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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삶의 문턱에서

서귀포의료원 이야기

by 올제

<한 달 제주살이 중, 반가운 지인들이 찾아왔다.>

3박 4일간 2회의 골프를 함께 치는 일정이었다.


부부끼리만 하던 여행에 활력이 넘치고, 아주 즐거운 이벤트였다.

설레는 마음으로 공항에 마중 나갔고,
웰컴 디너는 우리 부부가 마련했다.

기분 좋게 춘천닭갈비 집에서 만찬을 가졌다.


인생의 후반전에 접어든 4명의 퇴직한 남자들의 화제는 자연히 노후 생활과 가족과의 관계설정이었다.


노후 생활과 가족관계를 형성하는 것에 제일 좋은 것은 공동의 관심사를 가지는 것이라 것에 동의를 했고

고부갈등, 부부갈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에 '적립고스톱'이 거론되었다.


화투를 통한 ‘가벼운 경쟁’과 ‘공동의 목표’를 결합한 가족형 저축 놀이로서, 웃고 즐기며 우애도 다지고 실질적인 도움도 되는 훌륭한 놀이라 결론은 내렸다.


화투는 단순한 오락을 넘어선, 가족 간의 재미있는 저축 방식이다. 이긴 사람이 다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일정 금액을 정해 모두 함께 적립해 두고,

*명절 선물 구입비

*가족 여행 경비

*부모님 용돈

*자식의 축하금 등

공동의 목적에 쓰기 위해 쌓아두는 것이다.


유쾌하고 즐거운 첫날의 만남을 마치고
카페로 자리를 옮기던 중, 일행 가운데 한 분의 얼굴이 급격히 창백해졌다.


< 퇴직 후 골프라는 공동의 취미로 정기적으로 만나 스크린골프와 라운딩을 즐기는 지인들이 서귀포를 방문해 주었다. >


< 삶과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다. >


모두들 급체로 판단하고 근처 편의점에서 활명수와 소화제를 사서 복용했다.
잠시 괜찮은 듯 보였지만, 다시 증상이 재발했다.
이번에는 가슴에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왔다고 했다.

급체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호전된다는 정보를 믿고,
일단 호텔에서 일찍 쉬기로 했다.

그러나 지인은 “느낌이 좋지 않다”며
119를 불러 병원으로 가야겠다고 했다.


밤 9시가 지난 시각, 응급병원인 서귀포의료원으로 향했다.

응급차 안에서도 특이한 반응은 없었고,
응급실의 당직의사도 “수액(링거)을 맞고 호전되면 돌아가도 된다”라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급작스러운 상황이 벌어졌다.


지인은 의식을 잃었고, 심정지가 무려 15초간 발생했다.
15초간, 숨이 끊어졌고 혼수상태에 빠진 것이다.

다행히 그곳이 응급실이었고,
의사와 간호사들이 즉시 심폐소생술을 시행해 다시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그 후, 당직 의사가 지인에게 물었다.

“환자분,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지인은 답하지 못하고,
“안~~~” 하며 성(姓) 한 글자만 겨우 발음했다.


귀는 열려 있었지만, 자기 이름조차 말할 수 없었다.

그 순간, 뇌경색으로 고생 중인 내 친구 ‘넘늘이’가 떠올랐다.

코로나 백신의 후유증으로 쓰러진 친구였다.

의사는 설명했다.


“부정맥으로 인해 심정지가 발생했고,
환자분의 세 가닥 관상동맥 모두 건강하지 않아
언제든 막힐 수 있는 위험한 상태였습니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문턱이었다.

가족과 연락을 취했고,
육지에 있는 가족은 다음날 첫 비행기로 서귀포로 오기로 했다.
전화로 동의를 받은 뒤,
지체 없이 대동맥 스텐트 시술을 진행했다.


밤 12시 30분경, 시술은 무사히 끝났고,
운 좋게도 그날 서귀포의료원 당직 의사가 신경과 전문의였다.

정말 ‘하늘이 도왔다’는 말,
이럴 때 쓰는 것이라 생각했다.


서귀포를 좋아하는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순수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인 것 같다.

만약 골프를 치는 중에 사고가 났더라면?
외국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혼자 잠자던 중 의식을 잃었다면?

