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겨울 새벽은 언제나 깜깜하고 조용했다. 바람은 종종 창호지를 스치며 무언가를 속삭였고, 이불속은 자그마한 동굴처럼 포근했다. 그 안에서 나는 아버지의 발소리를 들었다. 툇마루를 지나 마당을 가로질러 외양간 쪽으로 멀어져 가는 발걸음. 이따금 장작을 패는 소리가 어둠을 가르고 들려왔고, 그 소리조차도 평화롭게 느껴졌다. 조금 지나면 마당 저편에서 김이 몽글몽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어둠과 혹한 속에서 유일한 불빛, 그것이 바로 아버지였다. 아직 세상도 깨어나지 않은 새벽, 아버지는 하루를 가장 먼저 맞이하셨고, 말없이 가족의 삶을 불려내셨다. 나는 그 새벽의 기척을 이불속에서 고요히 감지하며 자랐다.
쇠죽 끓이던 겨울 새벽, 아버지는 하루의 문을 조용히 열어젖히셨다. 외양간 앞 커다란 무쇠솥엔 보리겨와 무 썬 것, 고구마 줄기와 왕겨, 여물 찌꺼기까지 한데 뒤섞여 있었다. 장작불이 그 아래에서 천천히 살아나며 뜨겁게 일어섰고, 아버지는 긴 나무주걱으로 느릿하게, 그러나 꾸준히 솥을 저으셨다. 바깥공기는 콧속까지 얼어붙을 만큼 매서웠지만, 그 속에서 피어오르는 쇠죽의 향은 묘하게 따스하고 생명력 있었다. 입김은 흰 안개처럼 흩어지고, 손등은 터져 벌겋게 갈라졌지만 아버지는 한마디 불평도 없이, 그 겨울을 묵묵히 견뎌내셨다. 누구도 보지 않는 시간, 누구도 기억하지 못할 그 새벽을 아버지는 매일같이 살았다. 그 장면은 나의 무의식 깊은 곳에, 마치 한 폭의 수묵화처럼 남아 있다.
그 겨울 새벽의 노동은 단순한 습관이 아니었다. 중학생, 고등학생 두 명과 대학생 두 명. 오 남매의 등록금을 마련해야 하는 아버지의 어깨엔 늘 눈에 보이지 않는 산처럼 큰 짐이 얹혀 있었다. 농사지은 돈만으로는 빠듯했다. 그래서 아버지는 어린 송아지를 사서 황소로 키워 팔기도 했고, 암송아지를 어미소로 길러 또다시 송아지를 낳게 하셨다. 소는 단순한 가축이 아니었다. 자식의 학비를 책임지는 삶의 한 축이자 희망이었다. 한 마리의 송아지에서 시작된 작은 생명이 몇 년 뒤에는 대학 입학금으로 바뀌는 긴 기다림의 시간, 그 기다림을 아버지는 매일 아침 쇠죽 끓이며 견디셨다. 내가 깨닫지 못한 채 지나쳤던 그 고요한 부지런함은 사실, 우리 삶의 토대를 이루는 가장 깊은 헌신이었다.
어느 날 아버지의 손을 마주 잡은 적이 있었다. 솥 앞에서 주걱을 잡는 내 손이 너무 작고 서툴러 자꾸만 미끄러질 때,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내 손을 감싸셨다. 그 손은 장작불에 단련된 손, 노동으로 굳어진 손, 그러나 이상하게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아버지가 피워내던 새벽의 불빛은 단지 불이 아니라, 누군가를 살리기 위한 기도였다는 것을. 말보다 더 깊은 사랑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 후로 나는 겨울 새벽이 두렵지 않았다. 그 시간은 나를 키운 시간이며, 아버지의 삶이 가장 진하게 빛나는 시간이었으니까. 그 따스한 손길 하나로, 나는 평생을 버틸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얻었다.
이제는 그 외양간도, 무쇠솥도, 아버지도 내 곁에 없다. 하지만 겨울이 깊어질수록, 나는 어김없이 그 새벽을 떠올린다. 검은 하늘 아래 솟구치던 김, 솥을 휘젓던 주걱, 그리고 아버지의 말 없는 등. 삶이란 무엇인가를 물을 때마다, 나는 그 겨울을 떠올린다. 사랑은 때로 목소리보다 냄새로, 손의 온기로, 장작 타는 소리로 기억된다. 쇠죽을 끓이던 그 손끝에서 피어오른 아버지의 헌신은 지금도 내 안에서 살아 있다. 그것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이제 내가 누군가를 위해 새벽을 여는 사람이 되었을 때, 나는 비로소 아버지의 삶을 완성해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지핀 불은 지금도 내 마음 한가운데에서 꺼지지 않고 타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