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아버지께서는 평생 자연과 함께 살아오셨다. 우리 고향 집에는 사계절마다 다양한 나무와 꽃들이 자라며 아버지의 손길을 받았다. 겨울이면 매화꽃이 향기를 뿜으며 피고, 봄에는 영산홍과 자목련, 백목련이 마당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여름이면 능소화가 줄기를 타고 주황색 꽃망울을 터뜨렸고, 가을에는 두 그루의 은행나무가 대문을 지키며 고요한 자태를 뽐냈다. 이 모든 것들은 아버지에게 사계절의 변화를 알려주는 자연의 시계였다. 그중에서도 동백꽃나무는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다. 다른 꽃들은 금방 시들지만, 동백꽃은 사계절 내내 푸르름을 유지하며 계속해서 꽃을 피워내기 때문이다.
동백꽃은 우리 마을 사람들에게도 귀하게 여겨졌다. 마을의 중요한 행사나 결혼식, 졸업식 등에 아버지의 동백꽃이 쓰였다. 아버지는 창호지와 대나무로 아름다운 꽃송이를 만들어 결혼식 무대에 장식하며, 동백꽃나무로 만든 아치 아래에서 신랑과 신부는 축복을 받았다. 아버지는 또한 동백꽃을 이용해 묘목을 키워내고, 그 묘목을 집 주변에 심으며 자연을 보살폈다. 아버지는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동백꽃을 보고 싶어 하셨다. 그래서 미리 자신의 산소에 동백꽃 묘목을 심어 두었다. 아버지의 손길로 자란 동백꽃은 어디서든 잘 자라며 아버지의 사랑을 증명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건강은 급격히 나빠졌다. 췌장암 판정을 받은 후, 아버지는 병원에서 곧 생을 마감할 준비를 하라는 의사의 말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아버지는 평생 살던 집을 떠나 아들의 집으로 가기로 했고, 그때 아버지는 동백꽃나무 한 그루와 수의 한 벌만 챙기겠다고 했다. 아들은 아버지의 뜻을 따라 동백꽃나무를 트럭에 실어 부천으로 모시고 갔다. 그곳에서 아버지는 병상에 누워서도 베란다에 놓인 동백꽃을 보며 고향의 향수를 달랬다. 아버지는 동백꽃을 돌보며, 그 꽃을 통해 고향을 느끼고 고독감을 잊으셨다.
어느 날, 아버지의 동백꽃 화분이 사라지는 일이 벌어졌다. 아버지는 “꽃 도둑은 도둑이 아니”라며 마음을 다잡으셨지만, 아들과 며느리는 아버지의 속상함을 풀기 위해 주민들에게 호소문을 나누기로 했다. 호소문은 아버지가 얼마 남지 않은 생을 마감하기 전에 동백꽃을 보고 싶어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며칠 후, 아버지의 동백꽃 화분은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화분을 다시 받으며 기뻐하셨다. 그 후에도 동백꽃을 돌보는 아버지의 일상은 계속되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기력은 점점 쇠약해졌다. 더 이상 동백꽃을 가까이할 힘이 없어졌다.
아버지는 결국 마지막 부탁을 하셨다. “내가 고향으로 돌아가면 동백꽃을 화분에서 꺼내어 현관 화단에 심어라. 아파트 주민들이 다 잘 볼 수 있도록” 아버지는 고향에 묻히며,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동백꽃과 함께 보내기를 원하셨다. 아들은 아버지의 뜻을 따라 동백꽃을 화단에 심었다. 그해 가을 아버지는 고향으로 돌아가 동백꽃나무가 자라는 곳에 묻히셨다. 동백꽃은 그 후에도 계속해서 붉은 꽃을 피우며 아버지가 남긴 사랑을 지키고, 아파트 현관문을 드나드는 사람들과 소통하며 그 화단을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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