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늘·바다 하나된 거제에서 감동과 묵상에 빠지다. -
"작은 배움은 책에서 큰 배움은 자연에서 일어난다 "
오늘은 거제 남파랑 21코스 '천주교 순례길'을 걸었다.
동백꽃도 보고 공곶이의 수선화 새싹도 보기 위해 거제의 끝자락 저구항으로 향했다. 오늘은 한 편의 다큐영화 또는 독립영화 같은 길을 걷는다.
< 천주교 순례길을 걷다. 동백꽃과 수선화를 만나다. >
‘천주교 순례길’은 거제시 일운면 예구마을 선착장에서 시작해 거제 8경 중 하나로 꼽히는 공곶이를 지나 와현봉수대, 서이말등대에서 다시 예구마을로 총 10Km 3시간 30분이 소요되었다.
제주에서 동백꽃은 4·3과 현맹춘 할머니가 연상되었다면 공곶이의 동백꽃은 천주교 순례자의 이미지가 떠오르고 공곶이의 수선화는 억척스러운 우리네 부모 세대가 회상된다.
예로부터 거제도는 동백과 유자, 진달래 등 다양한 꽃을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섬이다.
하지만 조선시대에는 진도, 추자도 등과 함께 귀양의 섬으로 불렸는데 한려수도의 수려한 풍광에 비교해 보았을 때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별명이다.
마산교구 복자 윤봉문 순교자 묘소를 중심으로 한 ‘천주교 순례길’은 거제도 110년 신앙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우리를 깊은 감동과 묵상에 빠져들게 한다.
공곶이는 거제도에 천주교 복음을 처음 가져온 윤사우와 그의 장남 윤경문(베드로)이 움막을 짓고 살던 외딴곳이었다. 이들은 1866년 병인박해를 피해 일본으로 가려고 이곳에 왔지만 일본으로 건너가는 것을 포기하고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세월이 지나 그들이 사용한 움막과 밭은 흔적만 남아있다.
순례길에서 종교적 신념으로 모진 박해를 피해 피신 온 천주교들의 삶의 흔적을 곳곳에서 관찰할 수 있고 아름다운 공곶이와 지심도를 볼 수 있다. 또한 김대건 신부님의 흔적을 말씀해 주시는 일행이 계셔서 더욱 의미 깊은 곳이었다. 또한 지난 가을 서울 서소문 역사공원을 다녀온 후 천주교 박해에 대한 이해가 넓어졌다. 오늘 코스는 천주교 순례길로 역사 공부도 함께 하면서 가는 길이라 기대가 크다.
시작점에서 초입에는 오르길이 제법 심하다. 공곶이 입구에는 아열대 나무인 아왜나무 가로수길이 우리 일행을 맞이하여 주었다. 이윽고 폭 1m 남짓한 동백나무 터널이 100미터 정도 나온다. 동백숲이 나타나면 목적지가 가깝다는 의미다. 수선화가 피기 전인 2~3월 공곶이의 얼굴은 붉은 동백꽃이다.
딛고 내려가는 돌계단 하나하나 노부부가 직접 쌓았다. 머리 위로 동백나무 그늘이 드리워 동화 속으로 들어서는 기분이다. 동백꽃 터널 속 떨어진 동백꽃은 천주교 순교자들의 진한 핏빛 감동이 전해진다.
< 수선화 봄물 드는 노부부의 바다 정원, 거제 공곶이 >
공곶이는 바다 쪽으로 뻗은 육지를 뜻하는 곶(串)과 엉덩이 고(尻)가 결합해 ‘엉덩이처럼 튀어나온 지형’을 뜻한다. ‘거룻배가 드나들던 바다 마을’을 이르기도 한다.
공곶이를 빛나게 만드는 이야기는 또 있다. 강명식·지상악 부부의 사연이다. 노부부는 1969년부터 호미와 곡괭이로 황무지를 개간해 반세기 넘게 농장을 가꿨다. 그리고 이곳에 꽃을 피워 조건 없이 나눈다. 그 따스한 마음 볕을 쬐기 위해서라도 봄날에 꼭 한번 다녀올 만하다. 2005년 '종려나무숲'이란 영화에 나오면서 세상에 알려졌다고 한다. 요즘은 넥플릭스로 지나간 영화를 쉽게 볼 수 있으니 '종려나무숲'이란 영화를 한번 보고 싶다.
공곶이는 노부부의 헌신으로 거제 9경에 들었지만, 현재도 노부부의 삶터요 일터다. 무인 판매대의 수선화 한 송이 사서 그 마음을 품고 돌아가도 좋겠다.
아버지 산소에 수선화 한송이를 심어 주고 싶다.
봄날 공곶이에 가는 건 수선화를 보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수선화를 꽃피운 노부부의 마음을 닮고 싶어서이기도 할 테니까...
겨울을 상징하는 남도 음식이 물메기탕이라면 봄을 상징하는 남도음식은 도다리쑥국이다. 그리고 수선화가 아름답게 핀 공곶이는 내가 좋아하는 봄 나들이 코스이다. 남도의 멋과 맛을 그리고 역사의 길을 찾아 나서는 봄나들이는 나의 기대를 저버리는 않았다.
공곶이 밭 한가운데 매미바위도 보인다. 2003년 태풍 매미가 왔을 때 바닷가에 있는 돌이 이 밭까지 날아왔다고 한다.
공곶이 봄나들이는 수선화와 동백꽃이 목적이지만 그 사이 숲길도 무척 아름답다.
바닷가 산기슭에 잘 자라는 아왜나무 호젓한 터널길을 지나 돌고래 전망대에 왔다. 돌고래의 이동과 생태를 관측할 수 있는 곳이다. 4월 초부터 5월 중순까지는 이동하는 멸치 떼를 따라온 돌고래들의 출몰 목격되고 있다 했다. 고래생태를 연구하는 학자들이나 관광객이 돌고래 관광을 할 수 있는 명소이기도 하다.
< 하이쿠와 도다리 쑥국>
동행한 일행들과 함께 일본의 전통 시 하이쿠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하이쿠(俳はい句く)는 일본 정형시의 일종이다. 각 행마다 5, 7, 5음으로 모두 17음으로 이루어진다. 일반적인 하이쿠는 계절을 나타내는 단어인 기고(季語)와 구의 매듭을 짓는 말인 기라지(切れ字)를 가지는 단시(短詩)이다.
정말 운 좋게 3일 전에 시작한 봄 도다리쑥국을 먹을 수 있었다. 주인아주머니께서는 동네 아줌마들이 뜯어온 자연산 쑥으로 만든 도다리쑥국을 3일 전부터 시작하셨다고 한다.
아직은 이름 봄이라 어린 쑥을 한 잎 한 잎 정성을 다해 따와 우리 입을 호강시켜 준다. 진하고 깊은 봄의 맛을 느꼈다.
봄이 오기를 고대하면서 처음 지어본 3자형 하이쿠 졸작 시를 지어본다.
- 도다리 쑥국 하이쿠 -
공곶이 봄 도다리 쑥국에
나도 모르게 내 마음을 쑥 먹혀버리고
행복의 접시에 쑤욱 빠져들었네...
표지사진 설명: 봄을 맞이하는 심정으로 찾은 거제 공곶이에서 바라본 바다와 하늘, 같은 공간에서 시간의 차이로 이 바닷가에 서 있던 옛 천주교 선인들의 삶을 생각해 보면서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감동과 묵상의 거제 여행을 다녀왔다.