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say2

바위 위에 새긴 삶의 기록

by lee nam

꽃들의 향연을 마친 나뭇가지마다 초록의 싱싱한 기운이 새겨져 있다. 나는 오늘 아침 반구천 암각화에 대한 기사를 읽고 마음이 뭉클해졌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를 앞두고 있다는 소식은 단지 문화재 보존의 문제가 아니라, 수천 년 전 사람들의 삶과 마음이 지금 우리의 시간으로 도달해 왔다는 뜻처럼 느껴졌다. 돌 위에 남겨진 선사시대의 숨결, 그것은 문자도 없고 종이도 없던 시대에 인간이 세상에 남긴 최초의 이야기다.


울산 대곡리 반구대 바위에 새겨진 암각화를 처음 발견한 이는 우연히 그 자리에 발을 디뎠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가 본 것은 단지 바위에 그어진 선 몇 줄이 아니었을 것이다. 물고기와 고래, 작살을 들고 사냥하는 사람들, 춤추는 주술사의 형상, 그리고 기하학적 문양들 속에서 그는 선사인들의 삶의 리듬과 리얼리티를 마주했을 것이다. 1971년, 그 발견은 한국 미술사의 기원을 밝히는 빛줄기처럼 반짝였다. 그 후로 50년이 넘도록 이 그림들은 바위 위에 살아 숨 쉬며, 물과 햇살, 바람 속에서 조용히 인간의 시간을 버텨왔다.


312점의 반구대 그림과 625점에 이르는 천전리 암각화는 그저 숫자가 아니다. 그것은 수천 년의 시간을 뚫고 전해지는 생명의 장면들이다. 특히 반구대의 고래 그림은 바다를 품고 살아간 이들의 섬세한 관찰력과 예술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물개, 거북, 호랑이, 멧돼지… 동물의 다양성도 놀랍지만, 나는 그 속에 깃든 인간의 감정에 더욱 끌렸다. 자손을 위한 사냥, 생존을 위한 기도,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자 했던 고대인의 마음이 그림자처럼 따라왔다. 무엇보다 고래가 새끼에게 젖을 물리는 모습은 단순한 그림을 넘어, 생명의 신비에 대한 감동을 안겨준다. 어떻게 그들은 그것을 보았고, 왜 그것을 새겼을까? 그들은 무언가를 남기고 싶었고, 그것이 바로 우리가 지금 만나는 암각화다.


이 소중한 유산은 오랫동안 물속에 잠겨 있었다. 1965년 완공된 사연댐의 영향으로 해마다 두세 달 이상 물에 잠기며, 그림들은 수몰의 위험에 놓였다. 그것은 마치 오래된 책의 글씨가 하나씩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는 것과 같았다. 다행히도 이제는 수문 설치 계획이 고시되었고, 2030년 완공되면 1년에 단 한 번, 겨우 0.8시간만 잠기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이 계획이 현실화되기를, 시간의 기억이 더는 흐려지지 않기를 기도한다.


어쩌면 이 암각화는 돌 위에 남은 시간의 화석이다. 그러나 그것은 죽은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살아 있는 생명의 표현이며, 우리 조상들의 상상력과 창의성의 결과물이다. 고래잡이의 단계가 치밀하게 묘사된 구도, 사람과 동물 사이의 거리감과 역동성, 모든 것이 단지 생존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음을 증명한다. 이코모스가 “걸작”이라 평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 선조들은 먹고 자는 삶 너머의 아름다움을 알고 있었다. 그것을 바위에 새겨 후대에 전하고자 했던 것이다.


나는 가끔 상상한다. 수천 년 전, 한 사람이 작살을 손에 쥐고 바위 앞에 앉아 고래를 새기던 순간을. 그는 땀을 흘리며 선 하나를 그리고, 물러서서 바라보다가 다시 바위를 두드렸을 것이다. 그에겐 화려한 물감도 없었고, 정교한 도구도 없었지만, 그의 손끝에는 시간의 진심이 담겨 있었다. 우리는 그 진심을 오늘 읽는다. 반구천의 암각화는 한민족의 유산일 뿐 아니라, 인류 전체의 시원(始原)을 말해주는 시각적 언어다.


오는 7월, 파리에서 세계유산위원회가 열리고 ‘반구천의 암각화’는 대한민국의 17번째 세계유산으로 결정될 것이다. 그러나 등재 여부를 떠나, 이 바위그림들은 이미 세계적인 유산이다. 우리는 그것을 지켜야 하고, 또한 읽어야 한다. 그 속엔 우리가 잊고 살아온 삶의 태도, 자연과 인간의 관계, 공동체의 본질 같은 것들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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