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라남도의 작은 마을에서 자랐다. 그곳엔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전라남도에서 세 번째로 크다고 알려진 금전 저수지가 있었다. 그러나 내 눈엔 그저 저수지가 아니었다. 사계절 내내 다양한 얼굴을 보여주는, 말없이 나를 품어주던 커다란 호수였다. 중학교 3년 동안, 나는 그 호숫가를 따라 난 신작로를 걸어 이십 리나 되는 길을 통학했다. 새벽 이슬이 어른거리는 산길을 지나 호숫가에 다다를 때면, 찬 공기 속에 담긴 흙냄새와 물안개 속에 번지는 햇살이 나를 조용히 깨웠다. 호수는 마치 잠든 거인의 숨결처럼 잔잔하게 출렁였고, 그 곁에서 나는 어느새 꿈 많은 소녀로 자라나고 있었다.
그 호수는 내게 단순한 풍경이 아니었다. 어느 날은 거울이었고, 또 어느 날은 창이었다. 나의 내면을 비춰주는 거울이자, 바깥세계를 향해 열린 창. 외롭고 혼란스러웠던 사춘기 시절, 나는 그 호숫가에 앉아 묵묵히 흐르는 물빛을 바라보며 많은 것을 삼키고, 많은 것을 흘려보냈다. 호수는 아무 말 없이 모든 것을 받아주었다. 울음도, 분노도, 꿈도, 망설임도. 그리고 호수의 깊은 심연 속에서, 나는 삶의 고요한 의미와 마주하기 시작했다. 삶이란 결국, 늘 고요할 수는 없지만 고요를 품으려는 마음이라는 것을.
시간은 흐르고, 나는 미국 시카고로 이민을 왔다. 도시 한복판, 빌딩 숲 사이를 지나 어느 날 미시간 호수와 마주했다. 어릴 적 보았던 호수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물결, 끝이 보이지 않는 수평선. 처음 그곳을 마주했을 땐, 웅장함에 가슴이 벅찼고, 이국적인 풍경이 주는 낯섦에 오래도록 서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미시간 호수에서 어린 시절 그 호수를 떠올리게 되었다. 단지 생김새나 크기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고요와 품는 마음이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미시간 호수에 자주 간다. 굳이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바쁘고 소란한 도시의 리듬 속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을 때, 나도 모르게 그 수평선을 찾게 된다. 호숫가 벤치에 앉아 바람을 맞고 있으면, 하늘과 호수가 만나는 경계가 점점 흐려진다. 마치 하늘이 내려와 호수 안에 스며든 것 같다. 그 순간, 내 좁고 바쁜 마음에도 하늘이 내려온다. 내면이 조금씩 열리고, 마음이 느긋해진다. 마치 그 옛날, 고향의 호숫가에서 그랬던 것처럼.
삶이란 어쩌면, 하나의 호수를 품고 사는 일일지도 모른다. 외부의 소란을 흡수하고, 고요하게 가라앉히며, 스스로를 비춰보는 거울 같은 공간. 내 안의 호수는 여전히 출렁이고 있다. 고향의 호수와 미시간 호수는 나의 성장과 이민, 시간과 기억, 그리고 내면의 깊이를 이어주는 다리다. 그 호수들을 따라 걸으며 나는 내가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를 가만히 묻는다. 그리고 오늘도 다시, 하늘을 담은 호수 앞에 선다. 이제는, 하늘을 내 안에 담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