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하늘을 올려다본다. 바람은 언제나 위에서 불어오고, 구름은 아무 말 없이 흘러간다. 그러다 문득, 하늘은 오래된 편지처럼 느껴진다. 누군가 나를 사랑해서 오랜 시간 정성껏 써준 말들. 눈에 보이지 않아도 그 말들이 내 가슴에 가만히 내려앉는다. 성경이 그런 하늘의 편지처럼 느껴졌던 순간이 있었다.
나는 어릴 적 친척 할머니 방에서 예배를 드리는 교회에 갔다. 동네 친구들과 함께 뭐가 뭔지도 모르고 몰려갔다. 그런데 그때 빨간 색깔의 커다란 책 한 권씩 나눠줬다. 그 빨간색이 나에게는 너무 낯설고 생소했다. 그렇지만 나의 강렬한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했다. 나는 마룻바닥에 배를 깔고 성경책을 넘기던 기억이 있다. 너무 두껍고, 너무 어렵고, 그래서 가끔은 졸리고.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들은 언제나 이상하게도 내 마음을 두드렸다. 노아의 방주는 마치 내 방 한가운데 떠 있는 배 같았고, 다윗은 나보다 조금 더 용감한 친구처럼 느껴졌다. 예수님의 이야기로 넘어가면 나는 더욱 조용해졌고, 가만히 마음속으로 묻곤 했다. “이 사람은 도대체 누구길래 이렇게 아픈 사람 곁에만 가는 걸까?”
성경은 단순한 이야기책이 아니었다. 어른이 되어 다시 펼쳐본 성경은, 나에게 질문을 던지고 해답을 기다리는 책이었다. 살아가며 부딪힌 삶의 무게, 사랑의 모순, 이별의 상처 속에서 성경은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왔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하리라.” 그 한 줄의 문장이, 때론 시집 한 권보다, 위로의 손길보다 깊게 나를 껴안았다.
신학자들은 성경이 하나님의 계시라고 말한다. 계시란 감춰진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인간의 시야로는 결코 닿을 수 없는 신의 깊이를, 성경은 우리의 언어로, 우리의 삶의 구조 안에서 펼쳐 보인다. 그리하여 우리는 창조주가 누구인지,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구원이란 무엇인지 차츰차츰 알게 된다. 하나님의 마음이 어떻게 흘러왔는지를, 역사와 예언과 시편과 복음서를 따라가며 조금씩 느끼게 된다.
성경은 또한 구원의 이야기다. 단순히 천국과 지옥의 선택지를 알려주는 안내서가 아니라, 이 땅에서부터 시작되는 회복의 여정이다. 하나님이 인간과 다시 손잡기 위해 어떤 길을 선택하셨는지, 그 길의 절정에 십자가가 있다는 사실은 나를 침묵하게 한다. 하나님은 자신의 전부를 걸고 나를 부르셨고, 나는 그 부름 앞에서 겸손해진다. 그 사랑이 너무 커서, 도무지 감당할 수 없을 때가 많다.
성경은 또한 삶의 지침서다. 흔들리는 시대에, 수많은 가짜 소문들 속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기 어려운 때, 성경은 여전히 묵묵히 그 중심을 지키고 있다. 산상수훈에서 예수는 말한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며.” 세상은 ‘강한 자만 살아남는다’고 외치지만, 성경은 ‘사랑과 온유, 나눔과 용서’가 살아 있는 사람의 증거라고 말한다. 나는 그 믿음의 말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믿는다.
무엇보다 성경은 ‘기억’의 책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며 모세오경을 다시 읽었듯, 나 또한 삶의 유배지에서 돌아올 때마다 성경으로 돌아왔다. 성경은 나의 이야기였다. 아브라함의 망설임, 요나의 도망, 마르다의 분주함, 베드로의 눈물 속에서 나는 내 모습을 본다. 그렇게 성경은 시간을 건너, 시대를 초월해, 한 사람 한 사람의 영혼에 말을 건다.
나는 날마다 조금씩 깨닫는다. 성경은 나에게만 쓰인 책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쓰인 하늘의 편지라는 것을.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달라도, 누구든 이 편지를 펴는 순간, 한 줄의 문장 속에서 자신을 만나게 된다는 것을.
이 편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 마지막 장은 우리 각자의 삶 속에서 계속 써지고 있다. 성경은 오늘도, 누군가의 책상 위에, 누군가의 가슴 안에 살아 있다. 때론 낡고 바랜 표지로, 때론 눈물로 젖은 페이지로, 그러나 여전히 선명하게.
오늘도 나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구름 사이로 희미한 빛이 스민다. 그것이 나에게 속삭인다. “나는 너를 잊지 않았다.” 그 말 하나로, 오늘도 살아낼 힘이 생긴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나에게 건네준, 가장 진실한 사랑의 방식이다. 나의 삶 가운데 성경이 항상 나의 곁에 동반자로 함께 하는 것은 지극히 안심되는 일이다. 하늘의 편지는 나의 생의 마감날까지 삶의 원동역을 공급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