 않는 일. 그리하여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그리움은 소멸이 아니라, 삶의 또 다른 숨결임을.
우물은 나에게 삶의 은유였다. 기쁨도 슬픔도 언젠가는 증발하여 사라지고, 결국 남는 것은 고요한 바닥뿐. 그러나 그 바닥에서, 삶은 다시 피어나고 있었다. 슬픔도 기쁨도 지나간 자리, 모두 고요한 물결로 잠들었고, 그곳에서 나는 또 한 번 살아갈 이유를 길어 올렸다.
빈 것은 결핍이 아니라 가능성이다. 누군가는 허기를 두려워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 비어 있는 그릇을 소중히 여긴다. 무엇이든 담을 수 있기에, 비어 있음은 끝이 아닌 시작이다. 내 안의 우물가에서 나는 오래도록 기다렸다. 다시 고여올 어떤 이름 하나를, 새벽녘 번져오는 희미한 빛깔 하나를.
어린 시절, 마을 언덕 너머에는 진짜 우물이 있었다. 낡은 돌담 위에 이끼가 흐르고, 사람들은 가끔 지나며 물을 길었다. 아이들은 조약돌을 던져 넣으며 놀았고, 나는 가끔 우물가에 앉아 그 깊은 어둠을 들여다보았다. 보이지 않는 곳을 오래 바라보는 일은 어린 나에게 낯선 안도감을 주었다. 아마 그때부터였으리라. 빛보다 어둠을, 충만보다 비어 있는 것을 사랑하게 된 것이.
오늘날도 마음이 번잡스러울 때면 나는 눈을 감고, 내 안의 우물을 찾는다. 소리 없는 바람이 벽을 타고 흐르고, 오래된 시간들이 가만히 물결친다. 사라진 것들이 아니라, 스며든 것들이었다. 지나간 것이 아니라, 여전히 살아 숨 쉬는 것들이었다. 그리움은, 떠나버린 것이 아니라, 가슴 깊이 뿌리내린 또 하나의 생명이다.
우물은 물이 넘치지 않을 때 가장 깊다. 넘실거리는 풍요로움이 아니라, 침묵하는 투명함 속에서 진짜 숨결이 깃든다. 내가 그리워하는 것은, 실은 어떤 사람이거나 어떤 순간이 아니라, 비어 있는 그 투명한 자락 자체인지도 모른다. 사랑은 가득 채울 때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비워 둘 때 더욱 깊어진다. 부재가 만들어내는 충만, 잃어버림이 만들어내는 존재. 그리움은 종말이 아니라 생성이다.
나는 오늘도 우물가에 선다. 빈 두 손으로, 그러나 충만한 마음으로 무언가를 길어 올린다. 손바닥엔 아무것도 없으나, 가슴 안에는 파도치는 별빛이 고인다. 비어 있기에 가득하고, 사라졌기에 살아 있는 것들. 나는 텅 빈 것을 안고 돌아와, 다시 살아간다.
그리움의 우물은 오늘도 말없이 나를 품는다. 텅 빈자리를 통해, 끝내 나를 채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