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말은 날이 서 있다. 따뜻한 말이 몸을 감싸듯 위로하는가 하면, 한 번 쏘아진 말은 비수처럼 깊이 박혀 오랫동안 아프다. 특히 경쟁의식이나 질투심에서 비롯된 말은 교묘하게 포장되어 나타나기에 더 날카롭다. 성경 속 한나의 이야기도 그랬다. 그녀는 자녀가 없다는 이유로 브닌나에게 끊임없이 조롱당했다. 남편 엘가나가 두 아내를 두었고, 브닌나는 아들딸을 낳았지만, 한나는 임신하지 못했다. 브닌나는 그 점을 집요하게 파고들며 한나의 심장을 후벼 팠다. 한나는 수년을 울며 견뎠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녀는 브닌나와 말싸움을 하지 않았고, 복수하려 하지도 않았다. 한나의 선택은 침묵이었다. 고요한 내면의 힘, 그것이 그녀의 무기였다.
침묵은 때로 가장 큰 저항이자 가장 깊은 기도다. 한나는 괴로움 속에서도 자신의 아픔을 사람에게 풀어내기보다 하나님께 기울였다. 그녀는 성전으로 나아가 조용히 입술만 움직이며 기도했다. 엘리 제사장이 처음에는 그녀를 오해할 만큼, 그 기도는 말소리조차 없는 깊은 간구였다. 우리는 때때로 억울하고 상처받았을 때, 말로써 자신을 방어하려 한다. 그러나 말은 또 다른 말다툼을 낳을 뿐이다. 한나의 방식은 다르다. 그녀는 감정을 쏟아붓는 대신, 내면을 갈무리하며 기다렸다. 그 기다림은 무기력함이 아니라, 하늘을 향한 의지였다.
브닌나의 말은 단지 자극적인 말이 아니었다. 아이를 낳지 못한 여인의 정체성을 무너뜨리는 치명적인 공격이었다. 오늘날의 우리도 그와 비슷한 충동질에 흔들린다. 누군가 비교를 부추기고, 우월감을 앞세우며 우리를 초조하게 만들 때, 마치 브닌나가 지금도 곁에 있는 것 같다. SNS에 넘쳐나는 자랑과 경쟁은 우리 마음의 평화를 깨트린다. 그러나 한나처럼, 내 안의 고요한 방으로 들어가는 사람이야말로 결국은 이긴다. 승리는 때로 외침이 아니라, 흐느낌 속에서 조용히 자란다. 스스로를 지켜낸 사람이 결국 시간을 이기고, 사람을 이긴다.
한나의 기도는 응답받았다. 사무엘이라는 아들이 그녀의 품에 안겼을 때, 그 기쁨은 단순한 출산이 아니라 회복의 상징이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곧바로 아들을 하나님께 드리는 결단을 내린다. 자신이 받은 것을 움켜쥐는 대신, 다시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그 모습은 진정한 자유인의 모습이다. 충동질을 이긴 사람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더 이상 비교하지 않고, 더 이상 억울해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마음이 하나님과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한나는 자녀 없는 수치심을 뛰어넘어,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는 사람으로 거듭났다.
우리도 살아가며 수많은 브닌나를 만난다. 말로 상처 주고, 조롱하고, 속을 뒤흔드는 상황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그때마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인생의 깊이를 결정한다. 말로 맞서는 순간, 우리는 그 수준에 머물지만, 침묵과 기도, 그리고 사랑으로 넘어서면 전혀 다른 길이 열린다. 한나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상처를 물처럼 삼키며,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 그 사람이 결국 시대를 바꾸고, 다른 사람을 살린다. 브닌나의 충동질은 한나의 기도로 인해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기는 법은 결국, 침묵과 기도로 이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