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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의 온기

“적은 것이 아닌, 나의 것을 건넸다는 의미”

by 올제

< 내 소비의 10%는 기부로 채우고 싶다. >


제주에 한 달 살기가 두 달 살기로 바뀌고 여유가 많아졌다.


어느 날 제주 국립박물관을 찾았다. 박물관을 찾아가면 남다른 감회가 떠오른다.

나는 평생을 진주시민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나는 아버지의 유품이자 우리 집의 보물이던 물건 43점을 진주시민을 위해 남가람박물관에 기증했다. 집안의 일부 어른은 반대하였지만 아버지의 명예를 살리고 진주시민의 유산으로 남겨야 한다고 설득하여 나의 뜻을 실행하였다.


그리고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를 보며 의미 있는 삶이란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제주박물관에서 1950~60년대 제주의 생활상을 사진전으로 보았다.
당시의 검소하고 절박한 삶의 흔적들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아직도 세상의 많은 이들이 우리들의 그 시절처럼 살고 있다는 생각에 왠지 모를 슬픔이 천천히 스며들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이 시대의 한국에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너무 많은 특권을 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

아파트라는 공간이 있고, 매일 뜨거운 물로 씻을 수 있으며, 식탁 위에 밥이 차려지고, 계좌에는 어느 정도의 잔액이 있고, 위험 없이 거리를 걷고,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삶을 누리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지구 한편 수많은 이들에게는 여전히 절실한 꿈이라는 사실을 나는 잊고 살았던 것이다.

동시대에 지구에서 사는 사람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부를 꾸준히 실천하는 사람을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소비할 수 있는 금액의 10퍼센트를 누군가에게 내어준다면, 내 마음은 어떨까?’

나는 교사로 살아왔다.
삶은 늘 성실했지만, 경제적으로는 언제나 빠듯했다.
부모님은 노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그 책임은 자연스럽게 우리 부부의 몫이 되었다.


아들은 20대의 전부를 서울 사립대와 의과대학에서 보냈다.
십 년이 넘는 그 시간을 기꺼이 뒷바라지했고, 그 대가는 꽤 무거웠다.

한창 바쁘던 시절, 나는 먼 거리 출퇴근을 하며 승용차 유류비를 아끼려 내리막길마다 기어를 중립에 놓았다.

조금이라도 연료를 절약하려던 그 마음이 이제 와 나에게 조용히 말을 건넨다.


"그때의 너는 가난했지만 참 열심히 살았구나~. “


기부는 그 시절 내게는 사치였다.


그렇지만 기부를 전혀 하지 않은 건 아니다.
환경운동연합이만수 헐크 파운데이션에는 적은 금액이지만 후원해 왔다. 그리고 그리고 어머니가 계시는 요양원에는 후원금으로 매달 계좌이체하고 있다.


기부는 여유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작은 조각을 건네는 일이라는 것을 그 세 단체를 통해 배웠다.

이제는 네 분의 부모님 중 어머니 한 분만 생존해 계신다.


어머니께 드리는 요양비와 간식비는 매달 50만원이 넘는다.
어머니의 생이 끝나고 나면, 나는 처음으로 조금은 가벼운 삶을 살아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때가 오면

내가 소비할 수 있는 금액의 10퍼센트를 누군가에게 내어주고 싶다.

< 1946년, 제2차 세계대전 후 아동 구호를 위해 유엔이 설립, 법적 지위: 유엔(UN)의 공식 산하기구 >



< 기부는 무언가를 ‘주는’ 게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방식’이다. >


내가 나이가 들어

내 삶이 조용해지고
소비가 줄어들면,
그 여백에 10퍼센트를 기부하며 살아가고 싶다.


월 20만 원 남짓한 금액일 것이다.
그 돈으로 열 여곳의 단체에 2만 원씩 마음을 보태고 싶다.


환경운동연합

이만수 헐크 파운데이션

산청요양원

유니세프

아름다운 재단

월드비전

세이브 더칠드런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동물자유연대

국경 없는 의사회


지역사회단체 등


각기 다른 곳을 향한 나눔의 손길은 기부는 결국 나를 위한 일이다.


기부는 내가 어떤 사람으로 늙어가고 싶은지를 말해주며, 의미 있는 삶을 조금씩 완성해 가는 일이다.


누군가는 한 끼 식사, 한 알의 약으로 살아갈 용기를 얻을 것이다.

누군가의 어둠 속에 작은 불빛 하나 되어, 나는 그저 그렇게 살아가고 늙어가고 싶다.


내가 가진 것의 10퍼센트를 내어주며
내 마음의 나머지 90퍼센트가 따뜻해지는 삶을 꿈꾸어 본다.


“내가 타인의 눈물 곁에 머물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인간으로서 의미 있는 삶이라 확신한다.”

< 1919년, 1차 세계대전 후 영국에서 아동 구호를 위해 시작 법적 지위: 국제 NGO로, 독립적이고 시민 주도적인 조직 >

대문사진 설명: 핀크스 골프장에 만난 왕따나무이다. SK텔레콤 오픈 갤러리로 참관하면서 이런 멋진 나무를 보면서 그늘을 제공하는 나무의 모습이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세상이 아름다운 이유는 묵묵히 그늘을 제공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기부는 완벽한 사람의 일이 아니라 그저 조금 더 마음이 따뜻한 사람의 용기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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