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남편이 힘든 직장 이야기를 꺼내던 날이 있었다. 무거운 표정으로 말문을 여는 그를 보며, 나는 조언을 하거나 해결책을 제시하려는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문득,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이 그의 말을 그냥 들어주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조용히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로 했다. 때때로 맞장구를 치며 그가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도록 기다렸다.
남편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나는 그가 겪은 상황과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게 되었다. 그는 작은 일 하나까지도 세세하게 설명하며 스트레스를 풀고 있었고, 나는 그저 가만히 옆에 앉아 반응해 주었다. 신기하게도, 듣기만 했을 뿐인데 그의 얼굴이 점차 밝아졌다. 그는 나의 말보다 나의 경청에서 큰 위로를 받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말이 아닌, 들음의 힘이 크구나’라는 깨달음이 찾아왔다.
그 이후로, 나는 남편과 대화할 때 조언을 던지기보다는 그의 감정과 말을 깊이 들어주려 노력했다. 그는 회사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나의 반응에 의지하는 듯했고, 이야기를 마친 뒤에는 종종 “네가 들어주니까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어”라며 미소를 지었다. 해결책을 찾으려 애쓰기보다, 경청이 그 자체로 큰 치유임을 알게 되었다.
한 번은, 남편은 자잘한 스트레스에 대해 말하면서도 내 표정을 살폈다. 그제야 깨달았다. 남편에게는 내 말보다 내가 얼마나 집중하고 있느냐가 더 중요한 부분이었다는 것을. 이제는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하든, 핸드폰도 내려놓고 그에게만 온전히 집중하는 습관이 생겼다. 경청이 주는 신뢰와 안도감을 남편이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기쁘게 했다.
경청은 우리의 관계를 더 깊게 만들어주는 다리처럼 느껴진다. 내가 그의 이야기를 온전히 들어줄 때, 그 역시 나를 더 신뢰하고 자신의 모든 감정을 열어 보인다. 이렇게 경청은 우리 부부의 마음을 이어주는 다리로 작용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