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인생의 마지막 10년을 함께할 친구가 있습니까?” 어느 날 우연히 본 대만의 짧은 웹 영화 하나가 내 마음을 길게 붙들어 세웠다. ‘미래의 노후’라는 제목을 단 이 영화는, 산속 외딴집에서 혼자 살아가는 한 노인의 쓸쓸한 일상을 그린다. 네 명의 자식들은 모두 성장해 번듯한 직업을 가졌지만, 노인을 찾는 이는 아무도 없다. 오랜만에 아들과 손자가 찾아온다는 소식에 노인은 정성껏 음식을 마련한다. 따뜻한 설렘을 안고 기다리던 그의 손에 닿은 것은 오지 못한다는 짧은 전화 한 통. 허탈하게 남은 음식들과 텅 빈 집 안, 누렇게 바랜 수첩을 뒤적이며 친구를 찾아보지만, 함께 식사할 만한 이조차 찾지 못한 노인은 홀로 식탁에 앉아 조용히 음식을 입에 넣는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이런 자막이 흐른다. “당신은 인생의 마지막 10년을 함께할 친구가 있습니까?” 그 문장은 내게 오래도록 메아리쳤다.
인생의 뒷모습을 가만히 떠올려본다. 어린 시절에는 늘 친구들이 곁에 있었다. 학교 가는 길, 공터에서 뛰어놀던 저녁 무렵, 어깨를 부딪치며 걸었던 골목길에도 친구는 있었다. 청춘이 무르익던 시절에도, 일과 가정에 치여 분주하던 시절에도 우리는 틈틈이 친구를 불러냈고, 웃고 떠들며 세상의 무게를 나눴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수록, 하나 둘 친구들과의 거리는 멀어졌다. 바쁘다는 이유로, 아프다는 이유로, 혹은 그저 흘러가는 세월 속에 자연스레 잊혔다. 그렇게 누군가의 이름을 한참 동안 떠올려야만 생각나게 되는 날이 찾아왔다. 과연 나는, 마지막 10년을 함께할 친구를 곁에 둘 수 있을까?
초고령화 시대, 백세 인생이라는 말이 이제는 당연한 시대가 되었다. 60대는 노년의 문턱일 뿐이며, 70대는 초로, 80대를 넘어야 진정한 노인이 된다고들 한다. 하지만 백세를 살아낸다 해도, 건강하지 못하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내 발로 걷지 못하고, 내 손으로 음식을 먹지 못하고, 내 입으로 말을 잇지 못하며, 내 귀로 듣지 못하고, 내 눈으로 세상을 보지 못한다면, 긴 생은 오히려 짐이 된다. 그래서 노년의 행복은 오로지 건강에 달려 있다. 첫째도 건강, 둘째도 건강, 셋째도 건강. 그러나 건강만으로 충분할까? 아무리 건강해도 마음을 나눌 이가 없다면, 인생의 마지막 길은 얼마나 외로울 것인가.
나는 요즘 자주 내 주변을 둘러본다. 어릴 적 친구, 젊은 날 함께 울고 웃었던 동료들, 삶의 어떤 고비마다 함께 손잡아주던 이들. 그중 몇이나 지금도 내 곁에 머물러 있을까?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여전히 손 내밀 수 있을까? 세월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사소한 오해나 어색함, 혹은 바쁜 삶이 거리를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이 한 사람, 함께 식탁을 마주할 수 있는 친구 하나는 간직하고 싶다. 허물없이 웃고, 때로는 아무 말 없이 마주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따뜻해지는 그런 벗을, 마지막 10년을 함께 걸어갈 친구를 말이다.
오늘, 나는 조용히 다짐해 본다. 먼 훗날, 누렇게 바랜 수첩을 허둥지둥 뒤적이며 외로움을 삼키지 않도록, 지금 이 순간, 작은 인연에도 정성을 다하리라. 마음의 문을 닫지 않고, 서툴더라도 먼저 손을 내밀고, 웃으며 안부를 묻는 사람이 되리라. 친구여, 오늘 하루도 무탈하게, 긍정의 힘으로 살아가자. 아끼는 벗과 함께 웃고, 때로는 작은 슬픔도 나누며, 우리 각자의 마지막 10년을 정겹고 따스하게 채워가자. 누군가의 인생에 따뜻한 이름으로 남을 수 있다면, 그 또한 얼마나 복된 일이겠는가. 오늘도 나는 마음속으로, 함께 10년을 걸어갈 벗을 생각 하며 조용히 상념에 잠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