서귀포 의료원과 같은 병원이 없었더라면?


그 모든 상상을 뛰어넘는, 아찔한 생사의 순간이었다.


< 즐거운 삶의 현장과 어두운 죽음의 그림자가 같은 날 30분만에 일어난다. 60대 이후에서는 누구나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다. >


< 父子有親이 가장 잘 어울리는 아버지와 아들 >


부자유친이란 유교의 오륜중 한 가지 덕목이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관계는 기본적으로

사랑과 친밀함이 바탕이 되어야 함을 뜻하는 말이다.


함께한 일행 중에는,
담도암을 3%의 생존 확률로 극복한 분도 계셨다.

지인 일행은 모두 정년퇴직한 학교장이었다.


일행 중에 생사의 고비를 넘긴 긴박한 상황이 끝나고 나니
저녁 자리에서 자신의 사연이 자연스럽게 회자되었다.


담도암 선고를 받으면
삶은 극심한 공포와 절망 속으로 빠지게 된다.

하지만 선생님은 그 힘든 항암 과정을 이겨냈고,
마침내 정년까지 굳건히 마치셨다.


선생님은 수술 전, 아버지께 인사를 드렸을 때
아버지는 담담히 말씀하셨다고 한다.

“병이란, 원래 이겨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시골에서 평생 수의사로 일하신 아버지는
이 한마디로 자식에게 큰 희망과 용기를 주셨다고 한다.

그 말씀에 힘입어, 선생님은 수술을 앞둔 의사에게 이렇게 말한다.


“제가 자식 된 도리로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제발, 부모님보다 단 하루만이라도 더 살게 해 주세요.”

그 절박한 호소는 곧 신념이 되었고,
그는 끝내 병을 이겨냈다.

지금은 7년이 지나, 완치 판정을 받고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보기 드문 부자(父子) 지간의 진한 정을 느낄 수 있었다.

지난해, 그 선생님의 텃밭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아버지와 함께 텃밭에 계셨는데,
아버지는 말없이 아들이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고,
그 장면은 참 평화로웠다.


반면에

나는 아버지를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마음을 열지 않아
좋은 관계를 맺지 못했다.


가족보다 진주시를 위해 살아가는 아버지를
우리 가족은 호의적으로 생각하지 않았고

그 거리감이 곧 마음의 거리로 이어졌다.


인생관은 다를 수 있지만,
혈연은 뛰어넘을 수 없는 깊은 끈이라는 생각이 든다.

< 빠르게 회복한 지인께서는 시술을 잘 마쳤고 육지에서 보호자인 가족이 와서 우리 세 사람은 제주에서 골프를 즐겼다. >


생사의 갈림길에서 천운(天運)처럼 다시 살아난 지인,

부자간의 끈끈한 정을 보여주신 선생님,

담도암을 극복하고 새 인생을 살아가는 그 모습은


‘삶’이 ‘죽음’의 경계와 늘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운다.

그리고 아침, 회복한 지인으로부터 단체 톡방에 이런 문자가 도착했다.


“아침에 눈을 뜨니
살아있다는 것,
어제에 이어
또 한 번 실감했습니다.

앞으로는
더 고맙고 감사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봉님들께서
생사의 현장을 함께 해주시고
염려와 위로를 보내주셔서
큰 힘이 되었습니다. 깊이 감사드립니다.

몸을 추스르고
건강한 모습으로
6월 19일(목)에 뵙겠습니다.”


서귀포 의료원은 응급상황에 대비하여 오늘도 밤을 지새우며 우리 생명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였다.

서귀포 의료원에 당직하시는 김*호 과장님과 의료진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표지사진 설명: 서귀포 의료원에서 제공한 사진이다. 보호자가 오면 보여주고 싶다며 의사 선생님께 양해를 구해서 사진을 찍었다. 누구에게나 어떻게 닥칠지 모르는 심근경색과 뇌경색의 질병은 운명이 운과 닿아 있다고 생각이 든다. 부부가 따로 방을 사용하다가 부부와 사별한 석 루 형님의 이야기도 예사로 들리지 않는다. 삶과 죽음은 연결되어 있으며 서로 맞닿아 있는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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