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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poem3시

반딧불

by lee nam

밤은

검은 털을 심는다.

숨죽인 대지 위에

서걱대는 촉각으로

어둠을 덮는다.

나는 손끝으로

그 촉촉한 심장을

더듬어 걷는다.


어둠은 자라난다.

뼈 없는 짐승처럼

몸을 뒤튼다.

그 속을 가르며

반딧불 하나

작은 불씨가 벌어진다.


깨진 유리 조각들이

허공에 떠 있다.

빛나면서 스스로 금 가고

아프게 부서지면서

더 단단한 진실이 된다.


빛은 오래 머물지 않는다.

금세 어둠에 휩쓸려

깊은 골짜기로 빨려들지만

그 잠깐의 떨림으로

밤은 다시 살아난다.


나는 본다.

꺼진 곳마다

또 다른 불씨가 깃든다.

사라진 줄 알았던 것들이

사라지지 않고

다른 모양으로

살아 있다는 것을.


반딧불은 스스로를 태워

어둠을 품는다.

꺼짐은 끝이 아니다.

꺼지는 동안

더 먼 어둠 속에서

싹을 틔운다.


나는

한 줄기 잿빛

빛을 따라 걷는다.

텅 빈 것처럼

보이던 밤이

실은 가득 찬

숨결이라는 걸

늦게야 배운다.



<<요약>>

• 초반은 어둠을 촉각적으로 형상화하여 밤 전체를 살아 있는 존재처럼 묘사합니다.

• 반딧불은 생명과 상처, 빛남과 부서짐을 함께 품은 역설적 존재로 그려집니다.

• 꺼짐과 소멸을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새로운 탄생과 순환의 가능성으로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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