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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poem2

삶과 죽음의 행렬에서

by lee nam

오늘 오후 평소처럼 일터로 향하던 길이었다. 신호등이 초록으로 바뀌는 순간, 눈앞에 경찰차 한 대가 느릿하게 다가와 차선을 막아섰다. 무슨 일인가 싶어 잠시 멈추었는데, 이내 왼편에서 차량들이 하나둘 지나가기 시작했다. 모두 앞 유리창에 주황색 리본 스티커가 붙어 있었고, 운전자들은 조용히 차를 몰고 있었다. 장례차 행렬이었다. 검은색 리무진과 뒤따르는 차량들, 그리고 그 안의 무언가 말없이 전해지는 슬픔. 도로 위에는 무겁고도 조용한 침묵이 흘렀다.


차들이 줄지어 지나가는 데만 30분이 걸렸다. 내 뒤에 선 수많은 차량들 역시 묵묵히 그 시간을 함께 견디고 있었다. 경찰은 마지막 장례차가 지나간 뒤, 나에게 손짓으로 ‘지나가도 좋다’는 신호를 보냈다.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며 마음 한편이 묘하게 울렁였다. 나는 다시, 출근을 향해 움직였다. 그렇지만 정지되었던 그 30분 사이, 내 안에서도 무언가가 조용히 일어나고 있었다. ‘삶과 죽음의 행렬 사이에서 나는 지금 어디쯤에 서 있는가 끊임없는 질문이 이어졌다.


직장에 도착한 뒤에도 마음은 여전히 그 순간에 머물러 있었다. 업무를 처리하며도,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나는 내내 오늘 아침 그 장면을 떠올렸다. 그러던 중, 오후가 되어 잠시 쉬는 시간이 주어져 무심코 핸드폰을 열어 단체 메시지를 확인했다. 고등학교 친구들 단톡방이었다. 그런데 한 친구가 적은 짧은 메시지가 눈에 박혔다. “미숙이 소천했어. 오하이오에서 장례 치르고 방금 돌아왔어.” 순간, 심장이 턱 막히는 느낌이었다.


그 친구는 고등학교 2학년 때 한 반에서 지냈던, 내게는 유난히 따뜻한 기억을 남긴 사람이었다. 이민 초기부터 전화로 안부를 주고받았고, 다른 주로 이사한 후에도 서로 끊임없이 연락을 이어왔다. 카톡이 생긴 뒤로는 서로의 삶을 나누는 짧은 글들을 주고받으며, 멀리 있어도 마음만은 곁에 있다고 느꼈다. 몇 년 전 대장암 진단을 받았을 때도, 그녀는 씩씩하게 투병했고, 치료를 잘 받았다는 소식에 안도했었다. 그래서 지난 5월 19일, 그녀가 마지막으로 내 글을 읽은 이후, 아무런 반응이 없었을 때도 그저 여행 중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바로 오늘, 그 마지막 침묵이 영원한 작별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오늘 하루는 그렇게 삶과 죽음이 내 앞을 지나간 날이었다. 아침에는 낯선 이의 죽음을 장례 행렬로 마주했고, 오후에는 소중한 친구의 부고를 통해 내가 얼마나 생의 한복판에 서 있는지를 절감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여전히 살아 있고, 일터에 도착했고, 하루를 마무리해야 한다. 하지만 그 친구, 미숙이는 두 딸과 사랑하는 남편을 남겨둔 채, 이제 다른 시간의 행렬 속으로 들어갔다. 나도 언젠가는 장례차의 뒤를 따를 것이다. 오늘은 그 당연하고도 잊기 쉬운 사실이 내 일상 속에 깊이 새겨진 하루였다.


삶은 계속된다. 내일도 어김없이 아침이 올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단지 시간의 흐름에 속한 하루가 아니라 내가 죽음을 곁에 두고 ‘지금’이라는 자각을 깊이 받아들인 날이었다. 장례 행렬이 지나가길 기다리던 그 30분, 내 마음도 함께 조문을 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미숙아, 부디 그곳에서는 아프지 않고 평안하길. 그리고 언젠가 우리가 다시 만나 서로의 우정을 나누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미숙아 한평생 신실하게 주님을 믿고 충성한 너에게 커다란 승리의 면류관이 쓰였다고 믿는다. 나도 너의 친구로서 부끄러움이 없이 주안에서 반듯한 신앙생활 하다가 가고 싶다. 미숙아 잘 가. 사랑해


시카고 친구 남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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