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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poem2

다산의 『하피첩』을 읽고

노을빛 치마에 새긴 아버지 마음

by lee nam

고국 방문했던 때, 국립민속박물관 유리 진열장 속에서 마주한 다홍빛 비단 조각 하나가 내 마음을 오래 붙잡았다. 바로 다산 정약용의 『하피첩』이었다. ’ 하피(霞帔)’란 노을처럼 붉은 비단으로 만든 치마를 이른다. 이 다홍빛 치마는 다산의 아내 홍 씨가 시집올 때 입었던 혼례복의 일부였다. 그녀는 남편이 신유박해로 유배를 떠나자, 삶의 험한 길에 홀로 서게 된 이를 위로하고자 자신의 치마를 잘라 강진으로 보냈다. 다산은 그 조각을 단순히 유품처럼 간직하지 않았다. 그는 그 위에 붓을 들었다. 유배지의 쓸쓸한 밤마다 두 아들을 생각하며 그 비단 위에 삶의 윤리를, 정신의 유산을, 그리고 아버지의 마음을 또박또박 써 내려갔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하피첩』이다.


『하피첩』은 다산이 두 아들 학연학유에게 남긴 유서이자, 삶의 설계도요, 사랑의 문서다. 그는 “나는 벼슬이 없어 너희에게 물려줄 전답이 없다. 그러나 부지런함과 검소함은 비옥한 전답보다 낫다”라고 했다.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은 물질이 아니라 마음가짐과 태도라는 것을 그 시대에도 그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식들에게 단지 착하게 살라고 말하지 않았다. 『하피첩』에는 “공경과 곧음(敬直), 의로움과 단호함(義方)을 실천하라”는 구체적인 행동 원칙이 적혀 있다. 사람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세상과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지, 가족을 어떻게 사랑할 것인지에 대한 간절하고 명료한 가르침이 다홍빛 비단 위에 흐르고 있다. 다산의 글은 흡사 노을처럼 따스하고도 진중하다.


이 비단 조각에 담긴 사랑은, 단순히 혈연을 넘어서는 정서의 깊이를 말해 준다. 이민자로 살아온 나에게 다산의 『하피첩』은 유배자의 글이자 동시에 이주자의 마음과도 겹쳐 보였다. 낯선 땅에서 자식을 기르며, 우리는 무엇을 전하고자 했던가. 아이들의 손에 쥐여준 도시락과 알림장, 그 속에 담긴 사랑은 눈에 띄지 않지만 간절하다. 나 역시 정약용의 다홍빛 비단처럼, 네 자녀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유산을 물려주고 싶었다. 한국인으로서의 긍지, 신앙, 근면, 절제, 감사, 그리고 고운 마음 같은 것들. 다산이 말하듯 그것은 어느 전답보다 넉넉하고, 금은보다 오래간다. 『하피첩』을 읽으며 나는 이민자의 언어로 아버지이자 어머니인 다산의 심정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것은 “머나먼 곳에서 이 글을 읽을 너희가, 바르게 자라주기를 바란다”는 절박하고도 믿음 어린 한 인간의 기도였다.


놀랍게도 그의 두 아들은 그 기도에 응답했다. 큰아들 정학연은 청렴한 관료가 되었고, 둘째 정학유는 『농가월령가』를 지어 백성의 삶을 돌보았다. 아버지의 글이 자식들의 삶에 빛이 되었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진정한 글은 늘 그런 역할을 한다. 시대를 넘어 사람의 마음에 도달하고, 단단한 뿌리를 내린다. 내가 오늘 이 글을 쓰는 이유도 그 영향 아래 있다. 비록 내 삶은 정약용을 따라갈 수 없지만, 나 역시 내가 살아낸 시간과 깨달음이 담긴 어떤 언어를 자녀와 후배들에게 남기고 싶다는 마음을 품는다. 그것은 훈계가 아닌 나눔이며, 지시가 아닌 초대다. 노을빛 비단에 글을 새기듯, 내 일상에 의미를 새기는 일이야말로 ‘삶의 하피첩’을 만드는 작업이다.


박물관을 나오며 나는 다산의 다홍빛 유산을 오래도록 되새겼다. 다산이 보낸 치마 조각은 단지 천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 시대의 고통을 이겨낸 부부의 사랑이었고, 아버지의 정신이었으며, 자식들에게 건네는 삶의 이정표였다. 우리가 각자의 삶에서 건네는 말 한마디, 쓰는 글 한 줄도 그런 유산이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오늘도 나는 내 마음의 하피첩을 펼쳐 본다. 삶의 태도와 사랑의 방식, 그리고 말로 다할 수 없는 그리움까지 노을처럼 스미게 하고 싶다. 그렇게 언젠가 내 아이들이 먼 훗날 이 글을 펼쳐볼 때, 다산의 자식들처럼 마음속에 고운 울림 하나쯤 간직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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